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오토”를 좋아합니다. 인류의 기술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주변의 많은 것들이 저절로 작동되길 바라고 오토기능을 달고자 노력했습니다. 굳이 태엽을 감지 않아도 손목에 차고만 있으면 동력을 얻어 끊임없이 돌아가는 오토시계는 이미 백년의 역사를 자랑합니다. 명품 오토매틱 시계는 수백에서 수천만원을 호가하며 뭇남성들의 로망이 되었습니다. 최근에 쏟아져 나오는 많은 전자기기에 한두 가지 오토기능은 기본입니다. 카세트플레이어 오토리버스 기능은 이제는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무늬만 “자동”차였지 사람의 조작 없이는 작동하지 못했던 반수동 자동차는 최근 자율주행기능으로 무장하기 시작하면서 명실상부한 “자동”차의 반열에 올라설 것으로 보입니다. 알파고와 첨단기술의 만남은 한층 진화된 오토기능을 제공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오토를 좋아합니다. 일일이 고단하게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움직여주는 오토. 사람들의 오토 사랑은 여기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자신의 자녀도 오토가 되기를 바랍니다. 열풍처럼 번지는 자기주도적 학습, 자율형 인간 등에 대한 열렬한 관심과 기대가 이를 반영합니다. 자신의 자녀가 자기주도적으로 채워진 자율학습을 통해 자립형 사립고에 입학하여 좋은 대학을 졸업하는 자율형 인간이 되길 이 시대 부모들은 바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자녀가 조금 자랐다 싶으면 으레 자기 앞가림은 알아서 스스로 해결해주길 기대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우리의 아이들에게 부모가 만족할만한 오토기능이 탑재되었을까요?

 

사진_픽사베이

 

오래전에 만났던 한 어머니가 떠오릅니다. 양육에 지쳐 고단해보였고, 그로 인한 날카로움과 예민함은 진료실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느낄 수 있었습니다. 두세 살 정도의 작은 아이를 가슴에 안고, 유치원 졸업반에 다니는 첫째 남자 아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 어머니는 큰 아이에 대한 걱정스러움과 화가 남을 상담했습니다.

 

“어린 동생도 있는데 이제 자기 일은 알아서 해야지 통 그럴 기미가 보이질 않고 일일이 시켜야하고 아직도 징징대고 해요. 아직도 지가 어린 아이인 줄 아나 봐요.”

 

어머니는 힘든 양육을 하고 있었고 다른 스트레스도 많았습니다. 그런 상황을 이해해서라도 큰 아이가 좀 더 도움을 주면 좋았겠지만 사실 그 아이는 이제 7살밖에는 되지 않았습니다. 어린 아이지요. “어머니 많이 힘드시겠어요. 큰 아이가 이제 7살이네요.” 어머니는 한참동안 큰 아이를 바라보았습니다.

 

또 다른 어머니의 경우도 떠오릅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남자 아이를 데리고 온 이 어머니는 아이가 당최 해야 할 일들을 하지 않는다며 걱정하였습니다. 꽤 염려스럽게 느껴졌고 몇몇 병리적 문제들을 머리에 떠올려가며 면담을 이어나갔습니다. “어머니, 그러면 할 일을 하도록 지시하면 반항적이거나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나요?”하고 물었더니, “아니오. 시키는 건 야무지게 잘 해요.” “그러면 뭐가 문제인가요?” “이제 스스로 해야지요. 언제까지 부모가 쫓아다니면서 시킬 수는 없잖아요?”

 

“어머니 초등학교 1학년이 지시한 것만 잘 수행해도 그건 매우 잘 하는 겁니다. 여러 과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바라는 건 초등 고학년 이상은 되어야 해요. 할 일 목록을 크게 써 붙여주거나 계획표를 짜서 지켜가는 연습을 반복하면서 점차 어머니의 개입을 줄여나가 보세요.”하고 상담을 마쳤습니다. 진료실을 나가는 어머니의 표정은 그리 만족스러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잘 한다는 것은 어떤 걸 의미하는 걸까요?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어마어마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동기를 가지고 목표를 설정하며 그 성취를 위해 계획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며, 필요한 것들을 동원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억제, 제어하여 집중력을 잃지 않으며, 때로는 대안을 찾거나 융통성을 발휘하고 시간에 대한 관리를 할 수 있어야 스스로 잘 할 수 있습니다. 요약하면 목표 실행을 위한 전반적이고 광범위한 관리, 조절기능이 필요합니다.

 

이런 기능을 실행기능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뇌의 CEO’ 정도로 비유되는 매우 중요한 기능입니다. 사소한 과제나 업무 수행부터 장기적인 프로젝트, 인생의 목표까지 이 실행기능에 의해서 효율적으로, 성공적으로 완수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잘 한다는 것은 이러한 실행기능이 좋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자녀에게 스스로 잘 하길 기대하려면 자녀의 실행기능이 이미 성숙해있음을 전제로 해야 합니다.

 

그림_유진수

 

실행기능은 사람의 뇌중에서 전두엽의 기능으로 알려져 있으며, 전두엽은 발달과정에서 가장 늦게까지 성숙의 과정을 밟는데 성인기 초반까지 지속됩니다. 실행기능은 미숙한 수준의 기능부터 점차 고차원적이고 성숙한 수준으로 점진적인 발달의 과정을 보입니다.

 

성인기에 들어서야 실행기능이 완성되지만 청소년기 후반기가 되면 꽤 갖추어진 실행기능의 모습을 보입니다. 청소년기 중반에도 많은 실행기능의 성숙이 보이지만 사춘기의 감정·욕동 뇌의 폭발적인 활동을 감당하기에는 아직은 역부족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사춘기는 지나가야 ‘이제 좀 스스로 하겠구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겁니다.

 

왜 사람은 어린 나이부터 똑 부러진 자율성을 가진 자녀를 가질 수 없을까요? 우리는 이미 앞선 연재(어머니? 혹은 여자?- 진화의학으로 보는 여성의 건강 - 박한선)에서 진화적 타협 속에 어쩔 수 없이 미숙한 자손을 낳게 되었고 성숙하게 될 때가지 양육을 해야 하는 숙명을 가지고 있음을 이해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자율성이 없는 미숙한 아이에게 점진적으로 자율성이 성숙해 나가도록 하는 꾸준한 양육을 제공해야 합니다.

 

그럼 자녀의 성숙한 자율성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심리학자 페그 도슨 등의 비유를 빌리자면 미숙한 자녀에게 부모의 성숙한 전두엽을 빌려줄 수밖에 없습니다. 양육이란 무엇보다도 아이의 실행기능을 도와주고 가르치는 과정입니다.

 

실행기능 발달의 정도를 자동차에 비유하면 이렇습니다. 아직 어린 아이들은 완전 수동 자동차입니다. 일일이 기어 변속을 해주어야 합니다. 청소년기는 오토매틱 자동차입니다. 기어변속 정도는 알아서 하지만 가속 페달을 밟아주고 브레이크를 밟아 주어야 합니다. 청소년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크루즈컨트롤, 충돌방지시스템, 차선이탈방지시스템, 자동주차기능 등등 꽤 우수한 기능들이 첨부되고, 성인기가 되면서 완전한 자율주행자동차가 되는 것입니다.

 

사진_픽사베이

 

자 이제 우리 무리하게 자녀에게 알아서 잘 하기를 기대하지 맙시다. 왜 내 아이는 스스로 하는 게 적은지 한탄하지 맙시다. 우리의 어린 자녀는 아직 우리의 전두엽을 필요로 합니다. 스스로 잘 하려면 연습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도 해주고 시범도 보여주어야 합니다. 한번 가지고는 어림도 없으니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반복이 필요합니다.

 

잘 했다는 칭찬과 격려도 필요하고 때로는 꾸짖음과 벌칙도 필요합니다. 관리와 감독이 필요하고 방해되는 환경을 개선해 주어야합니다. 대신 해주는 것과는 다릅니다. 관심 있게 지켜보고 안되는 게 있다면 왜 안 되는지 같이 생각해보고 대안도 상의하고 시간을 두고 기다려볼 수 도 있습니다. 스스로 잘 하지 못함을 꾸짖고 비난할게 아니라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고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못하니까 어린애입니다. 잘 한다면 어른인거죠. 못하는 어른도 얼마나 많은데요. 다 잘하면 양육의 과정이 필요 없겠지요? 우리는 양육하는 사람입니다. 완성된 아이를 구경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의 아이, 지금 당장은 오토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박기홍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아이나래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전북대학교 의과대학 및 동대학원 졸업, 신경정신과 전공의 수료
서울대학교병원 소아정신과 임상강사 역임
서울시교육청 특별상담 전문의 역임, 도립 마음사랑병원 진료과장 역임
군산시정신보건센터 상담전문의, 전라북도 청소년정신건강증진 위원, 청소년상담지원센터 협력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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