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환의 [시(詩)와 함께하는 마음공부] (22)

[정신의학신문 : 여의도 힐 정신과, 황인환 전문의]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떠나는 게 인생이라고 하지만, 오고 가는 사이, 즉 살아생전에는 무언가를 조금이라도 더 움켜쥐려 발버둥 치며 사는 게 인생입니다. 어렸을 때는 맛있는 음식이나 멋진 장난감 같은 게 갖고 싶다가 조금 나이가 들면 좋은 학교에 가고 싶고 마음 설레게 하는 이성 친구를 만나고 싶어 합니다. 더 나이 들면 큰 집이나 멋진 자동차 같은 걸 갖고 싶다가 노인이 되면 예전에 누렸던 젊음이나 명예를 되찾고 싶어집니다. 나이와 상황에 따라 대상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무엇인가를 소유하려는 욕망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원한다고 다 소유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소망하는 것의 일부만 소유할 수도 있고, 전혀 소유할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원치 않았거나 생각지도 않았던 것을 소유할 수도 있죠. 그럴 때 우리는 소유하지 못한 것에 미련을 두고, 소유한 것에 실망하며 낙담으로 세월을 보냅니다. 종교 지도자들이나 존경받는 교육자들은 인생은 결국 허무한 것이니 모든 걸 내려놓으라고, 욕망을 다 버리라고, 헛된 탐심을 훌훌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살라고 말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살기 힘듭니다. 그러니 늘 고단하게 삽니다. 근심 걱정이 떠날 날이 없습니다. 더 많은 것을 움켜쥐려 할수록 더욱 지치고 피곤한 삶을 이어가게 됩니다.

 

 나도 봄산에서는

 나를 버릴 수 있으리.

 솔이파리들이 가만히 이 세상에 내리고

 상수리나무 묵은 잎은 저만큼 지네.

 봄이 오는 이 숲에서는

 지난날들을 가만히 내려놓아도 좋으리.

 그러면 지나온 날들처럼

 남은 생도 벅차리.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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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봄날, 산에 오른 적 있으신가요? 얼었던 땅이 녹고 그 위로 파릇한 새싹이 올라옵니다. 조금 지나면 울긋불긋 여기저기서 꽃들이 피어나죠. 초록 바탕 도화지 위에서 총천연색 물감이 자유로이 춤추듯 천지가 생동하는 기운으로 들끓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명이 움트고 올라오기 위해서는 땅으로 떨어져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솔잎과 상수리나무 묵은 잎 등 겨우내 가지에 붙어 있던 생명을 다한 이파리들입니다. 이들이 떨어져야 새잎이 돋고 꽃이 피어납니다. 자연의 이치죠. 죽는 게 있어야 사는 게 있고, 떨어져 내리는 게 있어야 치솟고 올라가는 게 있습니다. 시인은 이 광경에 주목합니다. 자신도 욕망과 집착을 다 벗어버리고 싶습니다. 이파리들이 조용히 자신을 내려놓고 땅바닥에 눕듯 자기도 지난날 무겁게 짊어지고 살던 온갖 짐들을 내려놓고 싶습니다. 그러면 남은 생의 새로운 기운들이 벅차게 올라올 겁니다. 김용택 시인은 자신의 시 ‘그대 생의 솔숲에서’를 이렇게 시작합니다.

 

 봄이 오는 이 솔숲에서

 무엇을 내 손에 쥐고

 무엇을 내 마음 가장자리에 잡아 두리.

 솔숲 끝으로 해맑은 햇살이 찾아오고

 박새들은 솔가지에서 솔가지로 가벼이 내리네.

 

봄이 오는 솔숲에 홀로 서 보면, 조금이라도 더 움켜쥐려 발버둥 치며 살아온 지난 시간이 다 부질없게 느껴집니다. 아무리 부유해도 하루 세끼 먹고사는 건 똑같고, 아무리 가난해도 끼니가 없어 굶어 죽을 정도는 아닙니다. 나에게 있는 것, 내가 가진 것을 보기보다는 나에게 없는 것,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먼저 보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이 허탈하고 공허한 겁니다. 눈을 감고 조용히 봄이 오는 소리를 듣습니다. 봄이 오는 냄새를 맡습니다. 봄이 전해주는 바람을 맞습니다. 저절로 두 손이 펴집니다. 무엇을 손에 쥐고, 무엇을 마음 깊숙한 곳에 잡아 두겠습니까? 다 속절없는 일이죠. 시인은 해맑은 햇살을 바라봅니다. 박새들이 솔가지 사이로 날아다닙니다. 가슴에 묻어 두었던 온갖 잡념들이 사르르 녹아내립니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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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근심과 고단함에서 돌아와 거니는 숲이여

 거기 이는 바람이여,

 찬 서리 내린 실가지 끝에서

 눈뜨리.

 눈을 뜨리.

 그대는 저 수많은 새 잎사귀들처럼

 푸르른 눈을 뜨리.

 그대 생의 이 고요한 솔숲에서.

 

너무 고단하게 살았습니다. 지나치게 근심 걱정에 얽매여 살았습니다. 바람 같은 시간이었을 뿐입니다. 지나고 나니 그렇습니다. 아등바등 핏대를 올리며 살아온 세월을 뒤돌아보면 아쉽고 부끄럽습니다. 이제 겨우 눈이 떠집니다. 산다는 게 이런 거구나, 알 것 같습니다. 남은 생이 봄기운에 솟아오르는 새싹처럼 활기 있으려면 먼저 죽는 게 필요합니다. 버리고, 내려놓고, 손을 펴는 것이죠. 욕망에 눈감고 생명에 눈뜨는 겁니다. 분주하고 소란한 일상에 눈감고 고요하고 평안한 내면에 눈뜨는 겁니다. 봄이 오는 산속에서, 만물이 소생하는 숲 속에서 시인은 이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봄을 맞을 때마다 다시 태어납니다.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는 김용택 시인은 전북 임실군 덕치면에 있는 진메마을에서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가난한 산촌 농사꾼의 아들로 자라난 그는 정말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가까스로 순창농고를 졸업한 뒤에는 아버지처럼 평생 농사지으며 살려고 했답니다. 가난과 농사를 숙명으로 받아들이려 한 거죠. 그러다가 우연히 친구를 따라 교원양성소에 가서 시험을 치렀는데, 덜컥 합격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스물두 살 때 모교인 덕치초등학교 교사가 됐다네요. 시인은 모교이기도 한 덕치초등학교와 인근 분교 평교사로 38년간 봉직한 다음 2008년에 교단을 떠났습니다. 그의 시와 산문에는 어린 시절 가난하게 살며 동생들을 돌보던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구구절절 담겨 있습니다. 냉혹한 현실 속에서도 부단히 희망의 언어를 캐낸 시인의 저력은 어릴 때부터 체득한 자연의 서정과 가족의 무게였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섬진강에 대한 그리움과 장남이라는 의무감이 그를 키운 것이죠.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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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근심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산다는 게 곧 고단함인 거죠. 그렇지만 그중에서도 맏이, 즉 장남과 장녀가 짊어져야 했던 삶의 무게는 기실 남다른 것이었습니다. 가부장적 질서가 뿌리 깊은 우리나라에서는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맏이 콤플렉스라는 말까지 생겨났습니다. 물론 정식 의학 용어는 아닙니다. 장남과 장녀들의 행동이나 지각에 영향을 미치는 무의식적인 관념을 가리킵니다. 맏이기 때문에 갖게 되는 어떤 책임감 혹은 의무감 같은 게 본인의 생각과 행동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겁니다.

무거운 짐을 혼자 지고 가는 사람이 어떻게 하면 근심과 고단함에서 놓여날 수 있을까요?

시인처럼 봄에 산을 올라 보십시오. 솔잎과 상수리나무 묵은 잎이 가만히 이 세상에 내리는 숲에 홀로 서 보십시오. 그런 다음 나를 버리는 겁니다. 지난날들을 가만히 내려놓는 겁니다. 바람을 맞는 겁니다. 생명의 기운을 느끼는 겁니다. 푸르른 눈을 뜨는 겁니다. 고요한 솔숲에서 말입니다. 그러면 지난날들이 변하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남은 생이 변할 겁니다.

지금 힘겨우신가요? 고단하신가요? 쓰러질 것 같으신가요? 눈물이 쏟아지시나요?

힘들다고 말씀하십시오. 짐을 나눠서 지자고 말씀하십시오. 이건 아니라고 말씀하십시오. 나 자신에게, 남편과 아내에게, 부모님에게, 자녀들에게, 가족에게, 친구들에게, 동료에게 말입니다. 계절의 봄은 시간이 지나면 찾아오지만, 인생의 봄은 내가 애써 불러들여야만 옵니다. 산은 언제든 오를 수 있지만, 내 의지와 행동이 뒤따라야만 오를 수 있는 법입니다.

 

황인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여의도힐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저서 <마음은 괜찮냐고 시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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