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다름이 아니라 요즈음 우울감이 심해서 문의드립니다.

저는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의 권유로 인해 장래희망이 의사였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다 보면 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학창시절을 보냈고, 고3 수험생일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후, 남들은 부럽다고 하지만 저로서는 아쉬운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생활을 하던 중 아쉬움이 커서 입시공부를 다시 했고, 성적은 나쁘지 않았지만 대학에 모두 떨어져 결과적으론 실패했습니다. 미련을 끊지 못하고 여러 차례의 입시를 더 치렀는데, 나름 열심히 공부에 임했지만 항상 아쉽게 실패했습니다.

 

계속되는 실패의 영향인지 주변 사람들로부터 제가 예전보다 어두워졌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저 또한 스스로 그렇게 느끼고요. 게다가 계속된 공부로 주변 사람들과의 연락이 끊기면서 지금은 주변에 연락하는 사람들이 많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계속되는 실패의 경험 탓인지 친한 사람들은 물론 남들의 성공에 열등감을 많이 느낍니다. 친한 친구의 취업, 경사에도 겉으로는 축하해주지만 속으로는 '잘 안 됐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큽니다. 남들의 행복을 축복해주지는 못할망정 저주를 하는 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집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나는 정체되어 있는데 남들은 사회로 한 발씩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에 스스로가 너무 불행하게 느껴집니다. 이런 영향인지 요즈음에는 무엇을 하든지 무기력하고, 사소한 일에도 예민해져 화가 납니다. 자존감도 낮아서 남들에게 미워 보이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고, 남에게 제 치부를 드러내기 싫어서 겉으로는 이런 상황이 별일 아닌 척을 하며 혼자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사진_픽셀

 

작년부터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데, 근무를 하면서 올해에도 입시를 또 치를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제 인생에서 '의사'라는 직업 말고는 다른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고, 만약 이대로 포기한다면 평생 미련이 남을 것 같고, 병원에 계신 의사선생님들을 보면 자괴감이 들 것 같습니다. 직장에서는 간단하고 단순한 업무를 하면서도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스스로 사회성이 떨어진다 생각해 추후에 직장을 다니면서 불행한 삶을 살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의사선생님들께서도 의사로서의 고충과 스트레스가 있겠지만 저에게는 이 또한 선망의 대상일 뿐입니다. 이런 생각에 다시 입시를 치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입시공부를 하는 과정의 고통과, 다시 실패를 할까봐 두려움이 앞섭니다.

 

그 외적인 요인들에 의해서도 너무 큰 스트레스를 받아 약간의 탈모 증상도 있고, 최근에는 약한 발작이 오기도 했습니다. 갑자기 머리가 띵하며 심장이 빨리 뛰고, 주변의 사물과 사람들의 움직임, 소리가 평소보다 너무 빠르게 느껴져 이질감이 들었습니다. 힘들어서 밖에 나가서 바람을 쐬니 나아지긴 했지만 이러한 증상이 또 재발할까 봐 두렵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 정신건강의학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싶었지만 일명 '정신병원'에 간다는 것은 남들이 보기에 이상한 사람이 될 수도 있으며, 부모님께도 차마 말씀을 못 드리겠고, 추후에 저에게 불이익이 갈까 봐 선뜻 가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증상이 병원에 내원해야 할 만큼 심각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A)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이야기하기 힘든 오래된 고민을 자세히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 이 글에 다 담지는 못했더라도 질문자님께서 겪고 계신 고충이 충분히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우선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질문자님께서도 글에서 말씀하셨다시피, 질문자님의 스트레스와 불안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심해지고 있는 것 같다는 점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느끼는 열등감과 불행함 등이 예민함, 무기력감으로 이어지고 있고, 또 이런 스트레스가 실제로 현재 근무 중인 직장에서의 어려움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어 보입니다. 이러한 부분들은 지금 질문자님의 고충이 단순히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고민과 걱정 정도의 수준에서, 질문자님을 지속적으로 괴롭히고, 질문자님의 능력과 기능을 갉아먹는 병적 불안의 수준으로 발전해나가고 있을 위험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더군다나, 최근 들어서 생겼다는 발작이라고 표현하신 증상들은 불안이 극심할 때 나타날 수 있는 이현실감 혹은 공황 발작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점점 악화되는 불안과 우울감으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고, 이로 인해 심한 병적 증상과 직업적 기능의 저하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의 도움을 받아보시는 것을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방문하여 상담을 받아보시면, 분명 '정신병원'이라고 통칭되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시선과는 그 이미지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정신과 진료로 인한 추후의 불이익에 대한 걱정은 의무기록이 충분히 안전하게 보호된다는 점을 잊지 말고, 오히려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놓쳐 지금의 병을 키우는 것이 질문자님에게 더 큰 불이익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전문의와의 상담과 필요할 경우, 약물치료를 통해 당장의 불안감과 우울감을 가라앉히고 나면, 질문자님께서 현재 겪고 계신 고민들, 의사가 되는 것에 대한 강박을 이해해보는 과정도 필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질문자님께서 스스로 고통스럽다고 느끼면서도 지속적으로 열등감과 자괴감에 괴로워하고, 의사라는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을 이상화하게 되는 내적인 동기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보고, 해결해나갈 때에 오히려 그 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질문자님 스스로도 지금의 스트레스를 해결하고자 열심히 노력하고 계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시는 것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혼자서의 그 노력이 버겁거나 실마리가 잡히지 않는다면, 전문가의 직접적인 도움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거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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