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ㅣ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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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사건으로 인해 놀라신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경제위기설과 함께 민주주의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었던 갑작스러운 비상계엄 선포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소식에 가짜뉴스일 거라고 짐작하거나 2024년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믿을 수 없다는 반응들이 많았습니다.

 이번 비상계엄 선포 외에도 사회적 재난이나 참사를 비롯한 다양한 일들은 공동체와 사회, 국가에 많은 상흔을 남깁니다. 국민들은 사회질서와 안전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깨지고, 평온했던 일상을 더 이상 보장받을 수 없으리라는 불안, 사회의 원칙이 깨어졌다는 실망감과 좌절, 무기력감을 느낍니다. 또, 잘못된 일에 저항하기 위해 행동에 나서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마음으로는 응원하지만 생업의 현장을 지키느라 참여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각자가 느끼는 감정이나 대처 방식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역사회나 국가, 또는 세계 차원에서 함께 경험하는 사회적 사건은 많은 사람에게 공동의 기억과 감정을 남깁니다.

 특히 SNS의 발달과 함께 사건이 일어나는 현장이 생생하게 촬영되고 공유되면서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마치 그 현장에 함께 있는 것처럼 모든 과정을 지켜볼 수 있습니다. 이는 시민들이 불법적인 상황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시민 활동에 함께 참여하게 하는 동력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또,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며 시민으로서 의무를 다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이런 과정을 직접 지켜보고, 누군가가 폭력적인 방식으로 진압되거나 법치주의가 흔들리는 모습, 치열한 몸싸움이나 전투를 지켜보면서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마치 내가 직접 그 일을 겪는 듯한 느낌이 들고 나와 내 가족, 주변 사람에게도 언제든지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으리라는 위험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다가옵니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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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사회적 사건이 가져오는 심리적 영향에 대해 잘 인지하고, 이에 적절하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적 지지’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사회적 사건을 경험하며 더 이상 세상을 믿을 수 없다는 생각, 내 생존이 위협받는다는 위기감이 크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또,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다 보면 내 한 몸 내가 챙기고 각자 살길을 찾아야 한다는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주변 사람과 서로 안부를 물으며 지금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을 나누고 공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사회적 사건 속에서 혼란과 불안을 느끼는 것이 나 혼자만이 아니며, 어려운 상황에 공감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음을 아는 것은 우리에게 큰 위로이자 힘이 됩니다. 또, 단순히 무기력감이나 절망감을 넘어서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함께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통제감’과 ‘주체성’을 찾는 데 도움이 됩니다. 벌어진 사건을 바라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피해자,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제3자가 아닌, 지금의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거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니며, 힘을 합치고 연대할 때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음을 자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현재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를 인식하고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공포, 불안, 혼란, 분노, 당황스러움, 걱정, 우울, 원망처럼 다양한 감정이 복잡하게 섞여 있을 수도 있는데요. 지금의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그 감정을 처리할 여유를 자신에게 충분히 허락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 이런 감정에 관해 이야기 나누거나 일기에 글로 정리해 보는 것, 마음을 대변해 줄 수 있는 노래나 예술작품을 찾아보는 것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적절하게 표현되지 못했던 감정들은 시간이 흐른 후에도 내면에서 해소되지 않은 채 더 큰 상처를 남길 수도 있습니다.

 이와 함께, 일상의 루틴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큰 사회적 사건 앞에서 우리는 삶에 대한 회의를 느낍니다. 그러면서 지금 하는 일이 다 무슨 소용이 있나 싶기도 하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초조해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상의 루틴을 이어가는 것은 현실에 발을 붙이며 ‘지금, 여기’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줍니다.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고, 차를 마시거나 음악을 듣는 것처럼 평상시 즐기던 루틴을 통해 ‘일상이 계속되고 있다.’라는 안정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는 불확실성과 위협으로 가득 찬 듯 보이는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불안을 낮추는 효과가 있습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의 심각한 사회적 상황이 더 나은 미래로 가기 위한 과정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위기는 곧 기회란 말이 있습니다. 문제가 드러나고 자정작용을 통해 우리가 속한 공동체와 사회, 국가가 새로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 과정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와 국가의 시스템이 쇄신되어야 하고 각 분야의 전문가 및 지도자의 좋은 리더십이 있어야 합니다. 이와 함께 시민과 국민 역시 역할과 책임을 다하며 변화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더 나아가 변화를 주도하는 주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 각 개인이 가진 힘과 능력이 때로는 너무 보잘것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허무함과 공허함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 각 개인이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역할과 책임을 다할 때 우리 사회가 더 건강한 방향으로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장승용 원장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인하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인하대병원 인턴 및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한국정신분석학회 정신분석적 정신치료 Master class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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