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광화문 숲 정신과, 김재옥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20대 여대생입니다. 저의 과거를 돌이켜 보면 항상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중학생 때 가장 힘든 시기를 보냈어요. 저와 성향이 맞지 않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 자체가 힘들었고, 무시당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너무 힘든 나머지 울면서 부모님께 힘들다, 전학을 가고 싶다 등의 이야기를 했는데, 덩치도 큰 게 왜 못 이기냐, 너도 잘못한 것이 있으니 그러는 것 아니겠냐 등의 말이 지금까지도 엄청난 상처로 남았습니다.

이후에도 외모적으로나 학업에 있어서 자존심을 건드리고 상처를 주는 말이 계속 기억에 남기도 하고, 진로의 문제가 겹치면서 3년 전 처음 우울증이라는 걸 인식했고, 그 사실을 말했을 때에도 부모님은 너만 힘든 줄 아냐, 너는 항상 부정적인 생각만 해서 그렇다 등의 말들로 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습니다. 3년 전부터 지금까지 걸핏하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자기비관에 빠지게 됩니다.

 

사실 얼마 전 상담을 받기 시작했는데 아직 특별한 차도는 없고, 상담사분께서 부모님을 모시고 상담해 보는 것이 어떠냐 해서 며칠 전 어머니와 같이 상담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께서는 나는 같이 상담 안 받으면 안 되냐, 다른 사람 앞에서 돈까지 주면서 우리 얘기를 하는 것이 싫다 등을 시작으로 해서 또 다투게 되었습니다(아마 처음 누구에게 감정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부담을 많이 느끼신 듯합니다).

그 과정에서 누구 아들은 지금까지도 맞고 자랐는데 아무렇지도 않은데 넌 왜 그러냐, 지금 네가 성인이면 알아서 해야 하지 않겠냐, 그냥 네가 다 잊고 덜 예민해지면 괜찮지 않냐, 중학교 때 일은 욱하는 네 성격 때문에 정확한 상황을 물어볼 수 없었다 등 모든 것을 제 탓으로 돌리는 엄마의 말에 또 한 번 상처를 받았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부모님이 제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신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물론 이것도 제가 무슨 말만 하면 욱하기 때문에 그런 대화가 진행되지 못한다고 주장하십니다). 제가 힘들 때 저는 부모님께 의지할 수 없었고, 부모님이 든든하다거나 부모님이 계셔서 어려운 일들을 헤쳐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든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어머니와의 대화로 이 사실이 확실해진 것만 같아서 너무 절망스럽습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부모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픈 게 이룰 수 없을 정도로 큰 바람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모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 부모님이 저에게 미안해하는 날이 올 수는 있을까요?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광화문 숲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재옥입니다.

우리가 삶을 살면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많습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들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나에게 주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중 하나가 부모님입니다.

부모님도 나를 선택하지 않았지만, 나도 부모님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우연히 맺게 된 인연을 바탕으로 관계를 시작하기 때문에, 종종 가장 소중해야 할 부모 자식 관계가 부모도 자식도 각각 나쁜 사람이 아님에도, 악몽으로 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모님의 삶이 여유롭다면 자녀의 아픔을 보듬어 줄 틈이 있지만, 부모님의 삶 역시 팍팍하다면 자녀의 아픔을 짐처럼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자녀 입장에서는 하나뿐인 부모이기에, 공감해주지 못하는 부모가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아픔에 대해 공감받지 못한 기간이 길기 때문에, 자기 비관에 빠지기 쉽습니다. 내가 아픈 이유가 나 때문이라는 반응을 부모님에게 받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질문자분도 이 부분이 엄청난 상처,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느끼시는 듯합니다.

 

최근 우울함을 극복하기 위해 상담을 시작하신 듯합니다. 그리고 어머니도 그 상담에 동참하셨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반응은 냉담하셨죠. 그래서 질문자분이 더 절망하셨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상담에 동참하신 것 하나만 보더라도 저는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질문자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감정과 사연을 표현하는 것이 익숙지 않은 사람도 있으니까요. 또, 한 번이지만, 어머니가 직접 상담에 동참함으로써, 치료자는 어머니가 어떤 분인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질문자분의 치료에 도움이 될 겁니다.

부모님의 관계 회복과 부모님의 사과를 받기 위한 방법이 부모님을 반드시 치료에 동참해야 하는 것이라면, 질문자분의 현재 상황은 분명 좋지 않은 것이겠죠. 하지만 관계 회복과 사과를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부모님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질문자분 스스로의 회복입니다.

 

왜곡된 부모님은 왜곡된 자녀를 양육할 수밖에 없으며, 왜곡된 자녀는 부모를 더 왜곡되게 보기 마련입니다. 서로 왜곡되어 있기에 올바로 보기가 어렵고, 그래서 갈등은 점점 더 커지죠. 만약 나 자신이 올바르게 상황을 보게 된다면, 부모님을 바로 볼 수 있게 되고, 그러면 건강한 나를 기준으로 부모님을 올바르게 기댈 수 있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도 갈등은 있겠지만, 전자보다는 훨씬 덜하죠.

그러니 지금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자분의 회복이며, 질문자분은 이미 그 회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치료를 스스로 받고 계십니다. 그러니 자신의 선택을 믿고 따르시길 바랍니다.

 

 

*  *  *
 

정신의학신문 마인드허브에서 마음건강검사를 받아보세요.
(20만원 상당의 검사와 결과지 제공)
▶ 자세히보기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정신건강의학과는 처음이에요>
전문의 홈 가기
  • 애독자 응원 한 마디
  • "선생님 경험까지 알려주셔서 더 와닿아요. 재옥쌤 짱!"
    "정말 도움됩니다. 조언 들으며 자유를 느꼈어요. 실제로 적용해볼게요."
    "늘 따뜻하게 사람을 감싸주십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