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림 평온 정신과, 전형진 전문의]
사연)
저는 여학생입니다. 집안이 집안인지라 제가 정신병(추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정신병원을 보내 주거나 하는 것을 절대 믿어주거나 용납하지 않을 것이 분명해 이 글이라도 작성합니다.
저는 4살 어쩌면 그전부터 부모님 사이의 불화로 부부싸움에 자주 노출되었습니다. 서로 물건을 집어던지고 소리 지르셨으며 어쩔 때는 이혼 이야기까지 자주 나왔습니다. 이혼 이야기를 하실 때는 제게 어느 쪽 편이냐며 선택을 강요하셨습니다.
어릴 때의 저는 모종의 이유로 집 방 안에 있는 시간이 가장 많았는데, 그래서 친구 대신 인형과 놀았고 인형을 사람처럼 생각했습니다. 저는 부모님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이면 친구인 인형을 때릴 수는 없어 머리를 벽에 박거나, 손목과 다리를 세게 긁었습니다.
초등학교에 올라가고 부모님의 강요의 말은 부부싸움이 아니라 그냥 저에게도 향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어릴 때 많았는데, 너는 그런 게 없냐". 그래 놓고 꿈을 말하면 "그건 돈이 되지 못한다" 하는 식으로 싹을 전부 잘랐습니다.
그리고 선택지를 주고 정해진 답을 고르지 않으면 압박한다던지, 나가고 싶으면 나가라고 하고 죽고 싶으면 죽여준다고도 하는 말을 듣고, 제 목을 조르거나 물건으로 때리는 시늉을 하며 앞에서 던져 부수셨습니다.
이런 행동들이 점점 쌓여 그냥 충동이 되어버렸습니다. 화가 나거나 무슨 일이 있지 않아도 그냥 갑자기 충동이 들어 물건을 부수지 않으면 뭔가 해소되지 않은 기분과 두통이 들었습니다. 심한 날은 인형을 커터칼로 찌르거나 조명을 부수기까지 했습니다. 분노 조절 장애는 아닙니다. 화는 전혀 나지 않아요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점점 더 늘어나는 학업 압박 때문인지 부모님과 아무 관련도 없는 학교 학생들을 전부 죽이고 웃으면서 투신자살을 하는 꿈을 계속 꿉니다.
꿈이 아니더라도 부모님을 여러 방법으로 살해하는 망상을 하고 연필 등이라도 부수거나, 집 안에 있는 술을 마시고 잠에 억지로 들지 않으면 머리가 아프고 심장이 크게 뛰며 충동이 가라앉지 않아요.
제가 좀 이상하다는 걸 압니다. 가서 치료할 수는 없어도 정신병 이름이라도 알고 싶어요.
답변)
안녕하세요, 신림 평온 전형진입니다. 가정 내 불화로 인한 많은 어려움들이 사연을 통해 드러나고 있습니다. 지금도 어려움들이 반복되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이 됩니다.
부모님 간의 문제도 그렇지만 사연자를 대하는 부모님의 모습은 학대에 가까운데, 이러한 경우 정서적으로 심각한 어려움을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정에서 기본적인 것들이 갖춰진 안정적인 환경에서 성장을 해야, 무난한 어른으로 자라나게 됩니다. 여기서 무난하다는 것은 감정을 다루는 것을 포함하는데, 안정감이 깨지는 상황에 오래 노출된다면 이러한 부분이 심하게 훼손될 수밖에 없습니다.
나를 보호해주고 안정감을 제공해야 할 부모에게 학대를 당하게 되면 우울이나 분노, 불안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당연히 위협에서 달아나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게 부모라면 어린아이가 달아나는 선택을 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런 부모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혼란함 속에서 자라는 가운데 부모의 학대를 받아들이면서 스스로 학대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게 되면서 자존감을 잃어가게 됩니다.
사연에서 언급한 모종의 이유로 방안에 있는 시간이 많았고 인형과 놀았던 시간이 많았다는 부분도, 자존감이 낮은 상황, 주변 환경에 대한 불안이 높은 상황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화가 나서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것들도, 쌓여있는 분노를 조절하는 법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이며 이러한 분노를 자해에 가까운 반응들로 해결해온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감정을 조절하기 어려운 문제로 인해 지금 경험하는 스트레스들에 대해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현재 사연을 주신 분은 우울과 불안에 시달리는 상황입니다. 부정적인 사고와 다양한 신체증상들은 감정적인 어려움에서 흔히 동반됩니다. 특히 감정조절과 관련된 부분에서 많은 문제를 보이는데, 이는 진료가 필요한 상황으로 보입니다. 정신과에서는 진료를 할 때 내과나 정형외과처럼 특정한 진단을 가지고 그에 맞는 치료를 하는 방식보다는 호소하는 어려움에 맞춰 진료를 하게 됩니다. 우울이나 불안 같은 심리적인 문제들은 현재 내 상황에 적절한 수준으로 적응하고 지내는지를 가지고 판단하게 되는데, 언급된 문제들로 판단을 해보아도 실제 생활에서 많은 어려움을 경험할 것으로 보입니다.
처음 질문 주셨던 질병의 이름은 특정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임상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우울장애, 불안장애, 인격장애 등으로 바뀔 수는 있겠지만, 질병명이 중요한 상황이 아니라 사연자분이 겪고 계신 어려움이 중요한 상황으로 보입니다.
아무쪼록 적절한 도움을 받아서 지금의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