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박기홍 아이나래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우리는 지난 연재(당신의 자녀는 오토입니까? http://www.psychiatric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4034)를 통해서 아이들이 태생적으로, 생물학적으로 스스로 잘해내기가 쉽지 않음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억제하고 조절하고 계획하고 실천하는 실행기능(전두엽 기능)이 아직은 성숙하지 않기 때문인 것이지요. 그래서 이 실행기능이 성숙하기 전까지는 우리의 자녀에게 부모의 전두엽을 빌려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부모의 전두엽 빌려주기의 한 측면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이제 막 엄마의 뱃속에서 나온 갓 난 아기는 이성이라고는 없는 순전한 본능 그 자체입니다. 먹고 싶은 때 먹고, 자고 싶은 때 자고, 배설하고 싶을 때 배설하고. 그런 아이들이 이성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고 사회의 도덕과 규범들을 익힐 때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요. 자신의 욕구를 절제하고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은 성숙한 사회구성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인 동시에 개인적인 성취에도 매우 중요합니다. 이를 입증하는 매우 유명한 실험이 있었지요. 바로바로 마시멜로 실험입니다.

 

사진_픽사베이

 

1966년에 스탠포드대학의 월터 미쉘 교수는 653명의 만4세 어린이들을 모집하여 마시멜로 실험을 하였습니다. 마시멜로(또는 좋아하는 과자) 하나를 주고서 15분 동안 먹지 않고 참으면 마시멜로를 하나를 더 준다고 하고서 혼자 놔두는 실험입니다. 당장에 먹고 싶은 욕구를 억제하지 못해 그 하나에 만족해야 아이들도 있었고 15분간 성공적인 참기를 잘 완수하여 또 하나의 마시멜로를 선물 받아 모두 2개의 마시멜로를 먹게 된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십 수 년이 지난 후 이 아이들에 대해 추적조사를 한 결과가 바로 마시멜로 실험에 대한 결과입니다. 즉시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잘 참아내어 결국 2개의 마시멜로를 먹게 된 아이들은 성장하여 전반적으로 우수하였고 학업성취도 좋았다고 합니다. 반면 그러지 못했던 아이들은 비만이나 부적응을 보인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과연 내 자녀가 이 실험에 참여했다면 잘 참아냈을까요? 만약 못 참아냈다면 우리 아이의 미래는 보장받지 못하는 걸까요? 성공적인 미래를 보장받기 위해서 마시멜로 참기 과외라도 받아야 할까요? 15분간 마시멜로 유혹에 대한 참아내기 하나로 아이의 운명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지나친 과장입니다. 하지만 욕구를 조절하는 능력이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내 아이가 조절력이 부족하다면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요?

 

아이가 잘 참지 못하여 생기는 일들에 대해 엄하게 꾸짖고 벌을 주고 비난하면 아이들을 정신을 차릴까요? 이렇게 믿고 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이런 방법이 좋은 방법도, 효율적인 방법이 아님은 이미 많은 분들이 경험적으로 알고 계실 겁니다.

 

여기에 해답을 제시하는 또 다른 실험이 있습니다. 역시 마시멜로 실험입니다. 첫 번째 마시멜로 실험이 있고 약 20년 뒤에 월터 미쉘은 비슷한 실험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실험에서는 마시멜로에 뚜껑을 덮어주고 기다려보도록 하였습니다. 결과는 뚜껑이 없이 기다렸던 경우보다 뚜껑을 덮었을 때에 아이들이 두 배 정도 더 많이 참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고작 뚜껑하나 덮었을 뿐인데 아이들은 훨씬 더 참을 수 있었다는 겁니다.

 

사진 마시멜로 이야기(저자 호아킴 데 포사다, 엘런 싱어 | 역자 공경희)

 

베스트셀러 자기계발서인 <마시멜로 이야기>에서도 이 마시멜로 실험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자신이 첫 번째 마시멜로 실험에 참여한 적이 있다고 하면서 그 실험 참여 당시의 자신의 경험을 회고합니다.

 

“그 맛있는 걸 눈앞에 두고 참자니, 정말이지 죽을 맛이더군. 노래를 부르며 방안을 뛰어다니기도 하고, 마시멜로가 놓인 탁자를 등진 채 눈을 감고 하나, 둘, 셋 숫자를 헤아리기도 하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마시멜로를 외면하고자 애를 썼지, 하하. 내 생애에 그렇게 긴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을까?”

 

우리의 자녀가 이 주인공처럼 여러 방법을 사용하여 욕구를 억제하고 만족을 지연할 수 있다면 얼마나 기특할까요? 하지만 그렇지 못한다 하더라도 부모로서 좌절하지 맙시다. 2번째 마시멜로 실험에서처럼 뚜껑을 덮어주면 더 잘 참을 수 있잖아요. 반칙만 아니라면 다른 방에 있다가 오도록 하면 어떨까요? 책의 주인공처럼 머릿속에서 즐거운 생각을 해보라고 알려주고 눈을 감아보라고 코치해준다면 더 잘 참을 수 있지 않을까요? 실제로 실험에서 사전에 그런 지시를 받은 아이들은 더 잘 참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우며 컴퓨터, 스마트폰, 태블릿PC 그리고 이와 쌍을 이루는 각종 게임과 콘텐츠들, SNS, 무자비한 정보들, 위험하고 유해한 환경이 난무하는 상황 속에 우리의 아이들이 살고 있습니다. 단순히 “너만 잘 참고 살면 돼”라고 가르치기에는 환경이 지나치게 유혹적입니다. 마시멜로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참으라고 강요하고 윽박지르기보다는 효율적으로 참을 수 있는 방법과 아이디어를 전수해 주거나 같이 궁리해보고 쉽게 욕구를 절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아이들은 더 잘 참을 수 있습니다. 부모의 성숙한 전두엽 빌려주기가 필요합니다.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잠깐 할까 합니다. 소아정신과 의사이니 대단히 양육을 잘 할 걸로 사람들은 생각하겠지만 병원에서만 의사일 뿐 집에서는 보통의 아빠와 다를 바 없습니다. 지금은 청소년이 된 큰 딸이 초등학교 입학 무렵에 있었던 일입니다.

유독 베이컨을 좋아했던 딸아이는 매일 아침에 베이컨을 먹고 싶다고 엄마를 졸랐습니다. 상황이 안 되어 베이컨을 구워주기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균형 잡힌 식생활을 위해서라도 매일 베이컨을 구워줄 수는 없었습니다. 잘 설명해주면 수긍은 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면 먹고 싶은 마음이 다시 솟아나는 것인지 아이는 여지없이 다음날에도 베이컨을 해달라고 조르기 일쑤였습니다. 이를 지켜보다 화가 난 나는 아이 엄마와 한 편이 되어 아이에게 화를 내기도 했고, 어떤 때는 징징거리는 아이가 안쓰러워 아이 편을 들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한참을 박쥐 아빠 노릇을 하다가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방법 하나를 생각해 내었습니다.

일주일 내에 사용할 수 있는 베이컨 쿠폰 2장을 일요일 밤에 아이에게 주고는 베이컨이 먹고 싶으면 전날 밤에 아이 엄마에게 쿠폰을 주도록 했습니다. 쿠폰이 없으면 베이컨이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아이는 월, 화에 쿠폰을 다 쓰고는 남은 날을 툴툴거리기도 했고, 어떤 때는 쿠폰을 아끼다가 1장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아이의 불만은 있었지만 소모적인 실랑이는 많이 줄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자 아침마다 벌어지던 베이컨 전쟁은 끝이 났습니다. 아래 그림은 제가 그때 만들어 썼던 쿠폰입니다.

사진_작가

 

우리의 어린 자녀가 비록 마시멜로의 유혹을 잘 참아내지 못했다 하더라도 기회는 아직 많이 남아있습니다.

 

우선 자극적이고 유해한 환경에 최대한 노출되지 않도록 환경을 바꾸어 봅시다. 아이들이 컴퓨터, 텔레비전, 스마트폰 등을 자제하기가 어렵습니다. 이것들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과도한 사용이 항상 문제가 됩니다. 가능한 노출에 시기를 늦추고, 부모가 확실한 주도권을 가지고 필요 이상의 사용을 제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용 가능한 경우를 명확히 정하여 일관되게 지켜지는 환경을 부모가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그래도 통제가 어렵다면 마시멜로에 뚜껑을 덮었던 것처럼 일시적으로 폐쇄조치를 할 수도 있습니다.

 

무형의 지시는 효과적이지 못합니다. 형체가 있는 지시로 바꾸어주세요. 쿠폰, 카드, 체크리스트 등을 활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이 개입이 최소화되는 시스템을 활용하면 관계 훼손이 적습니다. 예를 들어 컴퓨터 사용에 경우 해라, 하지마라 등 말로 지시하기 보다는 제어프로그램을 활용하면 컴퓨터 사용 시간을 부모가 세팅한 대로 알아서 조절해주거나 허용된 사이트 이외의 접근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비효율적이고 괜한 실랑이를 줄일 수 있습니다.

 

부모가 잘 참을 수 있는 방법이나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같이 고민하는 일은 자녀의 현재 욕구를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자녀가 성장하여 어떤 유혹에 부딪혔을 때, 그 문제점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좋은 모델링이 됩니다. 부모의 전두엽을 자식들이 닮아갑니다.

 

 

저자약력 :
정신과전문의/소아청소년정신과전문의
전북대 의대 및 대학원를 졸업하고 전북대병원 전공의 및 서울대 병원 소아정신과 임상강사로 일했다. 현재 아이나래정신건강의학과(전주) 원장, 멘토소아청소년연구소 대표를 맡고 있으며 전북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전라북도교육청 정신건강전문컨설팅위원 및 학습클리닉센터 자문,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평생회원, 한국정신분석학회 정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기홍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아이나래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전북대학교 의과대학 및 동대학원 졸업, 신경정신과 전공의 수료
서울대학교병원 소아정신과 임상강사 역임
서울시교육청 특별상담 전문의 역임, 도립 마음사랑병원 진료과장 역임
군산시정신보건센터 상담전문의, 전라북도 청소년정신건강증진 위원, 청소년상담지원센터 협력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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