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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tor's Mail] 어머니가 정말 싫으면서도, 죄책감에 너무 괴로워요
김규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8.07.11 04:45

[정신의학신문 : 정신과의사협동조합 김규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선생님 안녕하세요. 제가 상담을 부탁드리게 된 계기는, 저는 엄마가 싫습니다.

싫으면서도 죄책감에 너무 괴로워요.

 

저희 엄마는 남편 없이 저를 키워 오셨어요. 제가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대요.

그런데 저는 엄마가 너무 싫어요. 이런 마음을 가진 제가 나쁜 자식인 건 인정합니다. 그러나 저는 엄마의 성격을 받아낼 수가 없습니다.

 

이런 부분은 사실 상당히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문제였어요. 제가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은 엄마처럼 살기 싫어서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해왔어요.

어릴 때의 저희 엄마는 항상 무기력했고 항상 아팠고 누워있던 이미지만 머릿속에 남아 있어요.

그리고 엄마는 항상 무서웠고, 자식들 때문에 속상하면 심하게 야단을 치면서 욕을 많이 했어요.

제가 초등학교 입학도 하기 전에는 엄마가 짐을 싸서 가출을 하겠다고 저희 앞에서 진짜로 가방을 들고나가는 모습도 종종 보여왔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저희 남매는 엄마가 또 도망을 가면 어쩌지, 엄마가 아파서 죽으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을 갖고 살아왔고, 그 어릴 때 실제로 엄마가 주무실 때 숨을 쉬는지 안 쉬는지를 체크하곤 했던 슬픈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이렇게 어른이 돼서 생각하면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하는 이해하는 마음도 들지만, 어린아이들에게 충격적인 모습을 보인 엄마가 해도 해도 너무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너무 엄마가 싫어져서 괴롭습니다.

 

사진_픽셀

 

저희 엄마는 항상 부정적이세요.

모든 대화 소재는 싫고 짜증 나고 성질나고 아프고 싸우고, 다투는 그런 대화가 거의 99%입니다.

그런데 엄마는 또 전화 한통 없다는 핀잔과 비난으로 온통 대화 소재를 남 탓과 본인이 힘들다는 어필로 장식을 해버립니다.

그러면 저는 또 화가 나고요, 어떻게 하면 엄마와 떨어져서 지낼 수 있을지를 고민합니다.

엄마 주변에는 엄마의 형제자매들, 엄마를 아는 몇몇 지인 분들이 계시고, 엄마는 친구도 없으세요.

엄마의 인간관계는 항상 타인을 비판하고 부정적인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주변에 믿고 따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희 엄마는 효도를 강요합니다.

내가 어떻게 너희들을 키웠는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세요. 너무 듣기 싫습니다.

대놓고 보상심리를 보이시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에요.

저희 엄마는 너무 일찍 혼자 남편을 잃으셨는데, 특별한 직업이 없이 집안에서 무기력하게 생활해오셨어요.

저희와 비슷한 다른 가정의 경우를 보면 혼자되신 어머님은 장사를 하시든, 남의 집 식당일을 하시든, 할 수 있는 일을 어렵게 하셔서 자식을 키우시고, 그런 고생을 하는 어머님 밑에서 자란 자식들은 엄마의 고된 삶을 봐왔기 때문에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삶의 이유가 자연스럽게 학습이 되고, 그런 엄마의 인생을 자식으로서 보상해주고 싶은 마음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효도를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저희 엄마는 위에 말씀드린 고생스럽고 헌신적인 그런 어머님은 아니셨어요.

가끔 누가 부탁을 하면 한 달에 한두 번 일 나가셔서 돈을 받아오시고, 일을 안 하시면 항상 집에 계시기는 하지만 집에 계실 때도 살림을 하는 가정주부라기보다는 환자라는 느낌이 강한 그런 스타일이었어요.

 

물론 엄마의 성향이나 성격은 바뀔 수 없고 최대한 자식으로서 참아야 한다고 생각도 들긴 하지만, 답답한 미래를 생각하면 미칠 것 같습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싶고, 이렇게 부모를 싫어하는 건 도덕적으로 아니라는 생각과 충돌하면서 죄책감에 너무 힘이 듭니다.

 

저희 엄마는 모든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의절하는 것으로 결론을 짓습니다. 그 대상이 형제든 지인이든 누구라도 의절을 해서 관계를 종료시켜요.

이제는 제가 그런 나쁜 점을 닮아가고 있어서 너무 슬픕니다.

저는 진짜 엄마처럼 살기 싫습니다. 그러느니 죽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엄마처럼 살 것 같아서 너무 두렵고 끔찍합니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엄마가 돌아가시면 어떡할까 하는 불안감과 불쌍한 마음이 들기도 하면서 싫은 마음도 자꾸자꾸 올라와서 매일매일 죄책감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습니다.

 

저는 엄마를 고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족 상담을 받아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지만 엄마가 도저히 동의를 할 것 같지 않아요.

적어도 제가 지금 상담을 드리는 이유는 엄마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엄마를 이해하지 않으면 제가 미칠 것 같아요.

선생님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길고 자세하게 써주신 질문 감사합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꼼꼼히 읽었습니다.

어머니와의 갈등을 아주 오래 짊어지고 오셨군요. 고생이 정말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지금도 많이 힘들어하시고 계신 것 같고요.

가족. 특히 어머니란 존재는 늘 애증의 대상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나의 세계를 창조해준 존재이지만, 또 동시에 나의 세계를 가두는 가장 첫 번째 장벽이기도 하니까요.

 

사진_픽사베이

 

어머니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연약한 어린아이에게 어머니는 세상의 전부 그 자체입니다.

어머니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려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적어도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말이지요.

그렇지만 세상의 전부인 어머니가 항상 완벽한 세계일 리는 없습니다. 또, 어린아이에게 어머니의 세계란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 투성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두려움과 불만에 부딪힐 때마다 어린아이의 마음속에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겠지요. 적개심이 피어오르게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바로 그 순간 아이는 혼란에 빠져 버립니다. 그 분노의 대상이 다름 아닌 내가 살아가는 세계의 전부, 어머니이니까요.

분노는 너무나 위험합니다. 나의 분노가 어머니를 파괴하지는 않을지, 어머니를 떠나보내지는 않을지 불안해집니다.

결국 아이는 화가 나지만 어머니를 미워할 수 없습니다. 용납할 수 없는 분노를 경험하며 혼란스러워합니다.

 

질문자님께서 적어주신 글 몇 문장으로 어떻게 그 세월과 인생을 가늠하겠냐만, 적어도 질문에서 표현해주신 만큼 안에서는 어린 시절 질문자님의 혼란과 두려움과 분노가 충분히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를 향한 그런 혼란은 아마, 질문자님께서 기억하지 못하는 더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었겠지요.

더구나 안타깝게도 어머니께서는 질문자님의 그런 혼란을 충분히 받아주고 대신 견뎌줄 만한 여유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어쩌면 질문자님께서 어린 시절의 그런 혼란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도 질문자님의 글에서는 어머니를 향한 증오와 분노, 원망과 함께 어머니를 원망해서는 안된다는 의무감, 어머니의 부재에 대한 두려움, 또 그러면서도 사라지지 않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한데 뒤엉켜있어 보입니다.

그런 생각들 속에서 질문자님이 갈팡질팡해하며 혼란스러워하시는 것 같아 보이고요.

그렇지만, 어쩌면 정말 질문자님을 혼란스러게 하는 것은 그런 뒤엉킴, 어머니에 대한 애정과 증오의 범벅 자체가 아니라, 그 뒤섞임을 용납하지 못하는 질문자님 스스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상관계 이론에서는 어머니를 향한 유아의 모순적인 갈등을 우유와 독으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모유에서 비유된 우유는 어머니라는 존재, 나를 사랑해주는, 나를 안전하게 해 주는, 내 존재의 전부입니다. 반대로 독은 어머니를 향한 적개심, 분노이겠지요.

그러나 이 독은 결코 우유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그 독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고 해도, 우유와 독은 섞일 수 없습니다. 우유에 독에 단 한 방울이라도 들어가면 그것은 더 이상 우유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마찬가지로 독에 아무리 우유를 붓는다고 해도 독은 우유가 되지 않습니다. 우유와 독은 결코 함께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아이의 마음에서 엄마는 우유로 표현되는 좋은 엄마, 독으로 표현되는 나쁜 엄마로 갈라져 버립니다. 아이의 세계가 둘로 쪼개지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아이는 성장하며 점차 좋은 엄마와 나쁜 엄마를 합칠 수 있게 됩니다.

엄마는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해주는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엄마를 미워하는 자신의 분노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서 배우게 됩니다. 나쁜 사람, 좋은 사람이 아니라 나쁘지만 좋은 면도 있는 사람, 좋지만 나쁜 면도 있는 사람의 존재를 배우게 됩니다.

세상은 우유와 독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두가 얼마간은 달콤하고 얼마간은 씁쓸하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어머니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어머니를 증오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지만 미워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자연스러워지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이 시기에 안정적인 환경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적절하게 성장해내지 못한다면, 어린 시절의 혼란은 어른이 되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둘로 쪼개진 세계가 적절히 통합되지 못한 상처가 무의식 깊은 곳에 남아있게 됩니다.

어쩌면 질문자님께서도 슬프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그런 상처를 가지고 계신 것일지도 모르고요.

그래서 어머니를 미워하는 마음.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 두 마음을 모두 용납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고 계신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어머니를 이해하고 싶어서 상담을 하고 싶다고 하셨지만, 어쩌면 질문자님께서 정말로 이해하고 보듬어줘야 할 대상은 그렇게 혼란스러워하는 스스로의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머니를 미워하는 나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말이지요.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질문자님의 마음속에 엄마를 불안하게 쳐다보는 어린아이가 아직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그 어린아이를 보듬어줘야 할 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혼란스럽고 불안하고 두렵지만,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 몸만 훌쩍 커버린 어린아이를 이제 나 스스로가 품어줘야 한다는 것이지요.

 

어쩌면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방문해 상담을 통해 이런 작업을 해나가는 것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상담은 슬픔과 갈등을 털어놓는 창구이기도 하고, 고민에 빠졌을 때 조언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나 자신을 알아가고 이해해가는 과정입니다.

나 자신을 스스로가 이해해주고 보듬어주는 길을 더듬을 수 있는 작업입니다. 길고 어려운 여정일 수도 있지만, 분명 그 끝에는 한 단계 더 성숙한 스스로가 있겠지요.

부디, 용기를 내어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선생님과의 상담을 시작해보시기를 권유드립니다.

그 안에서, 어머니에 대한 현실적인 대처 방안들 또한 찾아볼 수 있을 것이고요. 모쪼록, 오랜 고민의 매듭을 풀어나갈 실마리를 찾아내실 수 있기를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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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kpdco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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