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선의 [가족의 심리학] (6)
[정신의학신문 : 서대문 봄 정신과, 이호선 전문의]
옛날 어느 마을에 서당이 있었다. 한데 애석하게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훈장의 혀가 짧아 발음이 정확하지 않았다. 책을 편 뒤 훈장이 먼저 읽으면 아이들이 따라 읽고 뜻을 풀이하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훈장이 아이들을 둘러본 후 근엄한 표정으로 글을 읽었다.
“자, 따라 읽도록 해라. 바담 풍!”
“바담 풍!”
아이들이 훈장의 가르침에 따라 우렁차게 “바담 풍”을 따라 했다.
“어허, 누가 바담 풍이라고 읽는 거냐? 바담 풍이 아니라 바담 풍이야. 다시 바담 풍!”
“바담 풍!”
훈장이 화를 버럭 내며 아이들을 나무랐다.
“아니, 이 녀석들 봐라? 바담 풍이 아니라 바담 풍이라니까!”
아이들은 영문을 알지 못한 채 서로 얼굴을 들여다보며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바담 풍!”
“바담 풍!”
여러 차례에 걸쳐 이 같은 진풍경이 이어졌다.
나중에야 자신의 혀가 짧아 ‘바람 풍’ 자를 계속 ‘바담 풍’이라고 읽음으로써 벌어진 일이라는 걸 알게 된 훈장은 몹시 겸연쩍은 표정으로 아이들에게 이렇게 타일렀다.
“그래, 나는 혀짤배기라 바담 풍 하더라도 너희는 제대로 바담 풍해야 한다. 알겠느냐?”
“예, 알겠습니다. 바담 풍!”
재미있는 이야기로 웃어넘길 수 있으나 그 안에 담긴 교훈은 자못 진지하다. 어른이나 남들의 본보기가 될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스스로 모범을 보이지 못한 채 부끄러운 일이나 해서는 안 될 잘못을 저지르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그러면 안 된다느니, 똑바로 살아야 한다느니 하며 훈계하는 걸 경계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진다. 성숙한 사람이라면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들에게는 관대해야 한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로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남들에게는 지나치게 엄격한 사람이 많다. 요즘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내로남불’이다. 내 경우와 다른 사람의 경우에 들이대는 잣대가 너무 다르다 보니 이런 말까지 생겨났다. 스스로에게는 관대하면서 타인에게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이중잣대의 심리는 가족 내에서도 빈번히 등장한다.
대표적인 게 부모가 자신은 ‘바담 풍’하면서 자녀에게는 ‘바람 풍’하라고 가르치는 경우다.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배우며 따라 한다. 부모의 말과 행동, 습관과 가치관은 가장 가까이서 이를 관찰하는 아이들에게 그대로 투영된다. 부모는 매일 싸우면서 아이에게는 싸우지 말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라고 해봐야 소용없다. 부모는 툭하면 욕을 내뱉으면서 아이에게 고운 말을 쓰라고 하는 것도 헛일이다. 부모가 학교 선생님을 우습게 알고 막 대하는데 아이가 스승을 존경할 리가 없다. 자기는 부모에게 효를 다하지 않으면서 자녀들은 자신에게 효도하기를 바란다면 헛꿈을 꾸는 것과 같다. 폭력적인 부모, 외도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같은 잘못을 대물림하는 건 부모의 악습을 학습했기 때문이다.
자녀가 부모에게 가장 실망하는 건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 때다. 입으로는 교양과 상식, 윤리와 도덕에 맞는 온갖 좋은 말을 하고 살면서 실제 행동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 자녀는 부모에게 커다란 실망감과 괴리감을 느끼게 된다. 부모가 정치인, 법조인, 교육자, 성직자 등 신망받는 지위에 있을 때 더욱 그렇다. 입만 열면 국가와 국민을 외치면서 실상은 자기 잇속 챙기는 데 급급한 부모, 남들은 법으로 엄히 단죄하면서 자신은 법망을 피해 부를 축적하는 부모, 학생들 앞에서는 도덕군자인 척하면서 뒤로는 비윤리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 부모, 신도들에게는 신처럼 군림하면서 비양심적인 일을 태연하게 저지르는 부모, 이런 부모를 보며 자녀들은 가치관과 윤리관에 큰 혼란을 겪는다. 배신감을 느낀 자녀들은 표리부동한 부모의 기대나 간섭에서 벗어나고자 의도적으로 일탈행위를 저지르기도 한다.
자기는 나쁜 짓을 하고 살면서도 자녀들은 바르게 자라기를 바라는 부모의 심리는 어떤 것일까? 비윤리적인 부모를 보며 이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자녀의 심리는 무엇일까?
정신의학에서 도덕, 윤리, 양심은 초자아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프로이트는 구조이론에서 인간의 정신은 이드(Id), 자아(Ego), 초자아(Superego) 이렇게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고 가정했다. 첫 번째 요소인 이드는 모든 심리적 에너지의 원천이다.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리비도(Libido)의 저장고이며 쾌락을 추구하고 불쾌함을 피하는 쾌감원리를 따른다. 도덕도 선악의 개념도 없으며 논리적 사고도 작동하지 않는 무의식의 세계다. 어린아이의 정신은 이드로 이루어져 있으며 성장하면서 자아가 형성된다. 두 번째 요소인 자아는 본능에 의해 움직이는 이드를 현실에 맞게 적절히 조절하는 기능을 갖는다. 자아는 이드와 초자아를 중개하고 균형을 이루며 외부 세계와 관계를 맺는다. 갈등이 일어날 때 이를 중재하고, 괴로운 일이 기억날 때 이를 달래주며,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을 감시하는 게 자아의 역할이다.
세 번째 요소인 초자아는 도덕, 윤리, 양심 등의 원천이다. 태어날 때는 없었으나 자라면서 점점 발달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이건 하면 안 된다, 저건 꼭 해야 한다고 가르친 것이 처음에는 하기 싫지만 혼나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나중에는 스스로 지켜야 할 행동규범이 된다. 또래들이나 학교 등 사회적 관계 속에서 학습한 도덕과 양심 역시 점차 내면화되면서 자신만의 것으로 완성된다. 이것이 초자아의 내재화다. 아이는 부모로부터 다양한 이상과 가치들을 보고 배운다. 부모의 말과 행동에서 드러나는 도덕적, 윤리적 기준을 따라 보고 배운 것이 초자아가 되는 것이다. 아이의 초자아 형성에 부모의 역할은 그만큼 지대하다. 초자아는 사람의 행동, 생각, 감정을 평가하고 조사한다. 초자아의 비판과 비난은 사람에게 다양한 고통스러운 감정을 유발하고, 반대로 초자아의 칭찬과 인정은 자존감을 높여준다.
부모 역시 이드나 초자아에 따라 행동한다. 그러다가 자녀가 생기면 좀 더 성숙해지면서 이드와 초자아 사이를 중개하는 자아의 기능이 강화되어 미래에 대한 태도가 바뀐다.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보다 남은 시간을 생각하게 되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부모가 되면서 가정에 대한 책임감도 강해지기 때문에 자녀들이 도덕적이고 올바른 삶을 살라고 충고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자녀는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자아가 형성되면서 목격한 부모의 언행을 보면 초자아보다는 이드에 충실하게 살아온 걸 경험한 탓이다. 나는 ‘바담 풍’해도 너는 ‘바람 풍’하라는 부모의 말이 자녀에게 먹혀들지 않는 이유다. 갈등은 점점 커진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자아를 중심으로 본능과 쾌락에 충실한 이드와 도덕과 윤리와 양심의 원천인 초자아가 상호 작용하면서 잘 적응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 정신세계의 기본 틀이라는 것이다. 어느 한쪽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거나 과잉으로 기능할 때 정신의 균형이 깨지면서 그 부작용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된다. 자아가 이드와 초자아를 잘 중재하고 조절해서 건강한 정신세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현대 정신분석의 목표다. 부모가 자신들의 자아가 제대로 성숙하지 못해 이드와 초자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는 바람에 아이들이 적절한 자아를 형성하지 못하게 된다. 이미 실망하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자녀에게 부모는 자신의 건전한 자아 형성을 위해 벗어나고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다. 아이는 부모라는 거울을 통해 세상을 보며 자기 자신의 미래를 본다. 부모는 아이의 학교다. 입학과 졸업이 정해진 학교가 아니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평생 다녀야 하는 학교다. 모든 원초적 배움은 부모로부터 자녀에게 흘러 들어간다. 부모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은 굉장하다. 내가 몰상식과 비양심과 반도덕에 기울어진 삶을 살아왔다면 내 자녀가 나와는 정반대로 상식과 양심과 도덕에 충실한 사람으로 살아가길 기대하는 건 지나친 욕심이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좋은 부모, 존경받는 부모가 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내가 ‘바람 풍’하는 것처럼 너도 나를 따라서 ‘바람 풍’하라고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부모가 되는 건 참 힘든 일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진리다.
한양대병원 외래교수, 한양대구리병원 임상강사
(전)성안드레아병원 진료과장, 구리시 치매안심센터 자문의, 저서 <가족의 심리학>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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