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안녕하세요, 스스로에 대한 고민이 너무 많아 문의를 드려요.

저는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입니다. 제가 안고 있는 문제는 심한 감정 기복, 그리고 저 자신도 억제하지 못하는 충동이에요.

겉으로 웃고 있다가도, 조금만 제 기준이 맞지 않으면 기분이 확 상해버리고, 속으로 부글부글 끓어요.

잘 참아지지도 않아서, 수업시간에도 누가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도저히 앉아있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버립니다. 사람들이 많은데도 소리를 지르거나 짜증을 낸 적도 몇 번 있어요.

사람들하고 친해질 수 없는 성격이죠. 지금은 처음에 친했던 친구들도 다 멀어진 상태입니다.

연애 경험은 있지만, 남자 친구에게 제가 너무 심한 집착을 하고, 헤어짐을 견딜 수 없어 제가 너무 매달리는 바람에 헤어졌어요.

 

사진_픽사베이

 

이런 문제는 꽤나 오래됐어요.

처음에는 중학교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고, 학교에 가는 것이 너무 싫어서 우울증 치료를 받기 시작했는데, 나중엔 우울한 것보다는 분노가 더 많이 나타나고, 못 참을 때는 저도 모르게 몸에 상처를 내고 있더라고요.

친구들도 거의 없고, 은근히 저를 따돌리는 분위기였어요. 늘 외롭고 쓸쓸하게 지냈습니다.

 

거의 6년 가까이 상담과 정신과 치료를 받았는데 좋아진 것은 솔직히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자라오면서 겪었던 부모님의 학대, 따돌림 같은 것들이 지금의 제 모습을 만들었다는 건 알겠는데, 그러고 나면 ‘뭐 어쩌라고?’ 이런 생각이 들 뿐이에요.

지금은 치료에 회의감을 느껴 겨우 소량의 약만 유지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상담을 계속 받다 보니 선생님이 저한테 ‘경계성 성격장애’라고 하더군요. 찾아보니 정말 저랑 똑같은 행동을 보이는 병이더라고요.

그런데 성격장애는 평생 안고 가야 하는 문제고, 바뀔 수 없다는 이야기가 많아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상담을 한창 받을 때, 내가 좋아지고 나면 하고 싶은 것들이 무척 많았었는데 이제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들 뿐이에요.

 

저는 정말 변하기 힘든 걸까요?

제가 좋아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조언을 부탁드려요.

 

 

A) 질문자님의 사연이 참 안타깝습니다.

적지 않은 기간 동안 받아온 치료도 효과가 없다고 느끼신 그 순간, 얼마나 좌절스러우셨을까요.

먼저 힘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그간 무슨 치료를 받아오셨는지, 어떤 경과를 밟았는지에 대한 정보가 없어 세세한 말씀을 드리기는 힘듭니다.

짧은 글만으로 질문자님께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전해드린다는 것도 어폐가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먼저 현 상태의 자신에 대해 조금은 이성적으로 바라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진_픽셀

 

글에서도 드러났듯이 그간 꽤 긴 기간 동안의 상담과 치료를 통해 자신의 행동과 마음의 뿌리에 대해 어느 정도 통찰(insight)은 가지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통찰을 가지고 계신다면, 현재의 상태를 '치료 실패'라고 단정 지을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앞으로의 치료 방향에 있어서 주요하게 작용할 수 있는 강점이 될 수 있어요.

복잡한 정신-심리적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 중의 하나가,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과 불안이거든요.

질문자님께서는 이런 중요한 과정은 이미 거친 상태인 것 같습니다.

부디 아직 끝나지 않은 치료 중에, 많은 것들을 얻어나가고 있는 과정이라 생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왜 변화가 없을지를 따로 떼놓고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자신에게 진정한 변화의 동기를 막는 그 무엇이 있는 것은 아닌지, 주변 환경 혹은 주변 인물이 자신의 발목을 잡는 것은 아닌지, 혹은 머리로는 변화의 열망에 가득 차 있지만 자신도 모르게 몸에 밴 습관처럼 대인관계 등에서 과거의 패턴을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한 고민이죠.

노트를 펼쳐서, 중간에 세로로 된 긴 줄을 그어 보세요.

왼쪽에는 변화가 어려운 이유들에 대해 나열해 보고, 오른쪽에는 이 이유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 건강한 대처를 적어 보면 도움이 될 겁니다.

 

과거에 대한 통찰과 정서적 변화도 중요하지만, 이를 겉으로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반복적인 행동적 접근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몸에 밴 습관이 쉽게 변하지는 않아요.

내가 아무리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알고, 변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변화는 어려울 뿐이죠.

그러니 문제시되는 행동들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변화하기 위한 방법들을 찾고, 이를 습관화하기 위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해요.

자신의 감정조절, 충동적인 자해 등에 큰 효과를 보인다고 알려진 DBT(변증법적 행동치료)나 성격 장애에 대한 치료적 접근인 스키마 치료 등에서 취하는 방식이지요.

 

사진_픽사베이

 

통찰에 대해 조금 더 말씀드리자면, 통찰을 가진다는 것은 단순히 나에게 중요했던 과거의 인물과 사건을 다시금 기억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오히려 과거의 경험들이 나를 얼마나 힘들게 했나, 내가 당시에 얼마나 힘들었기에 지금의 극단적인 행동을 택하게 되었나, 어린 내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과거의 자신에 대한 공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나를 이해하고, 나의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보며 스스로에게 사랑을 건네주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과거의 내가 받았던 학대와 따돌림의 경험에 원망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어리고 힘없었던, 그래서 당할 수밖에 없었던 어린 자신에게 위로와 공감, 지지를 마음속으로 건네주는 과정이 꼭 필요할 것 같습니다.

몸은 성장하여 어른이 되었지만, 어리고 취약한 아이는 채 자라지 못하고 자신의 마음 안에 웅크리고 있을 거니까요.

마음으로나마 그 아이에게 손을 내밀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마지막으로, 경계성 성격장애라는 진단명에 자신을 옭아매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진단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비슷한' 증상군을 가진 이들을 분류하는 하나의 방법에 불과하니까요.

그렇지만 '경계성 성격장애'와 같은 꼬리표를 스스로 붙이고 나선, 지레 좌절을 경험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지금은 안갯속을 헤매는 기분이지만, 의외로 몇 발자국만 더 걸으면 자신에게 꼭 필요한 이정표가 보일 수 있습니다.

지금의 좌절도 과정에 불과하니, 조금만 더 힘을 내셔서 걸음을 옮기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질문자님의 고민에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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