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환의 [시(詩)와 함께하는 마음공부] (20)

[정신의학신문 : 여의도 힐 정신과, 황인환 전문의] 

 

예전에 겪었던 나쁜 기억 혹은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자꾸만 뒷걸음질 치거나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나를 압도해서 미래로 나아갈 수 없게 만들 때, 이를 극복하거나 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시가 있을까요? 그런 시가 있다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분들에게 조금은 위로와 위안을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그럴 때마다 나희덕 시인의 ‘땅끝’이라는 시를 떠올립니다. 1994년에 출간된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라는 시집에 수록된 시입니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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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너머 고운 노을을 보려고

그네를 힘차게 차고 올라 발을 굴렀지

노을은 끝내 어둠에게 잡아먹혔지

나를 태우고 날아가던 그넷줄이

오랫동안 삐걱삐걱 떨고 있었지

 

어린 시절 시인은 그네를 탔습니다. 그네를 힘차게 차오르면 산 너머로 고운 노을이 보였습니다. 산등성이를 타고 떨어지는 노을이 천지를 붉게 물들이는 광경은 장관입니다. 소녀는 그 풍경에 매료되어 더 힘주어 그네를 차올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아무리 힘껏 그네를 차올려도 노을은 희미해져 갔습니다. 점점 사그라지는 노을이 안타까워 소녀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 그네를 밀어 올렸지만, 끝내 노을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어둠이 노을을 잡아먹은 겁니다. 소녀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습니다. 공포가 엄습했습니다. 밝음이 흑암에, 아름다움이 적막강산에 잡아먹혔습니다. 소녀는 울면서 발을 돌렸습니다. 혼자 흔들거리는 그네의 모습이 자신의 마음처럼 가녀린 떨림 같았습니다.

 

어릴 때는 나비를 좇듯

아름다움에 취해 땅을 찾아갔지

그건 아마도 끝이 아니었을지도 몰라

그러나 살면서 몇 번은 땅끝에 서게도 되지

파도가 끊임없이 땅을 먹어 들어오는 막바지에서

이렇게 뒷걸음질 치면서 말야

 

아주 먼 옛날에는 지구가 편평한 땅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맨 가장자리, 즉 땅끝은 낭떠러지라고 생각했죠. 땅끝은 언제나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지금은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시인에게는 소녀 시절의 그 무서웠던 기억이 끝없이 추락하는 땅끝이었습니다. 아름다운 나비를 따라서 땅끝까지 갔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낭떠러지였죠. 소녀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했습니다. 파도가 밀려오면 물에 젖지 않으려 정신없이 뒤로 물러서는 것처럼 말입니다. 땅끝에 선 듯한 순간, 낭떠러지에 매달린 것 같은 아찔한 때가 있습니다. 살다 보면 그런 상황을 몇 번쯤은 맞닥뜨립니다.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예외는 거의 없습니다.

 

살기 위해서는 이제

뒷걸음질만이 허락된 것이라고

파도가 아가리를 쳐들고 달려드는 곳

찾아 나선 것도 아니었지만

끝내 발 디디며 서 있는 땅의 끝,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위태로움 속에 아름다움이 스며 있다는 것이

땅끝은 늘 젖어 있다는 것이

그걸 보려고

또 몇 번은 여기에 이르리라는 것이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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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치 않았던 두려움은 본능적으로 나를 방어적으로 만듭니다. 뒷걸음질 치면서 도망가게 되는 겁니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죠. 세상은 파도가 아가리를 쳐들고 달려드는 곳인지도 모릅니다. 사방이 땅끝입니다. 누군가는 몇 번 땅끝에 서게 되지만, 누군가는 매일 매 순간 땅끝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산다는 건 절망뿐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시인은 땅끝에서 어린 시절 어둠에 잡아먹혔던 노을을 다시 봅니다. 오늘 태양이 저도 내일 다시 해가 떠오르듯 지금 노을이 어둠에 잡아먹힌 것처럼 보여도 이튿날 아름다운 노을은 다시 나타날 겁니다. 위태로움과 아름다움은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위태로움 속에 아름다움이 있고, 아름다움 속에 위태로움이 있지요. 땅끝은 늘 촉촉합니다. 죽음인 동시에 생명인 겁니다. 그래서 시인은 다시 땅끝으로 갑니다. 노을을 보려고, 어둠을 보려고, 아름다움을 보려고, 위태로움을 보려고. 그것이 인생입니다. 트라우마의 다른 한쪽은 희망일 수 있습니다.

 

트라우마(Trauma)는 ‘상처’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트라우마트(Traumat)’에서 유래된 말로 현재의 감정, 생각, 행동에까지 영향을 주는 과거의 부정적 사건의 경험을 말합니다. 특히나 신경 세포의 연결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감정적 격동 시기를 겪는 청소년기에 겪은 부정적 경험은 꽤 오랫동안 우리 마음을 힘들게 합니다. 가족이나 학교 친구 같은 중요한 관계라면 더욱 그렇죠. 트라우마 이후의 반응들은 대부분 나를 보호하기 위한 내적 방어기제의 작동입니다. 잊지 않으려 자꾸 더 떠올리는 재경험이 일어나고,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각성 상태의 증가가 일어나 예민해집니다. 기분과 인지에 부정적인 변화가 생기며, 이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비슷한 상황을 회피하면서 여러 사회적 상황과 관계로부터 철수를 택하게 됩니다. 물론 처음에는 위험에서 나를 지키기 위한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건 내 자발적 선택이 아닌, 원치 않는 트라우마로 인해 강요받은 선택이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이질감과 갈등을 경험합니다. ‘내가 왜 이럴까?’, ‘원래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 이렇게 말이죠. 잃어버린 관계에 대한 만족감을 보상하기 위해 과하게 집착하기도 하고, 다시 실패를 겪으며 회피하기도 합니다. 파도가 나를 집어삼킬 듯이 달려들었다가,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처럼 한순간에 빠져나가는, 심한 불안과 허무함을 반복하죠. 트라우마에서 나 자신을 건져내려는 시도가 자꾸 실패하면서 계속 뒷걸음질 칩니다. 현재의 내 모습과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면서 자꾸만 그 이유를 찾으려 하죠. 생각의 방향은 점점 과거로 흘러가 트라우마와 마주하게 되고, 이 일로 모든 게 변했다는 결론에 도달하며, 나를 다시 과거로 끌고 들어갑니다. 당시의 경험과 감정을 반복하며, 내 마음은 과거에 머물게 됩니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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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건 현재입니다. 트라우마를 마주하는 것보다 더 힘들기도 하죠. 트라우마를 회피한다기보다는, 잠시 마음속에 보관해두는 겁니다. 내가 열지 않으면 나오지 못하도록 튼튼한 금고에 가둬둔 채, 현재를 먼저 마주하려 합니다. 파도가 세게 달려들어, 내가 서 있는 발밑의 모래를 무너뜨려 나를 넘어지게 하지 않도록, 우선 내가 발 붙이고 서 있는 이 현재를 튼튼하게 해야 합니다. 과거가 해결돼야 현재가 달라진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과거는 해결된다기보다 현재에 기반하여 해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만족스럽지 않은 현재의 내 모습 때문에 과거의 부정적 의미가 더욱 두드러지게 해석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만족스러운 현재를 만들어낸다면 해석이 달라질 수도 있겠죠. ‘그땐 그랬지만, 지금은 비교적 괜찮게 지내고 있으니, 그 힘든 과거를 내가 잘 지나 보냈구나. 대견하다.’ 이렇게요.

트라우마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로만 이어지는 건 아닙니다.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 PTG)’으로 승화되기도 합니다. 충격적인 일을 겪은 후 빠른 회복력을 통해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죠. 심리적으로 더 성숙한 단계에 접어드는 겁니다. 세상에 대해 더욱 깊이 생각할 수 있게 되고, 세계와 관계하는 방식에 있어서 큰 전환이 일어나는 심리적 변화를 말합니다. 또 PTSD 치료기법 가운데 하나인 ‘안구 운동 둔감화 및 재처리(Eye Movement Desensitization and Reprocessing, EMDR) 과정에서 환자에게 각인시키는 메시지 중 “나는 그 사건으로 인해 배운 것이 있다.”, “나는 그 사고를 원치 않았고, 그 때문에 상처 받고 괴로워했지만, 그 사고를 겪으면서 배우게 된 것도 있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이런 각인을 통해 과거의 트라우마를 없애기보다 잘 ‘소화’해내는 방식이 새로운 해결책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입니다.

 

만족스러운 현재란 트라우마를 완전히 극복한 현재만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관계에서 상처 받은 사람이 다양한 관계를 잘해나가는 것만이 만족스러운 현재를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말 그대로 오늘 하루 내 모습을 만족스럽게 만들면 되는 겁니다. 원하는 시간에 일어나고, 맛있게 식사하며, 해가 떠 있을 때 몸을 일으켜 신체 활동을 하는 등 내가 나를 챙겨주어야 합니다. 위태로움 속에 스며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내 내가 뭘 좋아했는지,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생각하고, 나를 위해 하나씩 해주는 겁니다. 내 기분과 몸을 잘 챙겨주는 하루를 보내면서 ‘오늘 하루는 괜찮았네.’ 하는 만족감을 느껴보는 거죠. 이런 하루가 쌓이다 보면 내가 서 있는 땅을 점점 단단하게 만들어줄 겁니다. 우리의 기억이 지워질 수는 없지만, 그 기억이 불러내는 부정적 감정과 영향은 줄일 수 있고, 다른 평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황인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여의도힐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저서 <마음은 괜찮냐고 시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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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의 노력이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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