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과에 대한 낙인과 편견>

(1) 정신과는 기록에 남나요?

(2) 정신과 환자는 보험 가입이 안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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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신과 약 먹으면 멍해지고 바보가 된대요

철창과 자물쇠로 걸어 잠긴 감옥 같은 병실. 양팔 소매가 뒤로 묶인 강박복. 우락부락하고 무섭게 생긴 병동 보호사들. 이쯤이 정신과 폐쇄병동에 대한 미디어의 공포스러운 묘사이자 많은 사람들의 선입견이라고 한다면, 거기서 그려지는 정신과 의사와 환자의 모습은 어떨까. 차가운 표정과 감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눈매에 하얀 가운을 입은 채로, 주사기에 뭔지 모를 무서운 약물을 재고 있는 의사. 그리고 그 주사를 맞고 좀비처럼 병실을 걸어 다니는 환자들. 입가엔 침이 멀겋게 흐르며 초점 잃은 눈빛은 의식과 무의식의 중간 어디쯤 있는 듯, 약에 취해 어기적어기적 돌아다니는 환자들의 이미지가 아마 그 모습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굳이 그렇게까지 무시무시한 모습은 아니더라도 정신과 약물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감과 거부감은 여전히 만연하다. ‘정신과약 먹으면 멍해지고 바보가 된대요. 정신과 약물은 중독된대요’라며 약물치료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으로 제때에 치료받지 못해 병을 키우거나 돌이키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는 환자들의 경우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약물에 대한 근거 없는 두려움으로, 쉽게 치료할 수 있는 불안감과 혼란감을 품고 끙끙대는 사람들도 종종 만날 수 있다. ‘내가 조금만 노력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일 뿐인데 굳이 약을 먹어서 멍한 바보가 될 순 없지’하는 마음은 사람들을 치료권에서 점점 멀리 밀쳐내고만 있다.

우선 이 괴담에 가까운 오해에 대해 대답을 하기 전에, 오히려 묻고 싶은 질문이 하나 있다.

“멍해지게 하거나 침을 흘리게 하는 약물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말하는 소위 ‘정신과약’이란 어떤 약을 말하는 것인가요?”

‘정신과 약’이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단어야말로 아마 대중들의 두려움이 덕지덕지 들러붙은 원흉이 아닐까. 정신과 약이라 일컬어진다 하면 짐작 가는 약이 몇몇 있지만, 분명한 것은 ‘정신과 약‘이라 뭉뚱그려지는 약들이 모두 가지는 일반적인 특징이나 위험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환자들에게 처방하는 약 중에는 무척 다양한 용도와 목적의 다양한 약들이 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정신과 이외에 다른 과에서도 충분히 많이 쓰이고 있는 약물들이다. 그리고 이들 모두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되었으며, 결코 사람을 바보나 좀비로 만들지 않는다.

물론 ‘멍해진다’는 증상은 약물치료를 받는 환자들이 자주 호소하는 부작용 중 하나이다. 항불안제나 항우울제, 항정신병제제, 기분안정제 등 대부분의 약물에는 ‘진정작용-졸음을 유도하거나 수면을 유지시키는 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진정작용은 불면증이나 불안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에게 중요한 치료기전이 된다.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환자들로 하여금 깨어있어야 할 시간에도 졸음이나 멍한 듯한 느낌을 들게 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경우의 그 효과는 ‘부작용’이라는 것이다. 부작용은 약물의 원치 않는 부가적인 영향이며 이는 의사와 상담하여 약물 조정이나 변경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다. 결코 멍해지거나 느릿느릿해지거나 하는 부작용이 영구히 후유증처럼 남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런 과도한 두려움으로 불면증이나 우울증을 치료하지 않고 악화시킨다면 질환으로 인한 멍함이나 무의욕증 등이 더 심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기존의 오해는 아마 대부분 정형 항정신병제제 (typical antipsychotics)를 사용하고 있는 만성 조현병 환자들의 모습을 비춘 미디어의 영향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부작용이 큰 이러한 정형 항정신병 제제들은 최근 새로운 약제들의 개발로 그 사용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만약 사용하게 되는 경우라 할지라도 경증의 질환이나 신경증 질환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으며, 환자가 느끼는 부작용과 약물의 필요성을 면밀히 검토하여 최대한 안전한 약물로 조심스럽게 사용하게 된다.

정신과 영역에서 주로 사용하는 약물들 뿐 아니라 모든 의약품에는 부작용이 있다. 약물로 인해 기대할 수 있는 이득과, 부작용으로 인해 얻는 피해 사이의 줄타기가 모든 내과적 치료의 핵심이다. 일부 어떤 부작용은 필연적일 수도 있다. 어떤 부작용은 치명적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있지도 않은 부작용에 대한 과도한 우려로 질병을 방치하고 상처를 곪게 하는 것은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항암제가 머리카락이나 손톱을 빠지게 한다고 하여 모든 내과적 약물이 그러하지는 않듯, 경증의 정신과 질환에 대한 약물은 결코 대중이 두려워하는 것 만큼 그렇게 부작용이 심하지 않다. 설사 부작용이 일부 있다 하더라도 약물을 줄이거나 끊으면 해결할 수 있다.

정신과 약물은 당신을 좀비로 만들지 않는다. 아픈 마음과 지친 정신에 녹아들 몇 알의 약물이야 말로 오히려 좀비 같던 일상에 활기와 웃음을 되찾아 줄 희망이 되어줄 수 있을지 모른다.

 

다음 주

(4) <정신과와 사회적 낙인>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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