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황인환 여의도 힐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Q) 간암 말기 진단받고, 겨우 그 사실을 받아들였는데, 갑자기 이별을 맞이했습니다.

남은 생을 어떻게 혼자 버텨내야 할지 너무 막막합니다.

 

은퇴하고 어떻게 지낼지 남편과 노후생활을 그려왔는데 꿈꾸던 그 모든 것들이 다 물거품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제 전부 남편과 할 수 없는 일이 돼 버렸는데, 같이 얘기했던 기억만 떠올려도 눈물이 나고 가슴이 먹먹합니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뿐이네요...

 

사진_픽셀

 

20년이 넘는 결혼생활 동안 남편을 너무 많이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많이 힘든 것 같습니다.

모든 일들을 남편 위주로 의존적으로만 살아온 지난날이 이렇게 되고 보니 너무나 원망스럽네요.

배우자와의 사별이라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 줄은 내가 경험해보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고요.

아이들이 있어 겨우겨우 살아가지만 모든 생활이 엉망이고 정상적인 사고도 안 되는 것 같고 가슴속이 뻥 뚫린 것 같은 허전함을 무엇으로도 채울 수가 없네요.

 

저만 이 시련을 못 견디는 것일까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나요?

아이들 위해서 힘을 내야 한다고 주변에서는 다들 그렇게 말씀하시고 저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은 하는데 뜻대로 잘 되질 않네요.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A) 반평생을 함께해 온 남편, 그리고 앞으로 남은 반평생을 함께하길 기대했던 남편을 떠나보내는 일은 당연히 무척 힘이 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윽고 썰물이 되자, 나는 혼자 모래밭에 남겨져 있었다. 나는 무력해서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슬픔은 깊은 어두움으로 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혼자서 울곤 했다. 운다기보다 마치 땀처럼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것이다.

기즈키가 죽었을 때, 나는 그 죽음에서 한 가지를 배웠다. 그리고 그것을 체념으로 익혔다. 혹은 익혔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이런 진리였다.

“죽음은 삶의 대극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잠재해 있는 것이다.”

확실히 그것은 진리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동시에 죽음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배워야만 할 진리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나오코의 죽음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어떠한 진리도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어떠한 진리도 어떠한 성실함도 어떠한 강함도 어떠한 부드러움도 그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 슬픔을 실컷 슬퍼한 끝에 거기서 무엇인가를 배우는 길밖에 없으며, 그리고 그렇게 배운 무엇도 다음에 닥쳐오는 예기치 않은 슬픔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 상실의 시대(무라카미 하루키) -

 

사진_픽사베이

 

제가 헤어짐의 아픔을 겪을 때 많은 도움이 되었던 책입니다.

어설픈 위로가 아닌, 그저 헤어짐, 상실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주던 문장들이었습니다. 

당시의 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아픔이지만 사연자님도 이번 헤어짐 끝에, 이 슬픔을 실컷 슬퍼한 끝에 거기서 무엇인가를 배우는 길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사연자님의 앞으로의 길이, '이렇게 긴 세월을 함께 살았는데도, 이것보다 더 많은 세월을 또 함께 하고 싶게 만들어준 남편에 대한 사랑을 계속해서 떠올려보는 길'일 수도 있고, '남편 뜻대로, 남편 위주로 너무 의지하면서 살았던 삶을 스스로의 독립된 삶으로 바꿔보는 길'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또 다른 길일 수도 있을 것이고요.

 

어떤 길이든 나름의 의미가 사연자님의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되고, 그 의미가 사연자님에게 힘을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일단은 슬퍼하십시오. 

지금은 힘을 낼 시기가 아니라 슬퍼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