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안녕하세요. 저는 1년 정도 우울증 치료를 받아왔습니다.

스스로의 행동이나 생각에 대해 답답한 마음에 평소에 이것저것 인터넷을 자주 뒤져보곤 하는데, 얼마 전에 부적응적 백일몽(Maladaptive Daydreaming)이라는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정신질환으로 아직 인정이 되지는 않는 것 같고, 우울증 등과 동반한다고 적혀있었습니다.

놀랍게도 제가 찾던 제 증상이랑 너무 똑같아서 이런 걸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궁금합니다. 혹시 백일몽처럼 현실의 힘겨움을 해소하기 위해 매달리는 생각도 약으로 좀 완화가 되거나 할 수 있을까요?

 

이게 참 어리석단 걸 스스로 알면서도 불행한 현실 때문에 자꾸 백일몽 속의 거짓된 삶에 매달리게 됩니다. 현실에선 느껴본 적 없는 행복감을 느낀다고 해야 할까요.

일상생활(특히 자고 일어나는 시간)에 적잖은 영향을 주고 있는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인터넷에서 떠다니는 글을 본 바로는 현실에서 꿈이 이루어질 수 있게 하는 걸 대안으로 제시하던데, 제 머릿속을 맴도는 일들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서요.

우울증을 치료하면서 분명 약물치료가 큰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백일몽 문제도 약물치료로 효과를 볼 수 있을까요?

사진_픽사베이

 

A) 안녕하세요. 우울증 치료를 받고 계시는군요. 질문 주신 내용을 보니 우울감에 대한 어려움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증상, 행동에 대한 걱정과 불안 또한 높은 신 것 같습니다.

스스로의 문제에 대해 답답함을 느끼고 인터넷을 찾아보며 대입시켜보고 계신 것들로 보아서 얼마나 질문자님께서 고민을 많이 하고 계실지 짐작이 가는 것 같습니다.

 

백일몽, 그중에서도 부적응적 백일몽에 대해 질문을 주셨는데요, 말씀 주신 것과 같이 부적응적 백일몽(Maladaptive Daydreaming)이라는 것은 아직 정신질환으로 진단 목록 편람에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으나, 독립적인 정신질환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증상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선 Daydreaming이라는 단어는 백일몽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공상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현실과 맞지 않는, 혹은 현실에 대한 욕망에 대해서, 또는 현실과 전혀 관계없이 엉뚱하게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행동을 일컫습니다.

예를 들면, '좀 전에 동료와 말다툼을 할 때에 이렇게 말을 했으면 그 친구가 아무 대답을 못했을 텐데'라고 생각하면서 그때의 다툼으로 돌아가 동료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주는 상상을 하거나, 신나는 록 음악을 들으며 탑스타가 되어 대중들 앞에서 멋지게 공연을 하는 상상에 빠지는 것처럼 상상 속의 상황으로 들어가 역할극을 해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day-dreaming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밤에 자면서 꿈을 꾸며 상상 속의 세계를 체험하는 것처럼, 잠을 자지는 않지만 낮에 어느 정도 의식의 통제하에 꿈을 꾸는 것이지요.

 

이러한 공상은 누구나 당연스럽고 흔하게 하고 있듯이 결코 어떤 병적인 상태나 증상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공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현실에서 이룰 수 없지만 나도 모르게 올라오는 욕구나 생각들을 건강하게 해소할 수도 있고, 어떤 창의적인 깨달음이나 예술적인 발견을 할 수도 있습니다.

공상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의 감정과 상황을 공감할 수 있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 대입해보는 것, 그래서 그 사람처럼 느끼는 것은, 그 사람의 상황을 상상하고 내가 그곳에 있다고 여기는 백일몽의 과정이 짧게라도 스쳐가면서 이루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백일몽을 통해 정신과적인 질환을 치료하기도 합니다. 공상하는 능력을 통해 최면에 빠질 수도 있고, 면담을 통해 어린 시절의 상처를 보듬을 수도 있습니다. 공상, 백일몽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고, 어떤 의미로는 건강한 정신건강을 유지하는 전략이 되기도 합니다.

 

사진_픽사베이

 

그렇지만 Eli Somer라는 임상심리학자는 최근 이러한 백일몽이 과다할 경우에는 일상생활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고, 정신병리를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과도한 종류의 백일몽은 별도의 정신질환으로 분류되어야 한다는 연구를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습니다.

물론 Somer 박사의 주장이 정신의학 주류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백일몽이 무척이나 흔하고, 판타지를 상상을 통해 해소한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무척 많기 때문에, 그의 주장이 대중적으로는 꽤 많이 주목받고 있는 형국입니다.

 

사실, 부적응적 백일몽 장애라는 독립적인 진단 체계의 실질적인 필요성을 떠나서, Somer 박사가 주장하는 정도의 심한 백일몽이라면 분명 그것 때문에 일상생활에서의 기능 저하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실제 임상에서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백일몽에 빠져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소모하고, 그것 때문에 일상 업무의 집중력과 효율성이 저하된다면 분명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Somer 박사가 정신장애로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도의 백일몽은 일반 인구에 비해 3배 이상의 시간을 소모하는 경향이 있고, 무척이나 정교하게 설정된 평행 세계에서의 새로운 자아를 공고하게 유지하는 모습을 흔히 보인다고 합니다.

 

현재로서는 부적응적 백일몽이 진단적으로 인정되고 있지 않는 만큼, 그 자체를 겨냥한 치료법이나 약물이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것은 없습니다.

또한 심한 백일몽이 어떠한 정신적 병리에서 기원하는 것인지, 또 심한 백일몽이 다른 어떤 정신적 병리를 일으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각각의 의견이 분분한 상황입니다.

실제로 저 또한 백일몽에 과도하게 빠지게 되는 행동이 어떤 한 가지의 병리에서 기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질문자님의 상황 또한 그 원인과 근본적인 해결책에 대해서는 현재 치료받고 계신 주치의와 심도 있게 상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백일몽이 일종의 해리(Dissociation)라고 바라보는 시선도 있기 때문에, 그러한 측면에서 질문자님께 한 가지 도움을 드릴 수 있는 것은 <착지 요법>을 활용해보는 것입니다.

해리 상태란, 심한 스트레스 상태에서, 혹은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한 심한 고통으로 일시적으로 자아가 분열되는 증상입니다. 가장 심각한 형태의 해리 증상이 드러나는 것은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중인격장애(해리성 인격장애)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인격이 아예 분열되어버리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여기가 어딘지, 내가 누군지 혼란스러워하거나, 주변의 자극을 듣지 못하고 멍해지는 정도의 해리를 보이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부적응적으로 심한 백일몽이 수시간 동안 공상에 빠져 현실에서 분리된 자아의 활동에 심취해있고, 그로 인해 공상하는 동안 현실에서의 자극이나 의무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면, 백일몽 또한 의식적인 수준의 경미한 해리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착지 요법은 이러한 해리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반복적인 해리 상태에 빠지는 환자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개발된 인지행동치료 요법입니다.

 

사진_픽사베이

 

착지 요법은 머릿속의 공상이나 현실 밖으로의 분열에서 벗어나 현실에 집중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자극들, 오감을 각각 분리하여 느껴보는 것입니다.

우선 첫째로, 눈에 보이는 것 다섯 가지를 골라 이야기해볼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이든, 눈에 보이는 벽, 의자, 책상, 창문 무엇이든 다섯 가지를 골라보고 그것들이 각각 어떤 색깔인지, 어떤 모양인지, 자세히 들여다보십시오.

그리고 난 뒤에는 청각, 들리는 것 다섯 가지를 골라볼 수 있습니다. 무시하고 있던 소리들, 창 밖의 자동차 소리라든지, 멀리서 들리는 누군가의 웅성거림, 혹은 시계의 째깍거리는 소리, 심지어 내가 숨을 쉬는 소리 등까지 예민하게 귀를 기울여 지금 당장 들리는 소리들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어떠한지를 살펴보십시오.

그리고는 느껴지는 감촉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 한번 느껴볼 수 있습니다. 입고 있는 옷의 감촉은 어떠한지, 엉덩이에 닿아있는 의자의 감촉은 어떤지, 손에 쥐고 있는 핸드폰의 감촉, 온도, 질감에 집중해 보십시오.

그리고 난 뒤에는 몸의 움직임을 한번 느껴보실 수도 있습니다. 오른손 주먹을 꽉 쥐고, 5초간 힘을 주었다가 풀어보기도 하고, 그러면서 몸의 어떤 근육이 수축하고 어떤 부분에서 뻐근함이 느껴지는지, 느껴보는 것입니다. 잼잼을 하듯 주먹을 쥐었다 풀었다 해볼 수도 있습니다. 혹은 발가락을 하나씩 움직여보거나, 무릎을 굽히고 다리를 움직여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내 몸이 지금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디에 힘이 들어가고 있는지를 집중해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씩 현실의 감각에 집중함을 통해 우리는 분리된 자아를 떠나 현실로 '착지'할 수 있습니다.

그다지 어려운 방법은 아니니, 걱정스러울 정도로 백일몽에 빠지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면, 충분히 시간을 들여 말씀드린 바와 같은 착지 요법을 천천히 시행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설명에 앞서 말씀드렸듯 백일몽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백일몽을 통해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과 공상에 빠져 있다는 사실 자체를 과도하게 죄책스럽게, 혹은 자괴감으로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질문자님을 더욱 우울하고 힘들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상에 빠지는 것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고 흔한 일이며, 어쩌면 건강한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과도한 자책감, 우울감에 빠지지 않으시는 게 어쩌면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우울증을 치료받고 계시다고 하니 이러한 고민들에 대해서도 주치의 선생님과 한번 상의해보시기를 권유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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