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선의 [가족의 심리학] (4)

[정신의학신문 : 서대문 봄 정신과, 이호선 전문의] 

 

자녀를 많이 낳았던 예전에는 형제자매 간에 비교를 자주 당했다. 비교하는 사람은 주로 부모다. 공부 못하는 아이가 있으면 공부 잘하는 동기간과 비교당했고, 운동 신경이 부족한 아이가 있으면 운동 신경이 뛰어난 동기간과 비교당했으며, 말을 잘못하는 아이가 있으면 말재주가 남다른 동기간과 비교당했다. 심지어 밥 잘 안 먹는 아이, 일찍 잠자리에 들지 않는 아이, 부모님 심부름하기 싫어하는 아이도 그렇지 않은 동기간과 수시로 비교당했다.

형이나 누나를 동생과 비교하면서 나무라는 일도 있었지만, 비교적 드물었다.

“너는 어째 하는 짓이 동생만도 못하냐. 부끄럽지도 않아?”

그럴 때 흔히 등장하는 꾸중의 표준 문장이 이와 같았다.

하지만 대부분은 동생을 형이나 누나와 비교하면서 나무라는 게 보통이었다.

“형만 한 아우 없다는 말이 딱 맞네. 네 형 반만 좀 닮았으면 좋겠다.”

“누나에게 버릇없이 그게 무슨 짓이야? 누나처럼 좀 착하고 의젓해 봐라.”

이럴 때 부모님이 동생 머리를 쥐어박으며 단골말로 사용하던 표준 문장도 대개 이랬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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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어린 시절 가장 듣기 싫었던 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런 식으로 누군가와 비교당하면서 야단맞는 일이었을 것이다. 매일 한솥밥 먹는 동기간이라면 더 비교당하기 싫었다.

자녀를 많이 낳지 않는 요즘은 옆집 아이나 부모 친구의 같은 또래 자녀와 비교를 당한다. 친하지도 않고 생전 본 적도 없는 아이와 수시로 비교당하는 아이는 괴롭기만 하다.

자녀를 하나의 인격체나 독립된 존재로 인정하고 존중해 주지 않고 툭하면 동기간이나 옆집 아이, 친구 자녀와 비교를 하면 아이의 자존감은 갈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구촌에 수많은 사람이 살아가지만, 똑같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쌍둥이도 성격이나 기질이 다르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특징과 개성이 있고, 그걸 드러내고 발휘하며 사는 게 인생이다. 부모가 섣부른 판단이나 미숙함으로 자기 아이를 병들게 하는 것이 이 같은 비교 평가다.

 

완벽주의자인 부모는 자신과 아이를 비교하기도 한다. 공부 잘해서 명문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부모, 외국 유학을 다녀와 박사학위가 여러 개인 부모, 일류 기업의 임원으로 승승장구한 부모, 자수성가해서 많은 부와 명예를 얻은 부모일수록 그렇지 못한 자녀를 바라보는 시각이 냉소적일 수 있다. 부부싸움하면서 느닷없이 자녀를 끌어들일 때도 있다.

“당신이 그러니까 저런 아이가 태어났지. 나 닮았으면 쟤가 저렇게 공부를 못하겠냐?”

“사돈 남 말하네. 쟤가 저렇게 멍청하고 우둔한 건 다 당신 때문이야. 이거 왜 이래?” 

부모가 아이들을 비교하면 비교당하는 아이는 우울감을 느낀다. 아이들은 부모가 주는 안정과 애착을 경험하지 못하고 자신의 나쁜 모습을 직면하게 되기에 심한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를 비교하고 평가해서 점수를 매기는 게 아니라 아이의 요구에 즉각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해 주는 것이다. 부모의 적절한 반응에 아이는 안정감을 느낀다. 자신이 보호받고 있으며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자존감이 형성되는 것이다.

 

만약에 형제가 다투는 경우, 부모가 무조건 형의 편을 들고 동생을 나무란다면 어떨까?

분명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동생은 속상하고 억울할 게 빤하다. 형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는 마당에 부모가 덮어놓고 자신을 감싸면서 편을 들어주면 당황스럽다. 앞뒤 가리지 않고 형이라는 이유만으로 두둔하거나 칭찬하게 되면 형도 죄책감을 느낀다. 아니면 집 밖에서도 집 안에서처럼 자기주장만 내세우거나 싸우게 되어 친구 관계가 어려워질 수 있다. 그래서 부모가 자녀를 대할 때는 각각에 대해 진심으로 대해야 한다. 아이들이 부모와 믿음이 생기면, 다른 형제에게 질투를 느껴도 덜하게 된다.

 

이런 반응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계속해서 형제자매를 비교한다면 어떻게 될까? 

점점 자녀 간에 우열이 생기게 된다. 이는 시기, 분노, 열등감, 위축감 혹은 우월감, 자만심, 경멸 등 서로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부모 편에서 보자면, 한 아이는 말도 잘 듣고 부모를 편하게 해주는 데 반해, 다른 아이는 짜증도 많고 부모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럴 때 부모는 각각의 아이들 성격과 태도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한 부모에게서 태어났다고 해서 동기간이 다 같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받아들여야 한다.

형제자매가 싸운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고 자기주장이 있는 법이다. 이를 부모가 판단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만약 한 아이의 잘못이 커 보인다고 야단을 치면, 그 아이는 부모의 편애를 의심하고 더 억울해하며 분노를 느낄 것이다. 그러면 형제자매 사이의 다툼은 갈수록 거칠고 길어진다. 그래서 가능한 한 부모는 개입하지 말고 천천히 두고 보는 것이 좋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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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이들 싸움이 너무 길어지거나 신체적인 폭력으로까지 이어진다면 싸움을 멈추게 해야 한다. 이때도 싸움을 멈추게만 할 뿐 왜 싸웠는지, 누구 잘못인지 잘잘못에 관한 판단은 하지 않는다. 굳이 잘못을 지적해야 한다면 내가 혹시 한 아이를 편애하고 있는 건 아닌지 주의해야 한다. 싸움을 벌인 사실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것보다는 아이들이 스스로 대화를 통해 화해하거나 즉각 싸움을 멈춘 행동에 대해 칭찬해주는 게 좋은 방법이다.

만약 부모가 이런 갈등에 개입하기 어렵다면 부모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경우는 부모가 너무 지쳐서 자녀의 싸움에 개입할 힘이 없을 수 있다. 싸움을 지켜보면서 인내하고 적절히 개입할 수 없기에 빨리 다툼을 끝내고 싶은 마음에 섣불리 결론을 내린다. 또 다른 경우는 부모가 화가 나 있는 상황이다. 자신도 화가 나 있기에 자녀들에게 적절하게 개입하기보다는 버럭 화만 내고 싸움을 끝낼 수도 있다. 다른 경우는 자기 자신도 갈등을 다루는 데 미숙할 때다. 이것은 그 부모의 부모도 아이들을 그렇게 양육했기 때문이다. 부모 자신도 다른 동기간 편을 들어주는 부모에게서 자라났기에 한쪽 편만 들어주고, 형이나 누나 또는 동생에게만 감정 이입하여 자신이 직접 싸움에 참전하는 경우다. 이 외에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으나 먼저 자신의 원인을 찾아 거기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독일의 교육 전문가인 하이데마리 브로셰는 자신의 저서 『비교하지 않는 습관(원제: Mein Kind ist genau richtig, wie es ist)』에서 아이를 다른 아이와 비교하는 것은 아이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작가이자 교사며 세 아들을 둔 엄마이기도 한 저자는 비교하는 일을 멈추고 아이의 약점 속에서 강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테면 조용하고 내성적인 아이는 보통 독립적이고 생각이 깊으며, 고집 세고 반항적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아이는 내적인 강인함을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약점을 남과 비교해서 야단치고 고치려 들기보다 그 아이만이 가진 개성과 장점을 찾아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면 아이는 부모의 지지 속에 자존감을 가진 건강한 아이로 성장할 수 있다. 

아이를 비교하지 않는 부모가 되려면 다음과 같은 저자의 조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자신이 너무 이러저러하다는 부정적인 낙인을 지닌 채 살도록 해서는 안 된다. 그 대신 스스로 기질과 성향을 발견하게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있는 그대로 정확히 알게끔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펭귄으로 태어났는데, 엄마 아빠가 펭귄이 아닌 기린으로 변신해야 한다고 생각하게끔 해서는 안 된다. 직업, 배우자, 친구를 고민할 때 자신의 성격과 기질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그들이 자신의 성향과 존재 자체를 긍정적으로 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한양대병원 외래교수, 한양대구리병원 임상강사
(전)성안드레아병원 진료과장, 구리시 치매안심센터 자문의, 저서 <가족의 심리학>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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