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20대 중반 직장인 여자입니다. 가끔씩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슬픔이 올라와서 사연 남깁니다. 저희 어머니는 제가 태어나고 3년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나 함께 보낸 시간이 없습니다. 남은 동영상도 없어서 목소리도 모릅니다. 아는 것도 없고, 정을 나누지도 않아서 뚜렷한 그리움이 느껴지는 것도 아닌데 엄마를 생각하면 왜 이렇게 슬프고 서러운 건지 모르겠습니다.
어릴 때는 할머니께서 저와 오빠를 돌봐주셨는데 항상 밤늦게까지 일하느라 바쁘셨고, 아버지도 사별 후 타지에서 일하셔서 자주 보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도 그 당시 지금 제 나이 또래셨고, 엄마와 함께 살던 동네에서 저희 남매를 보는 것이 힘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그 후로는 아버지를 더 이해하게 되었고 가끔 저희를 보러 오셨다 떠나실 때면 많이 울고 슬펐습니다. 아버지가 가지 못하도록 차 키를 숨겨 놨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 큰 슬픔을 아버지가 어떻게 견뎠을지 짐작이 되지 않습니다.
제 기억에 여덟아홉 살 무렵의 저는 정말 많이도 울었습니다. 밤이면 누워서도 울어서 할머니께서 베개에 수건을 깔아 주시곤 했는데, 왜 우는지 물으시면 저도 정말 모르겠어서 모른다고 하며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엄마와의 기억은 없지만 보고 싶은 마음은 있어서 그랬던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 후 초등학교 고학년 이후부터는 엄마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는데 성인이 된 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소년기에는 엄마 생각에 조금 우울하기는 했지만 크게 자각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취업하면서 타지로 독립했는데 그 시기에 아빠도 재혼하셨습니다. 그 후 지난 몇 년간 심하게 우울하고 외로웠습니다. 우울증 약도 몇 년간 복용했는데 나는 왜 이리 쉽게 외로움을 느낄까, 이렇게 서러움을 느끼는 게 정상일까 하며 자책하고 스스로 좀먹어 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를 돌보기보다는 어린 시절 환경 탓을 했습니다. ‘나도 엄마가 있었으면 더 강한 사람으로 자라지 않았을까?’ 혹은 ‘이럴 때 엄마가 있었다면 괜찮다고 위로해 줬겠지.’ 하면서 어릴 때도 안 했던 투정을 했습니다.
아빠는 저를 정말 사랑해 주시고 다정하시지만 섬세하지 못하고 무심한 성격이라 공감 능력이 좀 떨어지시는 편입니다. 그래서 기대기 어렵기도 하고, 재혼 후 막내가 태어난 뒤로 아빠 인생을 살기도 바쁘고 체력도 떨어지셔서 제가 힘들다고 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야기를 나눠 보기도 했지만 예상했던 반응이었고, 새엄마 눈치도 보입니다.
할머니, 고모, 큰엄마, 친구들, 선생님들 등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서 감사한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허전함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뭔지 모르고, 뭐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는 것에 가끔씩 너무 흔들리는 것 같습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여덟 살 무렵 사촌 동생이 처음 생겼는데 그때 고모한테 “고모는 OO이가 죽으면 슬퍼할 거야?”라는 질문을 여러 번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빠랑 싸울 때면 울면서 나중에 커서 죽어버릴 거란 말도 많이 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어린아이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이것도 엄마의 죽음으로 인한 영향이었을까요? 제 마음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어 사연 남깁니다.
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을 읽어 보며 오랜 시간 혼자 고민하셨을 사연자님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과 외로움으로 많이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와의 추억은 없지만 그리운 마음이 계속해서 느껴지신다는 사연에서 그 그리움의 깊이가 얼마나 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함께 보낸 기억도 없고 목소리도 알지 못하는 어머니에 대해 그리움을 느끼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지, 왜 어린 시절 떠난 어머니를 아직까지 잊지 못하고 힘들어하는지 자책하고 스스로가 나약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많은 상실이나 애도에 관한 책이나 치료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애착을 형성한 대상의 상실을 주로 다루기 때문에 더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함께 보낸 시간이 적거나 그에 대한 기억이 없더라도 우리를 세상에 존재하게 해 준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한 궁금증이나 그리움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또, 사연자님의 아버지나 할머니, 친척 어른들이나 중요한 주변 분들과의 관계 속에서 충족되지 않은 관계에 대한 욕구가 어머니라는 미지의 대상과도 같은 존재에 더욱 투영된 경향도 있다고 보여집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시고 난 후 아버지와 할머니, 주변 친척들이나 어른들이 각자의 역할을 감당하며 사연자님에게 나름의 방식으로 애정을 쏟으셨고, 사연자님도 이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며 감사한 마음을 갖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분들의 그런 노력과 사연자님의 감사한 마음과는 별개로 가장 가까운 애착 관계에 대한 욕구가 충분히 채워지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유년 시절 아버지께서는 타지에 나가 계시는 상황이어서 자주 보기 어려웠고, 주양육자셨던 할머니께서도 생업으로 바쁘셨기에 사연자님과 정서적으로 충분히 교류하거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에는 무리가 있으셨을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떠나지 못하도록 차 키를 감춰 두셨다는 일화에서 아버지와 헤어지기 싫었을 어린 사연자님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사촌 동생이 태어났을 때 고모님께 하셨다는 질문도 동일한 맥락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애정을 주시던 고모님께 사연자님보다 더 중요한 존재가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자신의 존재 가치를 고모님께 확인받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OO이가 죽으면 슬퍼할 거야?”라는 질문을 하셨던 것이겠지요. 오빠와 싸울 때 커서 죽어버릴 것이라는 말 역시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는 것 같은 오빠에 대한 서운함, 어린 시절 느꼈던 우울감의 영향이 투영된 표현인 것 같습니다.
할머니가 깔아 주신 수건이 깔린 베개에 누워 울었던 사연자님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어린아이가 얼마나 외롭고 슬펐을까 하는 마음이 듭니다. 나를 가장 소중하게 여겨 주는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를 위로해 주는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 내 옆을 떠나지 않고 지켜 주는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울었던 어린 사연자님이 마음속으로 빌고 있지 않았을까요.
시간이 지나면서 어머니를 잊고 지내다가 고교 졸업 후 타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다시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시기 다시 유난히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난 데는 아버지의 재혼과 새 가정, 막냇동생의 탄생이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자주 보지 못했던 아버지였지만 새로운 가정을 꾸리며 이제 사연자님과는 더욱 완전히 분리된 것 같은 느낌, 새롭게 꾸린 아버지의 가정에 사연자님은 설 자리가 없다는 느낌, 그 가정의 한 구성원이 되지 못한다는 느낌으로 더 많이 외로움을 느끼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막냇동생이 태어나며 첫 사촌 동생이 태어났을 때 느꼈던 감정, 사연자님의 존재와 위치가 위협받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셨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마음을 아버지께 나누기도 어렵고, 새어머니의 눈치도 살펴야 한다는 생각에 외로움과 서러움이 더 크게 느껴지셨을 것입니다.
주변에 좋은 분들도 많고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지만, 현재 마음을 나눌 사람,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어른이 있으신지 의문이 듭니다. 그래서 그런 기대고 싶은 마음을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계셨다면 사연자님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주셨으리라 생각되는 어머니께 표현하고 싶으신 것 같습니다. 어릴 적 베개에 누워 눈물을 흘리며 이런저런 소원을 빌었던 사연자님의 ‘내면 아이’가 아버님의 재혼을 기점으로 마음속에서 다시 크게 부상하며 투정도 부리고 응석도 부릴 수 있는 존재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사연자님의 사연 속에서는 아버님이 겪으셨을 외로움과 힘듦에 대한 이해, 할머니, 친척 어르신들, 주변 분에 대한 감사가 많이 보입니다. 사연자님도 많이 외롭고 힘드셨을 텐데 주변 어른들의 힘듦을 헤아리고 이해하며 감사하는 태도는 긍정적이며 사연자님께도 큰 힘이 되는 자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어린아이로서 응석 부리고 힘들다고, 외롭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사연자님의 마음을 충분히 느끼고 다독여 주시기는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이런 감정을 표현하기도 어려우셨을 것이고, 그것을 스스로 받아들이거나 주변 어른들로부터 받아들여지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철이 일찍 들어야 했던 사연자님의 내면 아이가 성인이 된 지금 다시 자신을 봐 달라고, 다독여 달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님을 비롯한 주변 어르신이나 인생의 멘토 역할을 해주실 수 있는 분, 친구, 연인이나 미래 배우자와의 좋은 애착 관계를 통해 어린 시절 해소되지 못했던 정서 욕구를 충족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관계를 직접적으로 맺지 않더라도, 혹은 맺기에 앞서, 사연자님이 먼저 그 내면 아이를 보듬어 주고 토닥여 주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수고했다고, 애썼다고. 잘해 왔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늘 존재의 불안을 느꼈을 자신에게 참 가치 있고 소중한 존재라고 이야기해 주세요. 사연자님, 당신은 존재만으로 더없이 소중한 사람입니다.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호선 원장
한양대병원 외래교수, 한양대구리병원 임상강사
(전)성안드레아병원 진료과장, 구리시 치매안심센터 자문의, 저서 <가족의 심리학>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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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듭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고 제가 다 위로가 되네요.
사연자님~ 하늘에 계신 어머님도 참 잘 컸다 우리 딸..하셨을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