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지용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C씨의 사연:

안녕하세요. 평소에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에 관심이 많은 30세 여자 간호사입니다.

정신과 전문의 선생님들의 심도 있으면서도 쉽게 설명해주시는 방송 듣다가, 평소 고민하고 많이 괴로워했던 사연을 보내고 싶어 이렇게 글을 씁니다.

 

저는 현재 한 병원에서 근무 중인데요, 늘 일을 하다 보면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 생길 때가 많아요. 그러면 저는 성격 자체가 마음에 없는 소리 못하고 표정이나 감정을 잘 못 숨기는 편이라, 합리적으로 따지고 부당하다고 소리내서 앞에서 말하는 스타일이에요. 제 딴에는 제 생각이 합리적이고 전체를 위해서도 평등을 위해서도 맞는 생각이라 해서 말한 것인데, 문제는 제 연차가 낮아서 뭔가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위치가 아닌 상태라 결과적으로는 주변에 안 좋은 소리만 듣게 되어요.

 

좀 권위적인 분들은 ‘나이 어린애가 그렇게 고분고분 하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하시고, 제 또래 동료들은 ‘정말 맞는 말 하긴 했는데, 다들 아무 소리 안 하는데 너만 소리내서 말하니까 아무 말 못하고 있는 우리가 바보같이 느껴진다’라는 식의 반응을 보여요. 좀 분위기에 맞춰서 적당히 똑같이 해가면 되는 것인데, 전 제 스스로가 그 시스템이 문제가 있고 잘못 되었다 생각하면 제 스스로 생각한 옳은 방식대로 문제를 풀어나가요. 그래서 남들은 저를 ‘일은 정말 잘 하지만 기가 쎈 사람, 다소 건방진 애, 자유롭고 솔직한 사람’으로 보더라고요.

 

이런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제가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별 문제가 없겠죠. 하지만 전 누군가가 저의 행동 방식에 대해 험담을 한 걸 듣게 되면 ‘그냥 그 사람은 저렇게 생각했나보다’라고 넘어 가지 못하고 ‘괜히 자기들은 아무 말 못하니까 열등감 가지는 거 아니냐’, ‘따져 봤을 때 내가 뭘 잘못했나’, ‘그럼! 그건 누가 봐도 잘못된 건데 내가 그렇게 분위기 맞춰 똑같이 해야 하나’라는 등의 생각들을 밤새 되뇌면서 분노하고 괴로워해요.

 

누가 봐도 옳은 소리를 하였지만 결국 분위기 적당히 안 따라가고 쉽게 순응하지 않는 저는 문제가 많은 걸까요?

 

사진_픽셀

 

아, 혹시 저를 분석하는 데 도움이 될까 해서 최근의 꿈 내용 하나를 마지막으로 덧붙일게요.

병원에서 수간호사가 급히 저를 불러 ‘환자가 늘어 병동을 하나 더 개설하게 되었는데 커버해줄 수 있는 사람이 너 밖에 없다. 네가 좀 해달라’며 부탁을 합니다. 월급을 더 받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이용당하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하도 간곡히 부탁하길래 그럼 전 병원에서 출근하고 샤워할 시간을 달라는 조건을 내 겁니다. (집에서 샤워하고 출근해도 되는데 꿈에서는 이상하게 병원에서 샤워하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수간호사는 그 조건을 수락하고 전 출근을 합니다.

병원을 가보니 모든 간호사들이 일을 하고 있고 모든 상황이 정리정돈이 잘 안되어 있습니다. 인수인계할 상황이 못 되어 보입니다. 전 조건대로 샤워를 해야겠다며 샤워실을 찾는데, 모든 환자와 간호사들이 있는 큰 병동 가운데에 조그맣게 칸막이가 쳐져 있는 곳에서 샤워를 하라고 합니다. 저는 누군가가 볼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에서 불안해하며 샤워를 마치고 나옵니다. 늘 저를 아니꼽게 보던 선생님들이 저를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꼭 그 눈빛이 ‘지가 잘나면 얼마나 잘났다고’라며 말하는 것 같습니다. 밖에 나와 새로 만든 병동을 효율적으로 돌아가게 만들려고 구상하고 있는데, 병원 이사장님이 와서 저랑 한 마디 상의 없이 자기 마음대로 시스템을 만들고 떠났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너무 비효율적인 시스템입니다. 저는 샤워실도 엉망이고 제가 생각한대로 병동을 꾸려갈 수도 없는 상황에 분노하여 수간호사를 찾아보지만 수간호사 선생님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꿈에서 깹니다.

 

 

사진_픽셀

 

 

안녕하세요, 뇌부자들입니다. 사연에 덧붙여서 흥미로운 꿈 이야기까지 같이 보내주셨네요. 보내주신 글을 보면, C씨께서는 ‘분위기에 적당히 맞춰 나가면 되는데, 그렇게 할 수가 없다’라는 점을 자신의 문제로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단순히 ‘내가 온전히 옳은데 다른 사람들이 몰라줄 뿐이다’라고 주장하시는 분 같았으면 저희에게 메일을 보냈을 이유도 없으셨겠죠. 저희의 비판적 해석도 잘 받아 주실 분이란 생각에, 다소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C씨의 모습에 대한 제 생각들을 가감 없이 전달해볼게요.

 

먼저 보내주신 꿈의 내용에 대해서부터 이야기해 볼까요? 저희가 이전 방송에서도 이야기했듯 단편적인 꿈 하나만 가지고 정확한 해석이 불가능합니다만, 이번 꿈은 기존 사연을 통해 배경 설명이 되고 있어서 어느 정도 해석해볼 수가 있겠네요. 샤워를 한다는 건 기본적인 위생 욕구와 맞닿아 있는 것이고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는 것인 만큼, 현실세계에서의 당연하고 합리적인 제안과 요구들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겠네요. 그러한 샤워를 좁은 공간, 누가 볼 수도 있는 위태로운 상태에서 한다는 것은 그 요구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핍박받고 있는 상황을 의미한다 볼 수 있겠네요. 또한 꿈에서 느낀 차가운 시선은, C씨께서 현실에서 느끼고 있는 본인에 대한 반응을 의미하는 것이겠고요. 꿈을 이만큼 생생히 기억하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은데, 받고 계신 스트레스가 엄청 크신 것 같아요.

 

C씨께서 겪고 계신 상황과 그로부터 느끼는 생각과 감정들은 저희가 진료실에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이상과 그 이상대로 되지 않는 현실 사이에서 갈등을 빚고, 스트레스를 받는 건 정말 흔한 일이고 아마도 모든 사람들이 인생에서 겪어 나가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C씨처럼 ‘밤새 되뇌면서 분노하고 괴로워하는 정도’로 힘들어하는 경우는 당연히 흔치 않고, 고쳐야 할 문제이겠죠. 특별히 다른 이유를 댈 것도 없이 이대로 계속 가기엔 C씨께서 너무 힘드시니까요.

 

주변으로부터 일 잘 한다는 평가를 받으시는 것을 보면, 분명히 다른 사람보다 C씨의 생각이 맞을 때가 많을 것 같아요. 하지만 세상이란 게 다 내가 원하는대로, 혹은 가장 뛰어난 한 명이 원하는대로만 돌아가는 곳은 아니잖아요? 예를 들어 대통령 선거만 봐도 모든 국민들이 자신이 선호하는 후보에 동등하게 한 표 씩 행사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나중에 돌이켜 봤을 때 최선의 후보가 선택되었던 것만은 아니듯이, 때로는 틀린 생각이 그 집단의 주된 의견으로 선택되기도 하는 것이 이 세상의 본질인 것 같아요.

 

정말 조심스럽게 말씀드려보자면, 제 생각에는 아마도 ‘마찰을 빚고 있는 병원 사람들이 본인보다 못한 사람들이다’라는 생각이 C씨의 무의식에 어느 정도 배경처럼 깔려 있지 않나 싶어요.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C씨의 말이나 태도를 통해 약간씩 흘러나올 수 있기 때문에, 그로 인해 주변에서 건방진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사실 직장 상사이고, C씨의 의견은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명령할 수도 있는 수간호사님이 간곡하게 부탁을 한다는 꿈의 내용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요. 주변 사람들의 험담에 밤새 힘들어하시는 것도 이 이유로 설명될 수 있겠죠. 

자기애적 인격성향을 띠고 계시다고 볼 수도 있을텐데, 그런 성향을 가지신 분들 중 다수가 ‘난 자존감이 높다’라고 잘못 생각하고 계세요. 그런데 사실은 마음 속 핵심에 자리잡고 있는 낮은 자존감을 타인들에게 드러내지 않기 위해 겉으로 자존심만 내세우는 것이고, 그 자존심이 건드려지는 작은 상황 하나하나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타인들과의 마찰이 끊기지 않게 되죠.

 

사진_픽셀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을 이 짧은 글에 싣기는 무리이고, 전 타협점을 찾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시라는 조언을 드리고 싶어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C씨의 의견이 맞는 경우가 많을 거예요. 너무 큰 잘못 앞에서도 침묵을 지키고 있으면 안 되겠지만, 소소한 일에 대해서는 C씨의 의견과 다르게 일이 진행되더라도 ‘내가 맞는 것 같지만 저 사람들 입장에서는 저렇게 하는 이유가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스스로의 충동을 억제시켜보세요. 너무 뻔한 대답이지만, 그 길만이 주변 사람들과의 마찰과 스스로 받는 스트레스도 줄이는 방법이거든요. C씨와 비슷한 고민을 하시는 같은 인격 성향의 많은 분들도, 결국에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느 정도 타협점을 찾게 됩니다. 왜냐하면 본인이 너무 힘드니까요. 이렇게 타협점을 찾아가는 것을 ‘내가 지는 것’으로 받아들이셔서 끝까지 변화하지 않는 분들도 계시지만, 자신의 성격 중에 일부 문제가 있다고 스스로 인식하신 C씨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조금 글이 길어졌는데, 다소 언짢으실 수 있는 제 답변이 그래도 C씨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네요.  앞으로도 타협점을 찾기가 힘들고 계속 힘드시다면, 상담을 받아 보시는 것을 권유 드리고 싶어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나의 성격의 특수한 부분은 어떻게 형성되어왔는지, 그리고 그 성격이 나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보고 약간의 수정을 해 나간다면 훨씬 편하게 지내실 수 있으실 거예요.

힘든 간호사 일 건강 잘 챙기시면서 해내시길,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앞으로 줄어들기를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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