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안녕하세요, 저는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 저는 내성적인 편이긴 하지만, 스스로 꽤 차분하고 평범한 아이라고 생각해 왔어요. 친구들과의 관계도 원만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소한 일에도 쉽게 화가 나기 시작하더라고요. 예전에는 이런 적이 없었는데, 조금이라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느낌이 들어요.

물론, 이걸 밖으로 말하고 다니지는 못해요. 주로 혼자 스트레스를 풉니다.

제가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좀 독특해요. 손톱으로 제 손목을 긁어요. 처음에는 손톱으로 꾹 살갗을 눌렀었는데, 이제는 조금 피가 날 때까지 긁기도 해요. 통증은 그리 심하지는 않아요.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시작했는데, 요즘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니 점점 더 자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떨 때는, 뾰족한 물건으로 손목을 긁어 보면 어떤 느낌일까 생각이 들기도 해요. 물론,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나서는 소름이 끼쳐서 그만두었지만요.

걱정은,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나 점점 더 심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거죠.

저는 뭐가 문제인가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진_픽셀

 

A) 안녕하세요.

청소년기에는 급격한 신체 성장, 여러 호르몬의 왕성한 분비, 환경과 주어진 역할의 변화 등이 맞물려 혼란스러운 시기지요.

질문자님께서 겉으로 차분한 척해도 자신도 모르게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적절하거나 건강한 스트레스 해소 수단(운동이라든지, 취미활동 같은)을 가지고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라면 충동적인 행동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내적으로 쌓인 스트레스는 어떤 식으로든 터지기 마련이니까요.

 

질문자님께서 하고 있는 자해도 그 충동적인 행동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청소년 중에서, 굳이 위험한 생각을 하는 경우가 아닐지라도 스트레스 해소 수단으로써 자해 행동을 하는 경우가 의외로 적지 않습니다.

자해 행동의 범위는 손톱으로 손목을 누르는 사소한 것부터, 도구를 이용한 위험한 것 까지 범위가 상당히 넓습니다.

문제는, 사소한 행동을 그대로 둔다면 더 위험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죠.

 

자해를 하게 되는 원인 중 생물학적으로 규명된 것은, 자해를 하는 순간 우리 몸에서 진통제 역할을 하는 오피오이드 성분의 호르몬이 분출되어 자해를 한 직후에 신체적, 심리적 고통을 덜어주기 때문입니다.

넘어져 생긴 상처가 다친 직후에는 그리 아프지 않은 이유가, 이 오피오이드 호르몬이 방출되어 고통을 경감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지요.

잦은 자해를 통해 심리적 위안이나 긴장의 경감을 경험했다면, 여기 몰두하여 자해행동의 빈도가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원하지 않더라도, 자신도 모르게 자해에 중독되기도 합니다.

 

사진_픽셀

 

다만, 하나 걱정이 되는 것은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는 마음 안의 우울, 분노와 같은 감정이에요. 자신은 매우 평온한 상태라고 하지만, 스트레스에 자해 행동으로 반응하는 것이 꼭 ‘사춘기’라서 그러는 경우는 흔치 않거든요.

오히려, 자신도 모르게 마음 안에 쌓인 부정적인 감정들이, 스트레스가 촉매제가 되어 폭발하는 경우가 많아요.

감정 폭발 직후에는 시원한 마음,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 드니 괜찮은 것 같지만, 마음 안에 있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상태겠죠. 스트레스 상황이 되면 같은 현상이 반복될 수도 있어요.

그러니, 걱정만 하지 말고, 자신이 기분 상태, 성격 특성 등에 대해서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여 정확한 평가를 받아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단순히 사춘기에서 오는 충동성으로 진단되면 그대로 안심이 될 것이고, 내부의 우울이 심한 상태로 진단 내려진다면 더 늦기 전에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있으니까요. 어느 쪽이든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자해 충동이 올라오는 경우에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몇 가지 팁을 알려드릴게요. 경계성 성격장애를 치료하는 DBT(변증법적 행동치료)에서 자해 행동에 대비하는 효과적인 방법이에요.

 

첫 번째는, 충동이 느껴지면 자신이 좋아하는 ‘감각’에 집중하여 자신을 위로하고, 이완시키는 방법입니다.

좋아하는 군것질과 같은 음식, 평소 즐겨 듣던 음악, 편안해지는 영상 등을 충동이 느껴지는 순간 바로 활용하는 거죠.

미리 충동에 대비해 음악이나 영상을 저장해 놓거나, 간식거리를 챙겨 다니는 등 언제든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놓는 게 중요하겠죠?

 

두 번째는, 주의를 환기, 분산시키는 겁니다.

충동이 올라오는 순간, 차가운 얼음을 손에 꼭 쥐고 있거나,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거나,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하거나, 운동장에 나가서 지칠 때까지 뜀박질을 하는 거예요.

이 또한, 평상시에 자신이 언제든 활용할 수 있게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요.

충동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증가하는 것이 아니고, 결국 줄어들게 됩니다. 그러니 충동이 일어나는 시간을 잘 견디는 방법들이에요.

 

물론, 궁극적으로는 건강한 스트레스 대처 수단이나 취미 생활을 찾는 것이 내부에 쌓인 부정적인 감정들을 털어낼 수 있는 방향이 되겠죠. 내부에 쌓인 스트레스가 방출될 수 있는 길을 잘 뚫어주는 것이라 이해하면 좋겠네요.

혼란과 염려가 앞설 텐데, 말씀드린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고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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