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part 2] 순간적으로 폭발해 버리는 나, 분노 조절 장애인가요?

[정신의학신문 : 오동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K씨의 사연:

저는 40대중반 남자 입니다.

부끄럽지만 얼마 전에 부부싸움중에 아내에게 손찌검을 했고 경찰이 출동하고 이혼 이야기도 나왔다가, 계속 사과하고 서로 이야기를 많이 나누어 일단 큰 고비는 지났습니다.

 

사실 그렇게 화낼 일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원래 예전부터 잘 다투었고 그날도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에 대한 의견 충돌로 약간의 말싸움이 있었습니다. 그 정도는 둘 중에 한 명이 자리를 피하면 되는 그런 상태였는데, 저도 모르게 폭력과 폭언을 행사했습니다.  한동안 아무것도 통제되지 않았습니다. 경찰이 오지 않았다면 더 큰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릅니다.

 

사진_픽셀

 

그리고 흥분이 사그라들면서 엄청난 후회와 죄책감이 몰려들고 그냥 자살해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게 첫 번째는 아닙니다. 신혼 때, 결혼 10년차때도 이런 사건이 있었는데, 이렇게 심하지는 않았습니다.

 

사건이 일어나고 바로 정신과에 가서 상담과 검사를 했습니다. 한참을 질문을 하시더니, 간헐적 폭발성 장애라고 진단하시더군요. 그리고 분노 폭발 및 발작을 방지하는 데파코트를 처방 받았습니다.

상담을 하면서 생각을 해보니 예전부터 저는 이러한 폭발이 있었습니다. 운전을 하다가 시비가 붙어서 사고를 내려고도 했고, 정말 친한 오래된 친구에게 별 것도 아닌 일에 폭언을 해서 절교를 당한 일도 있습니다. 그렇게 1년에 1~2번 정도 정말 별 것도 아닌 일에 갑자기 미친 듯이 화를 냅니다. 그리고 반나절도 안 되어서 후회합니다. 문제는 그게 일정한 조건이나 상황에서 발동 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게다가 증상이 갈수록 커져서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다가는 감옥이나 저승 중에 한 곳에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는 스트레스를 잘 받는 편 입니다. 특히 주위에 다른 사람이 다투거나 혼나거나 하는 소리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예를 들어 아내가 딸아이를 훈육합니다. 딸이 잘못했으니 당연한 훈육인데, 그것을 듣고 있으면 그 이야기가 다 저에게 하는 말로 들립니다. 그래서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크게 듣거나 정 힘들면 집밖으로 피합니다. 하지만 그전에 제가 폭발을 하면 부부싸움이 됩니다. 전에는 딸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제가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서 인 것 같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TV에 나오는 각종 다툼, 폭언, 특히나 사건재현 프로에서 나오는 부부싸움, 자녀와의 싸움 같은 소리를 듣고 있으면 다 저에게 하는 소리로 들리고 엄청 괴롭습니다.

 

병원에서 이런 증상을 말씀드리기는 했는데, 과거에 어떤 트라우마가 있는것 같다면서 그건 알기가 힘들다고 하네요. 제 생각에 군생활동안 받은 가혹행위가 트라우마로 남은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 때는 군대에서의 폭력이 당연시 되던 때라 몰랐는데, 1년 반 정도는 거의 매일 폭언과 구타를 당하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정신적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특히 저는 제 후임을 때리지 않았기 때문에 선임들에게 더 심한 구타를 당했습니다. 한창 힘들 때 불침번을 서다가 저를 가장 많이 괴롭히던 선임이 곤히 자고 있는 모습을 보다가 끓어오는 살의로 개머리판을 겨누고 차마 내려칠 수는 없어서 부들부들 떨면서 울었던 적이 몇번 있습니다. 보통 평생을 가는 트라우마는 어릴 때 생긴다고 들었는데, 성인이 된 뒤에 받은 트라우마가 영향을 미치는지 모르겠습니다.

 

약을 먹어도 이런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줄지 않습니다. 속으로 "내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괜찮다..." 계속 되뇌이면서 최대한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려고 합니다. 이런 증상도 치료가 가능한지 어떤 방법이 있을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진_픽셀

 

안녕하세요 뇌부자들입니다.

별 것 아닌 일로 자꾸만 폭발하게 되서 고민이라는 사연을 보내주셨네요. 특히 최근에는 아내 분에게 까지 손찌검을 하게 되어 정신과 진료를 받기 시작하셨다고 하셨는데, 사연 속에서 후회와 스스로에 대해 고민이 많이 느껴져 저희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연자 분께서 진단 받으신 간헐성 폭발장애는 공격적인 충동을 조절하는 데 반복적인 문제가 있을 때  때 고려하게 되는 질환입니다. 이전에는 물건을 부수거나 타인을 때리는 등 실제로 물리적 손상을 주는 경우에만 진단 할 수 있었는데, 최근 개정된 진단 기준에서는 폭언이나 위협적인 행동 만으로도 진단이 가능하도록 있게 바뀌었죠.

간헐성 폭발장애를 진단할 때는 그 원인이 되는 스트레스에 비해 공격성이 과도하게 표현된다는 것이 진단의 중요한 부분이에요. 사연자 분에 사례에 비추어 보면 사소한 말다툼으로 인해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오래된 친구에게 폭언을 했던 일을 그 근거로 삼을 수 있습니다. 또한  뇌 손상이나 뇌전증과 같은 기질적인 원인이 없어야 하고 반사회성 인격 장애, 알코올이나 약물 의존, 양극성 장애의 조증 상태 등 공격성을 보일 수 있는 다른 정신질환이 배제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연자 분은 자신이 아닌, 주변 사람들이 다투는 것만 봐도 스트레스를 받고 견디다 못해 폭발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셨어요. 이러한 배경에는 사연자 분도 말씀하셨듯이 군생활동안 반복적으로 당한 가혹행위가 트라우마로 남아 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됩니다. 1년 이상을 어떠한 대응도 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폭언과 폭력을 당해야 했던 상황은 단순히 힘들다는 말로 표현하기엔 너무나 큰 고통이셨을 겁니다.

많은 분들께서 생각하시기에 이렇게 성격적인 변화를 만드는 트라우마는 대개 어린 시절에 생기는 거라고 생각을 하실텐데요, 성인이 된 후의 경험이 평생에 걸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고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군 복무에서 이런 정신적 상처를 입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직접 뵙고 말씀 드리는 게 아니라 조심스럽지만, 아내가 딸을 질책할 때나 TV 속 부부싸움 장면 처럼 한쪽이 상대방을 비난하는 모습을 보게되면 군 생활 동안 겪었던 폭언 등 가혹 행위에 대한 기억들이 무의식에 떠오르면서 그것과 동반된 해소되지 않은 감정들- 불안, 분노, 초조감을 느끼게 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사진_픽셀

 

현재 드시고 있는 데파코트는 valproic acid 라는 성분으로 정신과에서는 주로 기분조절 및 충동 억제의 목적으로 처방하고 있는 약입니다. 약을 먹어도 같은 상황에서 여전히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셨는데요, 약이 스트레스 자체를 없애주진 못하지만 분노나 공격성 같은 스트레스로 인한 이차적인 반응을 줄이는 데는 분명 효과가 있습니다. 꾸준히 드시고 난 후 돌이켜 보면 이전이라면 폭발했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별다른 문제 없이 넘어갔다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이외에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나 베타 차단제와 같은 약물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약물 치료 외에도 사연자 분께는 면담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과거의 기억과 억압된 감정을 살펴보는 분석적 정신치료, 부정적인 생각과 교정하고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인지행동치료 등 다양한 방법이 있으니 현재 치료를 함께 하고 계시는 주치의 선생님께 이러한 면담치료를 병행하는 것에 대해 상의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특히 사연자 분께서는 감정이 고조되기 시작하는 때를 알아차리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에 본인의 감정 상태가 어떤지 수시로 들여다 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내가 지금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는지, 그 기분을 느낄 때 동반되는 신체감각에는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기분을 느끼게 된 배경에는 어떤 생각이 자리잡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연습을 해보시면 감정을 조절하는데 도움이 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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