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서대문 봄 정신과, 이호선 전문의]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를 본 사람이라면, 배우 고아성이 연기한 ‘요나’를 알 것이다. 요나는 이름 바 ‘설국열차 베이비’다.
기상 이변으로 꽁꽁 얼어붙은 지구에서 17년째 열차가 달린다. 요나는 그 열차 안에서 태어났다. 요나가 알고 있는 세상은 열차 안에서 일어난 일뿐, 땅 한번 밟아본 적이 없다. 요나는 열차 밖 세상을 알지 못한다.
<설국열차>를 본 지 한참이 지난 지금, 이제 와서 요나라는 인물이 어딘가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2019년 11월 발생한 코로나-19는 2020년 1월 본격적으로 전 세계에 퍼져나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거의 2년 가까이 되었다. 다 같이 마음 졸이는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아이들은 태어나고 자라난다.
아이들이 갑갑해서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던 코로나-19 초기의 걱정과 달리, 아이들은 필수품이 되어버린 마스크를 당연하게 착용한다. 씩씩한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안쓰럽다. 열차에서 태어난 것을 당연하게 여긴 요나처럼, 이 시국 아이들은 마스크를 쓰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코로나-19는 범유행 전염병으로, 접촉하지 않는 것이 그 예방의 우선이다. 거리 두기와 마스크 착용 등 코로나-19로 인한 일상의 변화는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칠까?
현재(2021년 8월 기준) 초등학생 1학년은 전일 대면 등교로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최대한 개원하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이러한 전면 등원에 대해 속 쓰린 질문을 들었다. 한창 공부해야 하는 고등학생을 먼저 등원시켜야지, 왜 보육만 하면 되는 어린아이들부터 등원하느냐는 물음은 한국 사회가 어디에 가장 중심을 두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왜 중학생, 고등학생이 아닌 초등학생 1학년과 유치원생의 등원이 우선시될까? 이는 인간의 발달과정과 관련이 있다.
코로나-19 시국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속속들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2021년 미국 브라운 대학 소아과 연구팀의 조사를 살펴보자. 이번 연구는 코로나-19 대유행이 펼쳐지는 와중에 태어난 새로운 환경-인류에 대한 최신 연구 중 하나이다.
연구진은 팬데믹 발생 시점을 기준으로, 이전 10년 동안의 아이들과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을(3개월~만 3세, 672명) 비교 분석하였다. 가장 큰 차이를 보인 것은 아이들의 평균 IQ였다. 지난 10년 동안 아이들의 평균 IQ는 100점이었으나, 코로나-19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의 평균 IQ는 78점이었다.
전염병이 시작된 이후 언어적, 비언어적, 전체적인 인지 점수가 상당히 낮아진 것이다. 연구는 사회적 지원과 실업수당 등이 비교적 잘 갖추어진 미국 로드아일랜드 주의 백인 아이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따라서 사회적 지원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지역 및 하위층 아이들에겐 더 심각한 문제가 있을 거라는 예측 또한 가능했다.
연구 결과에 대한 원인으로는 다양한 것들이 있겠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 가정 내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른 부모의 양육 스트레스 가중, 마스크 정책 등이 영향을 미쳤으리라 본다. 브라운대 소아과 부교수이자 연구팀의 리더 Sean Deoni는 "집안의 자극이 제한되고 외부 세계와의 상호작용이 줄어들면서, 유행병 시대의 아이들은 놀라울 정도로 낮은 IQ 점수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본질적으로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심리학자들은 만 3세, 많아야 7세까지가 인생의 결정적인 시기라고 강조한다. 태아, 유아 및 초기 유아 생활 단계에서 아이의 뇌는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의 통합적 영향에 구조를 형성하고 기능적 성장을 거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여러 환경적 요인 중에서 특히 부모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부모가 코로나 블루와 같은 우울증을 겪을 경우, 자녀는 우울증을 겪을 위험이 더 높고 스트레스에 취약해진다. 특히 어머니의 우울함에 더 영향을 받는다고 알려져 있다.
코로나-19 시기에 아이들은 미디어에 더 노출된다. 2020년 정익중 교수의 연구에서 스마트폰과 태블릿 PC의 3시간 이상 사용 비율이 16.1%에서 46.2%로 30.1% 상승한 결과를 보였다. 코로나-19 이후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자 아동들이 핸드폰과 게임, 인터넷에 몰두하는 시간이 늘어난 것이다. 아동의 과도한 미디어 사용은 비만, 불면, 우울, 불안 정서, 공격성에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다.
코로나-19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새로운 바이러스 변종과 관련된 새로운 감염 또한 계속 급증하고 있다. 다행히 아이들의 뇌는 가소성이 높고 반응성이 뛰어나며, 회복 탄력성 또한 높다. 따라서 적절한 자극을 형성할 수 있는 환경을 설계할 수 있다면 빠른 회복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설국열차>의 후반부에서 요나는 열차에서 살아남아 땅에 발을 딛게 된다. 이는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꼬리 칸 사람들의 노력으로 인한 결과이다. 진정한 어른이란 그런 게 아닐까? 기후변화, 팬데믹 등 인류는 점점 많은 위기에 처하고 있다. 그 결과를 고스란히 받는 것은 다름 아닌 다음 세대의 인류이다. 어쩌면 아이들을 위한 정책이 미래 인류의 삶을 결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양대병원 외래교수, 한양대구리병원 임상강사
(전)성안드레아병원 진료과장, 구리시 치매안심센터 자문의, 저서 <가족의 심리학> 출간
- 애독자 응원 한 마디
-
"매번 감사합니다. 정말 공감되는 글입니다. "
"너무 좋은 글이라는 걸 느끼고 담아갑니다. "
"이런 글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