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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의 심리
오동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7.09.13 07:34

C씨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20대 중반 여성입니다. 고민을 많이 하다가 저도 한 번 사연을 보내봐요.

저는 경상도 토박이인 부모님 밑에서 자란 탓인지 감정표현이 조금 서투른 편인데요. 표현이 서투를 뿐이지 감정이 메말랐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런데 '사랑'이라는 감정에 있어서는 제가 그 부분의 감각이 죽은 건지, 도저히 못 느끼겠어요. 부모님의 부부관계가 나쁜 편도 아니라 애정표현 하시는 것도 봐 왔고 연애도 많이 해봤어요. 그런데 매번 연애를 할 때마다 상대방이 좋고 함께 있어서 행복하다고 느끼지만, 지금 당장 헤어지자고 해도 하나도 슬프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실제로도 하나도 안 슬프구요.  2년 만난 남자친구와 헤어진 당일에도 아무 감정이 안 들더라구요. 남들은 같이 탔던 버스만 봐도 눈물이 흐른다는데 저는 억지로 생각해 내려고 하지 않는 이상 예전 추억들이 생각나지도 않아요.

그리고 솔직히 부모님 역시 존경하긴 하지만 사랑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이런 생각이 드니까 제가 로봇 같고 무서워서 어디 가서 이런 얘기도 못 하겠더라구요.

저는 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걸까요?

 

사진_픽셀

 

정신의학신문의 답장:

 

연애를 할 때마다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고민이라는 사연을 보내주셨네요. 보통은 연애가 끝나고 나면 떠난 사람의 빈자리를 보면서 상실감을 느끼기 마련인데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다 보니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시게 된 것 같습니다.

 

C씨의 고민은 두 가지 가능성으로 설명해 볼 수 있겠습니다.

먼저 감정표현불능증의 가능성 입니다. 감정표현불능증이란 자신의 감정을 잘 인식하고 묘사하지 못하는 정신 병리입니다. 예를 들어 가슴이 뛰고 몸이 떨린다면 보통 사람들은 ‘내가 불안한구나’ 라고 해석 하기 마련인데, 감정표현불능증을 가진 분들은 ‘왜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지? 심장에 문제가 있나?’ 라는 식으로 정서 상태를 알아 차리는 대신 함께 나타나는 신체감각에만 주목하게 됩니다. 이런 분들은 어떤 사건에 대해 평가할 때 감정적인 측면을 배제하고 사실에만 근거하는 경향이 있어서 합리적인 사람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결국 무미건조하고 공감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 이라는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감정표현불능증을 가졌다고 해서 모든 분들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감정을 느끼고 또 설명할 줄도 알지만, 그것을 세밀하게 나누지 못하고 뭉뚱그려 인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C씨는 상대에 대한 단순한 호감과 사랑이라는 복잡미묘한 감정이 주는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계실 가능성이 있습니다.     

 

두번째로 억압, 혹은 억제라는 방어기제가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을 들 수 있습니다. 억압이란 힘든 기억, 또는 그와 동반된 괴로운 감정이 떠오르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억누르는 과정을 말합니다. 남자친구와 헤어졌을 때 슬픈 감정을 느끼지 못했던 것은 오히려 이별의 상황이 C씨에게 매우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억압의 방어기제가 자동적으로 작동한 결과 일 수 있습니다. 또한 어린 시절 겪은 이별과 관련된 트라우마로 인해 성인이 된 후에도 타인과의 깊은 감정적 교류를 무의식적으로 회피하게 되고 그 결과 헤어짐에도 담담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반면 억제란 강렬한 감정을 느꼈을 때 그것을 표현하는 대신 의식적으로 참는 방식으로 해소하려는 것을 말합니다. C씨께선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영향으로 감정표현이 서투르다고 하셨는데요, 성장과정을 통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이러한 억제의 방어기제가 습관처럼 몸에 배어들었을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실제 느끼는 감정보다 더 낮은 강도로 감정을 인식하게 되고, 인지할 수 있는 감정의 종류와 폭도 줄어들게 됩니다.  

 

사진_픽셀

 

그렇다면 C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평소 느끼는 감정에 대해 탐색하고 그것을 좀 더 표현하는 연습을 하는 것을 권유 드립니다. 예를 들어 기분에 대해서 단순히 ‘좋다-나쁘다’라는 식으로 이분법적으로 나누기 보다는 ‘뭐든 다 잘될 것 같이 들뜨고 신이 난 상태’, ‘물 먹은 솜처럼 가라앉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감’과 같이 구체적으로 이름을 붙여 보는 겁니다. 또 나에게 그러한 감정이 찾아오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보는거죠. 표현을 잘 하지 않으면 감정을 인식하는 범위가 줄어드는 것처럼, 반대로 마음 속 감정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을 언어로 표현 하려고 시도한다면 점차 세밀한 감정까지도 인식할 수 있게 될 겁니다.

또한 앞서 말씀 드린대로 억압이나 억제의 방어기제를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사용하고 있다면 그 심리적인 배경에는 어떠한 것이 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혼자서 생각하는 것 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있으므로 면담 치료를 받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보다 일반적인 조언을 드리자면, 스스로 사랑이란 감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고민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사랑이란 복합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럽고, 또 한 가지 형태로 정해져 있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어쩌면 사연에서 말씀하신 남자친구와 만났을 때 느낀 행복함이나 부모님을 존경하는 마음 역시 자각하지는 못하지만 사랑의 한 형태 일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간혹 사랑에 대해 판타지를 가지고 계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랑이란 뭔가 특별하고 강렬한 어떤 감정일거다’ 라고만 막연하게 동경하고 있다면 자칫 실체도 모르는 대상을 쫓는 꼴이 될 수 있겠지요. 그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C씨께서 가장 먼저 하셔야 할 일은 사랑이 어떤 감정인지 구체화 시켜 보고 그 동안 느꼈던 감정과 질적으로 어떠한 면에서 다른지 생각해 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_픽셀

 

저희가 오늘 드린 이야기들이 C씨의 고민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팟캐스트 뇌부자들 [15화 Part 2] "사랑이란 감정을 못 느껴요” 에피소드

[더 자세한 내용들을 팟캐스트로 들을수 있습니다!]

팟빵: http://www.podbbang.com/ch/13552?e=22389796

아이폰 Podcast: https://itun.es/kr/XJaKib.c

팟티: https://m.podty.me/pod/SC1758/9122133

 

 

오동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brainrich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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