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가진 것 없이 태어나 사랑을 받고, 교정을 받고, 또래와 어우러지며 하나, 둘, 소중한 것들이 마음에 쌓여 간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좋은 기억만을 갖고 성장할 수는 없다. 왜곡된 사랑과 마음, 애초에 나쁜 의도였던 접근들은 슬쩍 다가와 모르는 새 커다란 상처 자국을 남기고 만다. 

이런 경험이 매일, 매주, 매해 반복하면서 어쩌면 어리석게도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나서부터 많은 감정과 적절한 사회적 규칙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믿는 순간이 오고야 만다. 허나 내가 지금 누리는 사회적 약속, 규칙이나 위험으로부터 피하는 요령들은 수많은 인연과의 경험으로 생겨났다. 그러니 내가 ‘누군가’와 인연을 맺는다는 것은 이전의 ‘나’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인연이 닿는다는 것은 굉장히 무서운 일이기도, 동시에 무척 설레는 일이기도 하다. 

인연을 맺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인연을 받아들이는 ‘나’ 자신의 어떤 마음과 모습인지에 따라 인연은 구겨지기도 빛이 나기도 한다. 인생 주요한 일들은 바로 이 ‘타이밍’에 좌우되는 경우가 왕왕 있기에 어쩌면 나를 내보이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타이밍일 수도 있겠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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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나에게도 인연이라 할 만한 사람이 여럿 있었다. (여기서 인연이라 함은, 나의 모든 인연을 뜻한다.) 그러나 개중 많은 수의 사람을 잃기도, 내 쪽에서 손을 놓기도 했다. 그쪽에서 끊겼든 자연스레 멀어졌는지, 혹은 내가 내려둔 것인지 그런 것이 중요하던 시절이 있었다. 얼마만큼은 자존심도 상했고, 버려진 것을 숨기려고 온갖 수를 쓰기도 했다. 

상대를 원망하고, 이유가 애타게 궁금하고 그래서, 그렇게 떠난 그대가 마음 편히 잘 지내긴 하는지, 그런 것들이 궁금하고, 그런 것이 궁금한 내 자신이 초라해 미칠 것 같았다. 

생각의 자해라면 이런 것일까? 잃은 사람을 자주 생각했고, 명치께가 찡하니 아려 왔다. 자주 울었다. 그러나 나의 모든 행동들은 결국 그대를 불러오지 못했다. 그저 고통스러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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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연에 한 줄씩의 끈이 있다면, 우리는 한두 개 정도의 줄은 꼭 굵고 튼튼하기를 바란다. 그럴수록 안정감을 느끼고 다소 안심하게 될 테다. 나에게도 굵고 튼튼해서 절대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 느낀 줄이 있었다. 하루아침에 내 눈앞에서 줄이 끊어졌다. 줄이 두껍다고 끊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두꺼웠기에 끊어지니 내게 오는 심리적 타격이 심했다. 

나는 유영하듯 흐르던 삶이 멈추는 것을 느꼈다. 감히 ‘절대’라는 말을 자주 붙이던 튼튼한 밧줄이었다. 내게서 한 순간 만에 떠나버렸다. 그대의 심장이 나의 것과 같이 뛴다고 여겼는데 말이다. 

아직, 멈추었던 내 삶이 아직, 다시 흐르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이 태어나, 인연이 되어 많은 애정을 받고 삶의 철학을 나누며 비슷한 것을 나누어 먹고, 얼굴만 마주해도 빙긋 웃음이 나던, 너와 나, 우리의 연인은 끝났다. 내 마음속 그대는 하루에도 몇 번씩 돌아온다. 삶이 다시 흐르기까지는 아직 멀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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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굽이진 길마다 내가 기대던 어깨는 이제는 사라져, 삶이 고단해도 기댈 어느 한 구석도 없어졌지만, 나만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이제 어찌해야 하는 걸까. 강해지고, 더 강해져서 그대를 잊고 홀로 서 있는 것이 정말 정답일까. 이게 최선일까. 

언제쯤 나는 당신과의 행복했던 시간들을 돌이키며, 정신적 자해를 멈출 수 있을까. 과연 나는 언제가 되어야 드디어 잊을 수 있을까. 

낮부터 생각하던, 잃은 인연들을 계속해 생각하다 보면 그다음 날의 새벽은 무척 외롭곤 하다. 아직, 나는 머리로만 알고 있다. 잃은 인연 모두 마음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털어내고 떨쳐냈다고 믿었는데 한숨이 나오고 명치가 아리고 두 손이 차가워진다. 양쪽을 잡아야 관계가 형성되는 인생에서, 아직 나 홀로 꾹 잡고 있는 미련한 나를, 당신을 위하여. 

 

심경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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