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박기홍 소아정신과 전문의]

 

진행이나 발달방향을 포함하고 있는 심리 과정에서, 퇴행은 이미 도달한 지점에서 역방향으로 그 이전에 위치한 지점으로 회귀하는 것을 가리킨다. <중략> 퇴행은 일반적으로 옛날 형태의 사고나 대상관계나 행동의 구조로 회귀하는 것이다.
-장 라플랑슈의 정신분석사전-


그동안 무럭무럭 건강하게 잘 자라오던 우리 아이가 갑자기 안 하던 행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자기 나이에 맞지 않게  젖병에 우유를 마시겠다고 하고 업어주고 안아달라고 떼를 씁니다. 기저귀를 채워달라고 하거나 가렸던 대소변 실수를 합니다. 한참 전에 했던 행동들을 다시 시작합니다. 우리 아이가 퇴행했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자녀 관련한 상담에서 퇴행행동은 꽤 자주 언급되는 항목입니다. 아이들은 어떤 스트레스나 큰 압박감, 충격 등을 받게 되면 퇴행하는 행동을 보입니다. 퇴행을 유발하는 가장 흔한 상황은 아마도 동생의 출생일 겁니다. 부모는 직감적으로 아이에게 어려움이 생겼음을 알면서도 다 자란 걸로 생각했던 아이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좀처럼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퇴행은 자아의 방어기제입니다. 현실적 어려움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의 하나로 선택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퇴행은 비정상도 병리적인 현상도 아닙니다. 심각한 병적 퇴행도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는 일시적이고 정상적인 과정입니다. 지금의 상황이 힘들고 버거워서 그로부터 회피할 수 있고 책임을 면할 수 있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입니다. 퇴행 행동을 다 수용해주자는 건 아니지만 그 마음은 알아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퇴행을 보이는 부모의 마음은 걱정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아이들이 퇴행을 보인다면, 우선 스트레스의 기원을 찾아보고 도와줄 수 있는 것이면 직접적인 대응을 해야 합니다. 둘째는 관심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의 중요한 스트레스 중 하나는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적어지거나 적어질 것이 걱정되는 상황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당연히 사랑과 관심이 더 필요하겠지요. 이런 종류의 스트레스가 아니더라도, 아이들에게 심리적으로 가장 의지가 되는 대상은 부모이기 때문에 부모의 관심과 사랑은 아이들에게 많은 위안을 줄 수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과 관심은 만능특효약입니다.

 

그런데 관심과 사랑을 어떻게 실행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에게 제공되는 관심과 사랑은 보통은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을 늘리고 그 시간동안의 상호작용에 집중하는 것으로 해결됩니다. 아이와 함께 하기로 했다면 스마트폰도, TV도, 일 걱정도 모두 놓고서 아이에게만 집중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퇴행행동 자체는 비난하지 않지만 무관심하고, 성숙한 행동에 대해 더 많은 관심과 격려를 표현해주는 것입니다. 부모가 이런 태도를 일관되게 견지한다면, 퇴행은 일시적 현상으로 마무리 될 것입니다.

 

사진_픽셀


마지막으로 퇴행의 정도가 좀 심하다면 놀이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놀이는 단순한 즐거움의 추구 이상입니다. 놀이 상황에서 부지불식간에 표현되는 많은 상징들은 아동 스스로가 경험하고 있는 불행이나 갈등을 효과적으로 대처하게 도와주기도 합니다. 또한 놀이는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그 안에서는 뭐든지 표현 가능합니다. 부모가 아이랑 놀아준다면 그 안에서 가르치려는 노력보다는, 위험하지만 않다면 뭐든지 표현할 수 있다는 전제로 놀아주어야 합니다.

 

놀이라는 상황 하에서는 잠시 퇴행해도 상관없습니다. 놀이는 자유니까. 다만 놀이 밖에서의 퇴행에서는 무관심하게 대하는 것이지요. 놀이라고 하는 특수한 수용적 환경에서의 퇴행 욕구는 허용되지만 그 외의 일상적 생활에서는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을 아이는 배우게 될 것입니다. 일부의 퇴행 욕구를 허용하면서도, 그 동안 발달시켜 왔던 성숙함이 허물어지지 않는 절묘한 절충점을 놀이 환경이 제공하는 것입니다.

 

사진_픽셀

 

지금의 고달픈 현실을 피해 마냥 즐겁고 만족스러운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퇴행의 욕구, 누구에게나 이런 퇴행의 욕구는 있습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인에게 있어서도 이런 퇴행의 욕구를 완전히 무시하고 억압하기 보다는 그 집단, 그 사회에서 수용될 수 있는 건강한 방법으로 조금씩 표출하는 것은 나쁘지 않습니다.

 

퇴행이 미숙한 방어기제이기는 합니다만 어쩌다 한 번은 괜찮지 않을까요? 척이 아니라 정말 동심으로 돌아가 어린 자녀와 같은 놀이를 해보면 어떨까요? 나이든 노모가 반찬이라도 집어주면 냉큼 어린아이처럼 받아먹어도 좋겠지요. 다른 반찬도 밥 위에 얹어달라고 졸라도 보고요. 다 큰 어른이지만 나이 든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르며 품을 파고 들어가면 참 따뜻할 것 같습니다. 남편이 아가라고 불러주면 혀 짧은 소리로 “나 꿍꼬또 기싱꿍꼬또”해도 재미있을 겁니다. 이도저도 아니면 엄마 품을 생각하며 새우처럼 구부리고 침대에 묻혀보면 어떨까요?

 

이 정도의 퇴행이 당신의 인격을 미숙하게 만들지는 않을 겁니다. 아이도 어른도 때로는 퇴행하고 싶습니다. 오늘 퇴행 한번 해볼까요? 어쩌다 퇴행, 못할 것도 없습니다.

 

 

저자약력 :
정신과전문의/소아청소년정신과전문의
전북대 의대 및 대학원를 졸업하고 전북대병원 전공의 및 서울대 병원 소아정신과 임상강사로 일했다. 현재 아이나래정신건강의학과(전주) 원장, 멘토소아청소년연구소 대표를 맡고 있으며 전북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전라북도교육청 정신건강전문컨설팅위원 및 학습클리닉센터 자문,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평생회원, 한국정신분석학회 정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기홍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아이나래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전북대학교 의과대학 및 동대학원 졸업, 신경정신과 전공의 수료
서울대학교병원 소아정신과 임상강사 역임
서울시교육청 특별상담 전문의 역임, 도립 마음사랑병원 진료과장 역임
군산시정신보건센터 상담전문의, 전라북도 청소년정신건강증진 위원, 청소년상담지원센터 협력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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