[정신의학신문 :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늦은 나이에 취업이 돼서 그런지,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중간 관리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부족한 점이 있는 편이고, 사회성도 좋은 편은 아니어서 남들보다 승진이 느리기도 했죠.

그리고 남자가 많은 직장 특성상 상명하복 문화가 있었고, 저도 부당한 일을 많이 겪으며 지냈습니다.

하지만 다른 직장으로 옮기기에는 제 나이가 너무 많아, 꾹 참고 지금 자리까지 올라오게 됐습니다.

부족하지만 일도 열심히 했고요.

 

어느 날 관리자가 절 부르더군요. 투서가 들어왔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특정 사원에게 업무를 시키는 과정이 강압적이고, 폭력적이라며 직장 내 가혹행위 가해자로 절 지목했다고 합니다.

저는 얘기를 듣는 순간 어떤 사원인지 알아챘습니다.

그 사원은 몇 달 뒤 퇴사가 결정된 사람이에요. 그래서 일을 시켜도 하지 않고, 심지어 면전에서 욕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화를 낸 건데, 제가 가해자가 되었습니다. 

 

사진_픽셀

 

그래서 지금 너무 혼란스럽습니다.

정말 제가 나쁜 사람인지 혼란스럽고, 주변에서는 다 저를 위로하는데 실제로 징계를 받는 것은 저뿐이니까요.

주변 사람들이 그냥 제 앞에서만 위로하고, 속으로는 저를 욕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지금 제 상황을 어쩌면 좋을까요?       

 

 

A) 우리는 늘 크고 작은 폭력 속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으니까요. 

 

한 건의 폭력 사건 속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사건을 보면 모든 사건이 이렇게 간단한 것은 아닙니다.

한 사건 속에서, 가해자가 피해를 받은 부분도 있고, 피해자가 가해를 한 경우도 있죠.

결국은 폭력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은 모두 가해자이자 동시에 피해자입니다.

 

질문자 분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사원에게 욕을 들은 부분은 언어폭력으로 피해를 받으신 부분이죠.

또, 팀을 관리하는 입장에서, 그 한 명으로 일에 차질이 생겼다면 그것으로 인해 직,간접적은 피해를 보셨을 겁니다.

하지만 동시에, 업무를 강압적, 폭력적으로 시키셨다면, 이 부분은 사원에게 일종의 가해를 한 것이겠죠.

 

물론, 본인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윗사람이 생각하는 강압적의 의미와, 아랫사람이 느끼는 강압적의 의미는 분명히 다릅니다.

윗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휴일에 등산을 가자고 말을 해도, 아랫사람 입장에서는 그 말을 따르지 않으면 어떤 불이익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강압적으로 느낄 수 있겠죠.

그런 생각을 하는 아랫사람의 판단 실수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만약 실제로 직장 분위기가 휴일에 등산을 안 가도 정말 괜찮은 분위기라면 아랫사람도 거절을 해도 문제가 없겠다는 생각을 할 거고, 실제로 의사를 밝히고 등산을 가지 않겠죠.

 

사진_픽셀

 

이렇게 자기 자신이 가해자이자 피해자인데, 징계를 받게 되니 혼란스러우실 겁니다.

가해자라 징계를 받는다는 납득할 수 있으시겠지만, 피해자인데 징계를 받는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으실 테니까요.

동시에 피해를 받은 부분에 대해서, 보상을 받을 수 없다는 점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혼란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생각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다른 사람의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은, 정당방위가 아니라 쌍방폭행일 뿐입니다.

특히 내가 윗사람인 경우에는 오히려 내가 가해자로 보여질 가능성이 더 높죠.

특히 우리나라 법은 더 엄격하죠. 내가 강도를 당하는 상황에서도, 내가 그 자리를 피하기 위할 정도의 폭력을 저지르는 정도만을 합법으로 인정하는 정도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폭력을 저지른 부분은 인정하시고, 그 부분에 대한 징계로 생각을 하셔야 합니다.

만약 누가 봐도 폭력적인 상황이 아니었다면, 직장에 정식으로 항의를 하셔야겠죠.

 

동시에, 상대방에게 당한 부당한 대우에 대해서는 사과를 요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상대방에게 사과를 요구했을 때, 질문자 분의 징계 수준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는지는 충분히 생각하셔야겠죠.

실제로 사과를 받으라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방에게 사과를 강요하는 것은 의미가 없죠. 강요해서 나오는 사과가 진짜 사과도 아니고요.

하지만 사과를 요구함으로써, 질문자 분의 마음속에서, 내가 피해를 받은 부분과, 피해를 준 부분을 더 명확하게 나눌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가해자인 ‘나’라는 ‘인간 자체’가 나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나’라는 인간의 ‘일부 행동’이 나빴다는 생각으로 전진할 수 있죠.

 

말장난 같지만, 분명히 다른 얘기입니다.

나라는 인간 자체가 나쁘다면, 개선의 여지가 없죠. 나쁜 사람이 나쁜 행동을 하는 것은 당연한데, 나쁜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달라지는 방법은 막연하니까요.

하지만 나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내 행동만 나쁜 것이라면, 그 행동을 좋은 행동으로 바꾸면 되는 거죠.

 

두 번째는, 영원한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학교 폭력에 대한 연구를 보면, 계속 가해자 역할을 하고, 피해자 역할을 하는 학생은 전체 학생의 절반도 되지 않습니다.

절반 정도의 학생은 어느 시점에는 가해자였지만, 어느 시점에는 피해자입니다.

예를 들자면, 3학년 때는 피해자였던 학생이 6학년 때는 가해자 역할을 합니다.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질문자 분만 보더라도, 신입 사원 시절에는 피해자였지만 지금은 가해자가 되셨으니까요.

‘나도 피해를 입었으니깐, 남도 피해를 입어도 괜찮을 거야.’ 혹은 ‘내가 나쁜 짓을 저지른 적이 있으니깐, 이런 짓을 당해도 싸.’ 이런 생각들이 가해자를 피해자로,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죠.

 

부디 마음속에 있는, 가해자인 자기 자신과, 피해자인 자신을 잘 다독여 이 위기를 잘 극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정신건강의학과는 처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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