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몇 달 전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멍하고, 식사를 안 하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혼잣말을 계속하시더라고요.

너무 무서워서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를 정신과에 데려갔고, 정신과에서는 조현병이 이제 시작된 것 같다면서 입원해서 치료하고, 검사도 좀 하자고 했어요.

어머니는 환청 같은 것도 아니고, 정신병 환자도 아니라면서 반대를 하셨고요.

그래서 일단 어머니를 집에 모시고 왔는데, 어머니가 물건을 던지며 욕을 하고 화를 내시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사람을 불러 강제입원을 했습니다.

매일 같이 꺼내 달라고 온 가족에게 전화하는 통에, 한 달을 못 채우고 퇴원시켜드렸죠. 그런데 또 그 상황이 반복됩니다. 약도 거부하시고요.

 

아버지는 일이 바빠 아침 일찍 나가고, 저녁 늦게 들어오세요. 오빠는 이제 고3이라 밖에서 계속 공부하다가 잠만 집에서 자구요.

제가 주로 어머니를 돌보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공부에 집중할 수도 없고, 내 인생이 다 망가진 것 같고,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절망적입니다.

적어도 어머니가 환청을 인정만 해도 마음이 편할 텐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진_픽셀

 

A) 가족이 어떤 병을 진단받게 된 순간, 가족 전체의 인생이 달라져요. 하지만 어떤 병이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는 정도의 차이가 있죠.

예를 들어, 어머니가 고혈압을 진단을 받으셨다면 가족들의 삶은 크게 달라지진 않아요. 음식 간이 약해지고, 어머니와 함께 운동하는 시간이 생기는 정도의 변화죠.

어머니가 암을 진단받으셨다면 가족들의 삶은 꽤 달라지죠. 수술이나 항암치료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함께 해야 하고, 이전에 어머니가 하셨던 일들을 가족들이 나눠서 해야 하니까요.

정신질환은 가족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편이에요. 특히 환자 당사자가 자신의 병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는 더 그렇죠. 지금 경험하시는 것처럼요.

 

지금 질문자 분이 겪고 있는 상황을 정리를 좀 해볼게요.

1. 어머니가 병을 인정하지 않는다.

2. 어머니가 정신과 치료를 받지 않는다.

3. 어머니를 돌볼 사람이 없다.

4. 공부를 하기 어렵다.

5. 죽을 때까지 지금 같이 살 것 같아서 숨이 막힌다.

 

조현병 환자분이 자신의 병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약이 필요해요.

지금 질문자 분에게 제가 '사실 질문자 분은 아버지는 15년 전에 돌아가셨고, 지금 당신이 아버지라고 믿는 사람은 당신 상상 속에 있는 거예요.'라고 말한다면 믿으시겠어요?

우리가 어머니에게 환청이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어머니는 그 소리가 진짜 들리는 것으로 느끼지만, 우리에게는 그 소리가 안 들리고, 우리의 현실에서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환청인 거죠.

약을 먹어야 환청 소리의 크기가 줄어들고, 빈도가 줄어들어요. 이렇게 증상이 줄어들게 되면, 어머니도 정상적으로 생각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겨요. '이 소리가 진짜일까?' 하는 의심이 들게 되죠.

그렇게 환자도 자신만이 들을 수 있는 소리에 대해 의심이 생길 때, 그게 환청이고 증상이라고 설득을 해야 환자도 수긍할 수 있어요.

 

사진_픽셀

 

다시 예를 들자면, 질문자 분이 매일, 24시간 아버지랑 얘기하는 상황에서 의사가 ‘아버지 자체가 망상이다.’라고 하면 의사 말을 믿을 수 없겠죠.

하지만 아버지랑 일주일에 한 번씩 얘기하는 상황에서 의사가 아버지가 망상이라고 한다면, 아버지와 얘기하지 않을 때 혼자 생각해 볼 수 있잖아요. '정말 아버지가 망상인 걸까?' 이렇게요.

결국 어머니의 환청 등 조현병 증상이 약으로 어느 정도 호전이 되고, 그 이후에 가족들과 의료진이 잘 설득을 해야 자신의 병을 인정하실 거예요.

현재 어머니 증상은 더 입원치료를 해서 약물치료를 받고, 더 증상이 줄어들어야 해요. 그래야 자신이 환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어머니가 하실 수 있어요.

 

어머니가 퇴원을 요구하는 압박감에 가족 분들이 퇴원시킨 상황인 것 같아요. 어머니를 버렸다는 죄책감이 실제로 가족 분들에게 있는 거겠죠. 그 부분을 어머니가 언급하니 견디기 힘드셨을 거예요.

많은 조현병 환자 가족 분들이 죄책감을 느끼세요. 환자를 병원에 버렸다고 말씀하시죠.

하지만 아픈 환자를 병원에서 치료받게 하는 게 어디가 잘못된 걸까요?

아이 이가 썩으면 치과에 가서 이를 치료하게 하잖아요. 아이는 싫어하지만요. 이 경우도 죄책감을 느낄까요? 아이가 치료를 받으면 이가 회복될 것을 알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요.

조현병에서 가족들이 느끼는 죄책감은 표면적으로는 강제 입원 때문이에요. 하지만 실제로는 회복에 대한 희망이 적기 때문이에요. 이런 상황이 평생 지속될 것 같고, 이런 상황이 평생 지속이 된다면 자기 자신이 정말 떠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내가 어머니를 떠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죄책감이 드는 거죠.

강제입원이 환자를 버리는 것이고, 그래서 죄책감이 드는 게 아니라 이런 상황을 평생 견딜 수 없고, 내가 환자를 떠나고 싶어서 죄책감이 드는 거예요.

 

그냥 말장난처럼 들릴 수 있지만, 현실에 적용하면 완전히 달라요.

강제입원 자체가 환자를 버리는 거라면, 환자가 입원해서 치료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병원에 데리고 갈 수 없어요. 그 행위 자체가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런 상황을 견딜 수 없어 환자를 떠나고 싶은 거라면, 환자를 더 열심히 병원에 데리고 오게 돼요.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해서, 최대한 증상을 줄여야 자기 자신이 어머니를 떠나지 않게 되는 거니까요.

하지만 어머니는 강제입원 때문에 분명히 상처받으시죠. 내가 어머니를 강제입원시킨 것이 어머니 증상을 호전시켜서 더 오래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더라도요.

그래서 강제입원을 시키신 뒤에, 전화나 면회를 최대한 자주 하는 것이 중요해요. 주치의가 제한하지만 않는다면요. 어머니가 가족에게서 분리되어 있다는 느낌을 최대한 덜 가지게 만드는 거예요.

'치료를 위해, 장기적인 관계를 위해 어머니를 강제입원시켰지만, 우리가 당신을 여기에 가둔 것이 아니라, 당신을 늘 걱정하고 있어요.'

이런 메시지를 어머니가 느낄 수 있게 해주세요.

 

사진_픽사베이

 

누구나 처음에는 어머니를 돌볼 사람이 없어요. 왜냐하면, 원래 어머니는 돌봐줄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잖아요. 그래서 가족들도 각자 일상에서 어머니를 돌보기 위한 시간을 만들 필요가 없었죠.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고, 가족들이 자신의 시간을 쪼개서 어머니를 위한 시간을 만들어야 해요.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정신과 환자가 가족인 경우, 가족들의 삶 상당 부분을 투자해야만 가족이 유지가 될 수 있어요. 어머니와 함께 사회에서 가족으로 지내고 싶으시다면, 다른 가족들과 상의해서 업무분담을 하셔야 해요.

요일별로 하시든, 일에 따라서 분담을 하시든 가족 구성원 모두가 분담을 해야만 사회에서 어머니가 지내실 수 있어요.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라도 빠지면 결국 가족 간에 싸움이 생겨요.

모두 똑같은 양을 분담하라는 건 아니에요. 조금이라도 일을 분담해야 상황에 대한 책임감이 생겨요.

절대 질문자 분이 여자고, 막내이기 때문에 거의 모든 일을 하시려고 하면 안돼요.

업무 분담에 대한 얘기를 직접 하기 힘드시다면, 이 글을 가족 분들에게 보여주시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죠.

 

참고로, 일이 많아서 힘든 것보다, 일을 누가 맡을지 정해지지 않아서 힘든 것이 더 심해요.

어떤 일을 누가 할지 확실히 정해 높으면, 일이 늘어나도 견딜 수 있어요. 소년소녀가장이 견딜 수 있는 이유예요. 어차피 자기가 다 해야 하니깐, 일을 누가 맡을지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거든요.

업무 분담이 된다면, 질문자 분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길 거예요. 이렇게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공부하실 수 있어요. 물론, 어머니가 아프시기 전보다는 공부를 할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은 줄어들겠지만요.

 

마지막으로, 지금 같은 상황이 평생 지속되지는 않아요. 초반에 어떻게 가족들과 업무분담과, 어머니 치료에 대한 방향을 정해놓는 것에 따라서 아직은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이 너무 많아요.

아직 영화의 초반부예요. 이 영화가 해피엔딩이 될지, 새드엔딩이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몰라요. 다행인 점은 본인이 영화의 감독 겸 주인공이라는 점이죠. 줄거리를 주도할 수 있어요. 그러니 본인 인생의 조연들인 다른 가족들을 잘 설득해서 함께 팀으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시길 바랄게요.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정신건강의학과는 처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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