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픽사베이

 

시준이는 갖고 싶은 건 꼭 가져야 한다. 아무리 안 된다고 해도 반복해서 말하고 드러눕고 울고 소리친다. 부모의 생각도 그렇고 주변에서도 들어주면 안 된다고 하지만 매번 아이의 고집에 부모는 지고 만다. 명훈이는 승강기 버튼은 꼭 자기가 눌러야 한다고 고집을 피운다. 자기가 누르지 못한 상황이 생기면 난리가 난다. 다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가 새로 버튼을 누르고 올라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말이 늦은 석호는 항상 같은 길로만 가려고 고집을 피운다. 아무리 바빠도 꼭 그 길로 돌아 가야한 한다. 부모를 지치게 하는 아이들의 고집,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고집은 건강한 자율성의 발달로 시작된다

고집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자기의 의견을 바꾸거나 고치지 않고 굳게 버팀’으로 되어있다. 즉 자기 주장이 세다는 것이다. 발달의 과정에서 보면 아이들은 발달이 진행되면서 점차 자기주장을 하게 된다. 이제 막 엄마의 배속에서 나온 갓난아기는 나와 대상도 구별하지 못하고 나의 안과 밖의 세상도 구별하지 못한다. 오로지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욕구가 중요하다. 갓난이들이 고집을 피운다면 그건 생존과 관련된 문제일 것이고 그건 고집이라는 표현보다는 본능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점차 아기는 자라고 어느 덧 걸음마가 가능해지면서 양육자와 물리적, 신체적 분리가 분명해지고, 세상에 대한 탐색이 늘어나며, 언어와 인지가 더 발달하면서 독립적이며 자율적인 자신을 느끼게 된다. 한없이 자유롭고 거침없는 자신의 모습에 행복해하고 기고만장해진다. 과히 리즈시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아이는 자기의 욕구와 생각을 표현하고 양육자와 힘겨루기를 시작한다. ‘엄마’, ‘아빠’, ‘맘마’ 보다 ‘싫어’라는 말을 더 많이 한다. 고집이 시작된 것이다. 이 시기에 아이들이 얼마나 고집스러웠으면 영어권에서는 ‘terrible two’라 하였고 우리말에서는 ‘미운 2살’, 심지어는 ‘미친 2살’이라고 하였겠는가?

 

소아 정신분석가인 마가렛 말러 여사는 갓난아기가 점차 양육자로부터 분리되어 성숙해가는 과정을 ‘분리-개별화 과정’이라고 하였으며, 생의 초기에 생물학적 욕구만을 가지고 태어나는 신체적 탄생과 구분하여 ‘심리적 탄생’의 시기라고 하였다. 매우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발달이 과정이니 이 과정에서의 행동이 미워 보일 수는 있겠지만 분명 미친 건 아닐 게다. 게다가 잘 자라고 있다는 말이니 당혹감만큼이나 뿌듯한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아직 똥오줌도 못 가리는 아이들의 주장과 고집을 마냥 좋게만 보고 수용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이제 부모는 슬슬 훈육의 시동을 걸어야 한다. 아이들은 건강한 자기조절력을 획득하기 위해 점진적으로 적절한 좌절의 경험을 맛봐야 할 것이다.

 

 

타고나는 고집도 있다

같은 부모가 같은 환경에서 양육을 했더라도 자녀들의 성향이 매우 다른 경우는 매우 흔하다. 심지어는 유전자가 완전히 동일한 일란성 쌍둥이라 하더라도 다른 특성을 보일 때가 있다. 한 아이는 순한데, 한 아이는 예민하고 고집스러울 수 있다. 이렇게 날 때부터 가지고 나온 성격적 특성을 '기질'이라고 한다.

 

기질 연구로 유명한 알렉산더 토마스와 스텔라 체스는 유아를 대상으로 한 자신들의 연구를 기반으로 기질을 크게 3가지로 분류하였다. 첫 번째는 쉬운 아이(easy baby), 두 번째는 어려운 아이(difficult baby), 셋째는 더딘 아이(slow-to-warm-up baby)이다. 어려운 아이는 전체 아이의 약 10% 정도를 차지할 걸로 보는 데, 보통 새로운 환경에 접하면 부정적이거나 강한 반항을 보이며, 고집스런 행동을 보일 가능성이 많다. 또 더딘 아이는 전체의 15% 정도로 보는데 환경 적응이 느린 특성을 가진 아이들이다. 점진적으로는 안정성을 찾는다고는 되어있지만 적응이 느린 상황에서는 본의 아니게 고집스러워 보일 수 있다.

 

이런 연구 결과에 여러 이견이 존재하고, 기질이 절대불변의 것도 아니지만 어찌되었건 고집스런 기질을 타고나는 아이가 있는 건 분명하다. 기질을 이해하고 인지하는 것이 중요한 건, 기질이라는 것이 변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짧은 시간에 그리 쉽지도 않기 때문이다. 내 아이의 기질에 고집스러움이 있다면 양육자는 이를 잘 알아차리고 긴 호흡을 가지고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부모가 고집스런 아이를 만들 수도 있다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프로이트는 아이들이 발달하는 과정을 몇 단계로 나누었고 그중 만 1세반에서 3세 정도의 시기를 항문기라고 칭하였다. 대소변가리기가 중요한 시기이다. 대소변가리기 과정에서 지나치게 부모가 엄격한 태도를 취하면, 아이들은 이에 반응하여 아이는 청결, 질서, 완고함, 고집스러움, 강박적인 성향을 보인다고 한다.

 

어찌 보면 원인이기도 하고 결과일수도 있지만, 양육과 관련된 부모의 태도가 고집스런 아이들 만들기도 한다. 지나치게 허용적인 부모, 일관성이 부족한 부모,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나 죄책감을 가지는 부모가 대표적이다. 부모가 지나친 허용을 하는 경우, 앞서 언급한 적절한 좌절 경험을 통한 자기조절력의 획득이 어렵게 되고 욕구 충족을 위한 아이의 고집은 강화되어 지속될 것이다. 귀한 자식이어서, 상처 받을까봐, 기죽지 않게 하려고, 또는 무관심해서 허용이 지나칠 수 있다. 다양한 사연이 있겠지만 자녀에게 미안함 마음, 죄책감을 갖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허용적인 부모가 된다. 말 그대로 미안해서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기를 원한다면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어야 한다. “안 돼!” 물론 충분한 설명과 공감적 태도가 수반되어야겠지만.

 

사진 픽사베이

 

고집에도 유형이 있다

고집이라는 말이 정신의학적 용어는 아니다. 그러하니 어떤 명확한 정신의학적 정의도 없다. 자녀의 고집 행동을 보고하는 부모들도 각각 다른 의미로 ‘고집’이라는 단어를 선택한다. 고집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되었지만 매우 다양한 행동 양상이 그 안에 있다. 다양한 고집 행동 하나하나를 따져보는 일은 너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고집을 피우는 이유에 따라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보았다.

 

1. 욕구형

하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등에 대한 욕구에 대해 아이가 조절하지 못하고 강력하게 우기는 경우다. 갖고 싶은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쓰고, 스마트폰이나 패드로 게임이나 동영상을 보겠다며 고집을 피우는 경우는 매우 흔한 장면이다.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여 설득해보거나 엄한 표정을 지어보지만, 달래어지기는커녕, 소리를 지르거나 발을 동동 구르고 쫓아다니면서 반복적인 자기 말만하고 심지어는 바닥에 뒹굴고 머리를 박는 등의 자해적인 행동을 취하기도 한다. 평정심을 가지고 원칙적으로 일관되게 대처하는 능숙한 양육자도 있겠지만 지쳐서, 귀찮아서, 안쓰러워서, 기죽을까봐 들어주시는 양육자도 꽤 흔하다.

아이의 욕구가 지나치거나 위험하거나 아이 수준에 맞지 않고, 교육에 위배되거나 발달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면, 이런 욕구형 고집은 당연히 들어주어서는 안 된다. 앞서 언급된 이유들로 이런 고집이 통하기 시작하면 고집스러움은 더욱 강화된다. 이런 고집 행동에 대해 적절한 대처를 어려워하는 부모님께 필자는 이런 언급을 할 때가 많다.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어머니가 아이보다 경험이나 인지, 신체적인 면에서 감당하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훈육에 도전해보세요. 아이가 고집이 세다고 하지만 아이보다 더 센 고집을 부려보세요. 그게 아이들 위하는 길입니다. 그래야 아이의 조절력이 단련이 됩니다.”라고 말이다.

 

2. 불안형

불안은 사람의 행동을 경직되게 만들고 융통성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불안이 발생할 경우를 미연에 차단하기 위해 상황을 통제하기도 하고, 마음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보상적 행동에 몰두한다. 이런 이유로 내면의 불안은 고집스런 행동으로 표현될 때가 많다.

대표적인 예가 애착인형에 대한 고집일 것이다. 애착인형의 정확한 심리학적 표현은 이행대상(transitional object)이며 영국의 소아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도널드 위니코트가 처음으로 사용한 개념이다. 어린 아이가 어머니로부터 점차 분리되는 과정에서 모의 부재를 대신할 수 있는 엄마의 채취가 그윽한 그 무언가를 곁에 두고 싶어 하는 데 그게 바로 이행대상인 것이다. 모든 경우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 이행대상을 항상 곁에 두길 바라며, 이런 바람이 어떤 경우에는 고집을 부리는 행동으로 보여 진다. 이런 경우 무작정 고집을 꺾으려 하기 보다는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이 우선할 것이다. 만4세 이후부터 점진적으로 애착인형을 동반할 수 있는 공간을 축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유치원이나 학교, 학원을 안 가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경우도 이 유형의 고집에 해당되는 경우가 많다. 지루하고 재미없고 ‘노는 게 제일 좋아’서 안 가려는 경우도 있겠지만 부모와 떨어지는 것이 힘들어가 흔한 이유다. 소위 분리불안이 심한 경우다.

강박증이 있으면 외견상 고집스런 행동을 반복한다. 강박이란 용어에 처음부터 고집이란 말을 붙이는 것은 좀 어색하다. 강박증은 원하지 않는 생각이 내 생각 속에 침입하여 반복되거나 이와 연관된 불안을 줄이기 위해 여러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 강박증이다. 병적 행동으로 스스로 조절하기 쉽지 않은데, 이런 행동이 부모와 갈등을 유발할 때, 부모는 이런 행동을 그만 두길 지시하지만 쉽게 그만 두지 않기 때문에, 실은 그만 두기 어렵기 때문에 관찰하는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의 강박행동을 고집스런 행동으로 오해할 수가 있다. 어느 정도의 강박적 행동은 정상의 발달단계에서도 흔히 보여지기도 한다.

불안형 고집은 우선 아이의 마음에 불안이 있음을 인지하는 것, 그리고 그 마음을 공감해주는 것, 그리고 점진적인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가장 핵심적이다. 다만 불안의 수준이 꽤 높다라면 그건 전문가와 상담을 하는 것이 꼭 필요하겠다.

 

3. 연습형

이제 막 일상의 동작들을 배우기 시작하는 아이들은 뭐든지 자기가 하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승강기 버튼도 자기가 먼저 눌러야하고, 초인종도 자기가 눌러야하고 질질 흘리면서도 숟가락질도 자기가 해야 한다. 행여 누군가 이런 행동을 먼저 하거나 대신하는 날에는 난리 법석이 되기 십상이고, 기어코 상황을 되돌려 다시 자기가 하고서야 상황이 종료되는 경우가 많다. 발달의 과정, 즉 점차 성숙해가는 과정에는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반복하고 연습하여 새로운 기술들을 획득한다. 운동, 언어, 사고, 인지 등 모든 영역에서 그렇다. 그러니 이런 연습형 고집은 좀 수용해주고 기회를 주고 기다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4. 집착·감각추구형

때때로 독특하면서도 난감한 형태의 고집을 만날 때가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것에 지나친 집착을 보이는 데 좀 평범하지가 않다. 승강기 앞을 떠날 줄 모르고 서있거나, 보통에 아이들이라면 관심도 없는 환풍기에 정신이 팔려있기도 한다. 지나치게 숫자나 알파벳에 몰입하여 영재인가 싶은 마음도 들지만 왠지 찜찜하다. 특정의 감각 경험을 지나치게 좋아하여 그 감각에만 몰입하려는 경우도 있다. 항상 같은 길을 가려고 하고, 만일 다른 길로 가게 되면 난리가 난다. 책이나 장난감이 매우 정확히 같은 배열되어 있어야 하고 규칙성이 흐트러지는 것이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이런 행동들은 정상의 발달 과정에서 약한 수준으로 보일 수는 있지만 많은 경우에서는 심각한 발달 문제와 연관이 된다. 언어, 인지, 사회성 발달 등을 세심하게 같이 살펴봐야 하며 전문가를 만나보는 것이 필요하다.

 

5. 버티기형

잘못을 했음이 명백한데도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거짓말임이 들통 났는데도 펄쩍 뛰며 아니라고 끈질기게 잡아떼는 아이들이 있다. 어떤 부모는 이 아이가 자라서 싸이코패스가 되지 않을까를 염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체로는 앞뒤 생각 없이 상황을 모면하고 싶은 마음, 미숙한 대처능력, 자기수치심에 직면하기를 거부하는 심리 때문이다. 잘못의 인정이란 자기를 돌아보고 자기 행동을 비판적으로 바로 볼 수 있는 성숙함이 있어야 가능하다. 강압적으로 자백을 받아낸들 진정한 자기반성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자백과 시인을 강요하기 보다는 잘못된 것이 무엇임을 명확하게 알려주고 여기에 합당한 벌칙을 부과하여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긴 시간 속에서, 인정하고 반성의 태도를 보일 때, 확연이 다른 긍정의 반응을 보여주자. 도덕성이 한 번의 기회로 확립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자.

 

아이의 고집은 부모를 고단하게 한다. 그렇다고 피해갈 수는 없다. 고집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그 행동의 의미를 찾아보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박기홍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아이나래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전북대학교 의과대학 및 동대학원 졸업, 신경정신과 전공의 수료
서울대학교병원 소아정신과 임상강사 역임
서울시교육청 특별상담 전문의 역임, 도립 마음사랑병원 진료과장 역임
군산시정신보건센터 상담전문의, 전라북도 청소년정신건강증진 위원, 청소년상담지원센터 협력전문가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