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손정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L씨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남들이 보기에 너무나도 평범하고 성실하게 살아 온 30대 직장인입니다.

저는 학창 시절 임원을 도맡아할 정도로 외향적인 성격이었고 사교성도 있었습니다. 성적도 좋은 편이라 고등학생 때 많은 선생님들의 기대를 받았지만 정작 수능에서 좋지 않은 성적을 받게 되었습니다. 결국 지방 국립대에 진학하게 되었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타지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친한 친구들은 모두 명문대에 입학을 했기에 열등감, 자격지심이 저를 힘들게 했고, 결국 2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복학 후 ‘내가 해야 할 것은 이 곳에서 잘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 뿐이다‘라는 생각으로 공부를 해서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고, 이름 있는 중견기업에 무난하게 취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수많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열등감, 자격지심, 낮은 자존감에서 나를 보호하고 포장하려는 방어기제 정도로 가볍게 생각을 했지만, 20대 중반 이후 조금씩 저에게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명문대를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워 한 번 보고 말 사람들에게 제 대학을 속이는 식의, 어쩌면 아이같은 거짓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작은 거짓말들을 숨기기 위해 계속해서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이 생겨났고, 그 이후에는 순간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거짓말이 아닌 새로운 저를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드라마작가들이 드라마 인물을 스케치하듯 저의 전반적인 배경, 성격, 취미, 심지어 감정들까지도 만들어 나갔습니다. 예를 들면 없는 남자친구를 만들어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며 그 남자친구의 직업, 성격, 에피소드 같은 사소한 부분들까지도 모두 지어내어 거짓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분명 남자친구가 없는데 말이에요. 제 상상 속 남자친구는 고학력에 좋은 직업에 누구나 선망하는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남자였고 성격까지 완벽했죠.

 

이러면 안되는 걸 알면서도 사실 큰 죄책감 없이 거짓말들을 하며 마음의 안정을 얻는 저를 발견하게 되었고, 2,3년전부터는 이 거짓말들을 억누르려고 정말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거짓말을 해서 인정을 받고 관심을 받고 싶어질 때면 ‘나는 이렇게까지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등의 자기최면을 걸거나, 종교의 힘을 빌려 거짓말에 대한 욕망을 억누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거짓말을 입밖으로 내뱉지는 않고 있지만 사실 제 머릿속으로는 자주 망상에 가까운 거짓말들을 생각해내곤 합니다. 거짓말을 이어나가며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상상을 자주 합니다. 한 번은, 혹시 내가 이 거짓말들을 스스로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거 아니야? 라는 생각에 두려움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사실 더 어릴 때인 중학교 3학년, 정말 함께 모든 것을 공유하고 좋아하는 친한 친구가 두 명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 친구들이 저를 멀리하더니 아예 저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 사실에 저는 너무나 큰 상실감과 스트레스를 느껴 식사조차 못할 정도였고, 병원에서 스트레스성 위염 진단을 받았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 알게 된 이유는, 제가 계속해서 거짓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당시, 제가 어떤 거짓말을 했다는 것인지 알지 못했고 지금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지금도 이 친구들을 잃은게 너무 큰 죄책감으로 남아있습니다.

 

사진_픽셀

 

저의 너무 특이한 이런 모습들, 어떻게 어디서부터 연습을 하고 노력해야 할까요?

도움이 될까 해서 몇 가지 저에 대한 이야기를 더 적어보려고 합니다.

 

1. 남동생이 초등학교 때 간질발작을 일으켜 고등학교때까지 오랜기간 투병생활을 했습니다. 고등학생 사춘기때 아빠에게 " 왜 나는 신경안써주고 동생만 신경써!"하며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 아빠는 저에게 어린애처럼 왜 그러냐고, 다그치셨던 기억도 있네요. 그리고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다툼이 잦았어요. 늘 늦게 귀가하시던 엄마는 초등학생이었던 저에게 "아빠 몰래 문을 좀 열어놔라"라고 말씀하셨고 아빠는 그런 저에게 화를 크게 내신 일이 굉장히 잦았습니다. 정말 잦은 다툼과 불화로 어려서부터 저는 부모님이 이혼하시면 누굴 따라가지? 고아원에 가야하나? 하는 생각으로 불안감을 갖고 잠이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몇 년 전에는 엄마가 갑자기 큰 돈이 필요하다고 연락이 와서 빌려 드렸는데, 얼마 후에 또 요구하셔서 거절하자 ‘냉정하고 이기적인 것들, 벌받을거다’라며 비난하는 문자를 계속해서 보내왔던 일이 있습니다. 이후 아무렇지도 않게 저를 대하는 엄마를 볼 때면  용서하기가 힘들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제 자신에게 죄책감을 크게 느낍니다.

 

2. 작년에 집주위에 있는 심리상담센터를 찾아가 면담을 했는데, 저의 고민은 엄마와의 문제와 많이 연관이 있다며 엄마를 찾아가 보라는 숙제를 내주셨던 일이 있습니다.  30년을 외면하고 모른 채 묻어둔 상처와 마주하기가 두려웠고, 결국 상담을 계속 이어가지 못하였고 그대로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사진_픽셀

 

뇌부자들의 답장:

 

안녕하세요, 뇌부자들입니다.

본인도 모르게 거짓말을 반복해서 하는 모습이 고민이 돼 사연을 보내주셨네요.

사실 꼭 정신과 진료실이 아니더라도, 본인이나 주위에 관해 반복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우리 주위에 드물지 않습니다.

 

이런 거짓말, 허풍이나 허언이 습관적이고 반복적이며 병적 수준으로 심각할 때 병적 거짓말pathological lying, 환상 거짓말pseudologia fantastica이라는 병리 증상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그 밑바닥에는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주위 관심을 받고자 하는 욕구가 큰  연극성 성격 성향 때문인 경우가 많고, 때론 반사회적 성격을 가진 이들이 본인의 이득을 위해 죄책감이나 후회, 불안을 느끼지 않고 거짓말을 일삼기도 하죠.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 ‘캐치미 이프유캔’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했던 주인공의 언행들이 이러한 반사회적 거짓말을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또 소설의 주인공 이름에서 유래돼 널리 알려진, 본인의 현실을 부정하고 마음 속에서 만든 가상의 세계를 진실이라 믿고 거짓된 말과 행동(때론 살인과 같은 극단적 범죄까지도)을 반복하는 증상인 리플리 증후군 역시 반사회성 성격에서의 심한 병적 거짓말의 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관심과 동정을 목적으로 신체적인 증상을 꾸며내 환자 역할을 연기하는 뮌하우젠 증후군, 기억력을 포함한 인지기능의 저하로 생긴 기억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가상의 일을 만들어내는 작화증, 정신병적 질환의 증상으로서 본인만의 왜곡된 믿음에 빠지게 되는 망상 역시 큰 범주에서 병적인 거짓말들로 볼 수 있겠죠.

 

사진_픽셀

 

반복적이고 습관적인 거짓말을 하게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원인들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렸는데요. 사연을 읽으면서 L씨가 어떤 이유로 본인에 관한 거짓말을 반복하게 된건지 스스로 많은 고민과 성찰을 해오셨다는 점이 느껴집니다. 자신과 주위의 기대에 못 미치는 대입 이후부터 시작된 학력에 관한 거짓말, 좋은 직장에 취직한 후에는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가상의 남자친구를 꾸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돌아보며, 열등감과 낮은 자존감을 포장하고 보호하려 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고 하신 것에서 어느 정도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계신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L씨의 고민, 그 아래의 낮은 자존감과 관심 욕구에는 초등학교 때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겪어온 어머니와의 문제, 부모님간의 갈등이 준 영향이 컸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부모님의 심한 갈등에서 느꼈을 불안과 혼란감, 어머니가 집에 잘 계시지 않아 충분한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했던 상황에서 겪은 친구 관계에서의 큰 상처 등이 지금의 문제로 이어지는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어린 동생이 뇌전증으로 투병생활을 해 L씨가 상대적으로 집안 어른들의 관심을 충분히 받지 못했던 것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여건들이 L님 입장에서 주변 사람을 잃지 않고, 관심을 확인 받기 위한 시도로서의 거짓말이 나타나게 한 주된 이유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짧은 사연으로 성격 성향을 단정짓는 것은 무리지만, 결국 연극성 성격의 특성 즉 주위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스포트라이트 받고 관심의 중심에 있고자 하는 욕구가 크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겠구요.

 

어쨌건 반복되는 거짓말로 인해 L씨 본인도 괴로움이 크셨고, 주위 분들과의 관계에서도 어려움이 있었기에 분명 이런 습관은 교정이 필요한 병적 거짓말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본인의 문제를 자각하고 나서부터 신앙 생활을 통해 거짓말의 욕구를 조절하고자 애쓰고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이다’라고 스스로 다독인 모습은 정말 드물고 쉽지 않은 자기 성찰과 변화의 노력을 해오신 것 같아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주위에 자신을 부풀리고 포장해 보이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 괴로울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하셨고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면담을 통해 어린 시절부터 쌓여 온 마음 속 결핍과 상처를 더 이해하고 스스로 다독이는 과정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이전에 면담을 했지만 어머니와의 재회를 반복해 권유받고 괴로워 그만두었다고 하셨는데, 얼마나 힘든 경험이셨을지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L씨 본인의 호흡과 발걸음에 맞춰 내적/외적 탐색과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면담 치료를 하시게 된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여기까지가 저희가 생각해 본 L씨의 고민에 관해 저희가 생각해 본 바입니다. 그런데  L씨가 물어보신 ‘어디서부터 어떻게 연습과 노력을 해야 할지’에 관해서, 따로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요. 어릴 때부터 받아온 온갖 상처와 힘든 여건에도 불구하고 학업과 사회 생활을 성실하고 해내 왔고, 거짓말이라는 문제 역시 고민과 노력 끝에 상당히 이겨냈기에, L씨는 이미 충분히 괜찮은 분이라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부디 스스로를 비난하고 몰아붙이는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편히 지내실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뇌부자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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