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ㅣ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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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이 추워지면서 몸도 마음도 추워지기 쉬운 계절입니다. 백화점이나 광장마다 반짝이는 색색깔의 불빛들과 크리스마스 장식만큼이나 우리 몸과 마음을 뜨끈하게 데워주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따뜻한 커피와 어묵 국물 같은 것들입니다. 따뜻한 국물을 먹다 보면 어느새 얼어붙었던 몸이 녹으면서 열이 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그런데 올해 겨울에는 조금 더 특별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많은 시민들이 광장에 나온 시민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선결제하며 따뜻한 커피와 김밥, 어묵 등 다양한 음식들을 나눈 것입니다. 연말을 온전히 즐겨야 할 시기지만 나라의 위기 상황에서 시민으로서 역할을 감당하고자 며칠, 몇 시간 동안이나 추운 바닥에 앉아 자리를 지켰던 수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비록 이 자리에는 함께 하지 못하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함께 한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함께 하지 못하는 미안함과 고마움을 담아 선결제를 하기도 하고, 선결제 지도를 만들어 공유하기도 하며, 여자화장실에 여성용품과 로션 등을 비치해 두기도 했습니다.

 평화적인 시민들의 집회 모습과 함께 이런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자발적인 기부에 국내뿐 아니라 많은 해외 언론들도 집중했는데요. 화염병과 최루탄 대신 응원봉을 들고, 몇백 잔이나 되는 커피를 결제하는 시민들의 의식이 놀랍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이런 나눔은 물질적인 가치 이상으로 많은 이들에게 ‘함께 함’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새기도록 했습니다. 결제한 금액 이상으로 그 안에 담긴 마음이 모두를 감동시켰고, 어려울 때마다 한마음이 되는 우리 국민성에 다시금 자긍심을 북돋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행위는 자신과 상대방 모두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가집니다. 받는 사람은 상대방의 마음에 대한 감사와 지지를 느낄 수 있고, 주는 사람은 내가 한 행동이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고 도움이 되었다는 보람과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는 내가 ‘나’라는 개인을 넘어서 더 많은 사람, 공동체와 사회, 국가, 세계와 같은 더 넓은 차원과 연결되어 있다는 소속감, 연대감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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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연말이 되면 길에서 구세군 자선냄비나 여러 단체에서 진행하는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모금, 선물기부 행사 등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누군가를 돕는 일은 연말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유독 연말에 주변의 어려운 이들을 향한 관심과 도움이 강조되는 것은,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타인과 함께하고자 함이 아닐까요? 나만이 아닌, ‘우리’의 겨울이 춥지 않게끔 말입니다.

 한 해 동안 수고한 나를 위해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곳에 가는 것도 당연히 필요합니다. 하지만 나만을 챙기는 것을 넘어서 주변의 소중하고 고마운 사람들, 나아가 나와 직접적으로 아는 사이가 아니더라도 관심과 애정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마음을 표현해 보면 어떨까요? 나만을 위해서 무언가를 했을 때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큰 행복감과 만족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흔히 다른 사람을 위해서 무언가를 할 때 ‘준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라도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 해보신 적이 있는 분들이라면 아실 것입니다. 사실은 내가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더 크다는 사실을 말이죠. 가까운 친구나 지인들을 집에 초대하고 식사 대접할 때, 행복해하고 맛있게 음식을 먹는 그들의 얼굴을 보며 혼자서는 느낄 수 없는 행복을 경험하지 않으셨나요? 혹은 후원하는 아동에게서 연말 감사 편지와 함께 사진을 받으며 말할 수 없는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하고 타인의 행복을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를 ‘이타주의’라고 합니다. 이타적 행동은 만족감, 행복감과 같은 긍정 정서를 높여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또, 타인을 배려하고 위하는 태도를 통해 개인만 아니라 집단이 안정적으로 기능하고 유지되도록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타주의는 개인과 집단 모두에게 도움이 됩니다. 이타주의가 높은 사회에서는 내가 누군가에게 베푼 선행이, 언젠가 다시 나에게 돌아올 거라고 기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현대 사회를 ‘경쟁사회’라고 합니다. 잘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누군가와 경쟁하고, 상대적 우위를 차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늘 자신의 성과를 입증하고 쓸모 있는 사람임을 입증해야 한다는 점에서 ‘피로사회’라고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예전보다 각박하고 살기가 어려워졌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물론 이 부분은 분명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 중 하나이고,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부분임에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 겨울, 따뜻한 커피 한 잔과 김밥 한 줄에 담긴 수많은 이들의 온정을 보았습니다. 그 온정은 추운 겨울날 차가운 바닥에서 오랜 시간을 앉아 있어도 마음만은 따뜻하게 버티는 힘이 되었습니다. 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시민들이 서로에게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온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혼자였다면 할 수 없었겠지만, ‘우리’였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나의 작은 마음과 관심, 사랑을 누군가와 나누는 일. 이번 겨울이 끝나더라도 우리 안에서 멈추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함께할 때 더 커지는 행복과 기쁨을 느끼는 우리들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모두 따뜻한 겨울 보내세요.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최강록 원장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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