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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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저녁 6시밖에 되지 않았다. 여름이라면 이 시간에도 빛이 들었겠지. 정말 잔인한 일이다. 나는 까무러치게 힘든데, 대낮같이 해가 들다니 말이다. 그러나 요즘은 이 시간이면 한두 방울의 눈물 정도는 감출 수 있는, 어스륵한 시간이다. 그나마 다행인 걸까.

나는 힘이 들 때마다 어서 해가 지는 것을 기다린다. 너무도 나약한 태도지만 저녁이 오면 오늘 나의 하루를 마감할 수 있다는 누군가의 허락을 받은 것처럼, 차분히 마음의 마무리를 지을 수 있어 지고는 한다. 베란다 넘어로 해가 지고, 그 사이에 있는 열 띄었던 식물들이 차분해지는 것 같아 보인다. 모두 다 제 마음이 원하는 대로 보는 광경일 테지만 말이다. 밝디 밝은 등을 차분히 끄고, 살구색 등을 하나둘 켠다. 내가 잠에 들기 위해 준비하는 루틴이다. 하지만 아직 오후 여섯 시일 뿐이다. 오후 8시로 자동 점멸을 설정해 둔 식물 등이 아직 꺼지지도 않았다.

나는 유별나게 긴장이 많은 아이였다. 초등학생 때, 준비물을 반쯤은 스스로 챙기곤 했는데, 그때마다 ‘어른들이 하는 일을 내가 제대로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무척 긴장했다. 문방구에 들러 구경하고 싶은 호기심을 꾹 누르고, 사야 할 것이 적혀진 종이를 문방구 아저씨에게 건네고 동동 발을 굴렀던 기억이 꽤 있다. 

이게 맞는지, 제대로 산 것인지를 몇 번이나 확인하고, 수업 시간이 찾아와서 내 것이 친구들 것과 같다는 것을 확인하고 난 후에야 긴장이 풀려 졸음이 쏟아지던 때도 있었다. 내가 준비한 것이 친구들과 영 다른 것이라면, 그때의 나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초등학생 준비물이 인생을 좌우할 리가 없는데 그 당시 나의 세상은 그런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너무 이르게 찾아온 ‘책임’ 이라든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티나는 일들 말이다. 수업을 마치기까지, 얼마나 어쩔 줄을 모르며 동공이 흔들렸는지 그런 날은 화장실이든 양호실이든 달려나가 울고만 싶었다. 

어쩌면 요즘의 나는 아직 그때와 비슷하다. 별 도리가 없다. 나에게 준비되어 있어야 할 무언가가 없다거나, 생각지도 못한 것을 요구받으면 그 후로 몇 시간은 ‘뭔가 잘못됐구나.’ 하는 직감과 함께 굳어 버리고 만다. 

 

어른이 되고는 준비해야 할 것만이 아니라, 일이 엉켜도, 늦어져도, 원하는 의도대로 전달이 되지 않아도, 일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도 이제는 탓할 누군가도 없이 오롯이 내 탓이다. 그러니 순식간에 식은땀이 흐른다. 이 사건이 인생을 좌우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게 되었지만, 이런 것들이 누적되어 가면 평판에 좋지 않다는 것도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뒷수습을 하는 것까지 모두 하고 나면 어느새 빽빽한 반성문을 쓴 것처럼, 지칠 대로 지치고 만다. 그리고 딱 울고 싶어진다. 화장실과 양호실이 사뭇 그립다. 

그 어느 누구라도 나를 위로해 줬으면 하지만, 사실 누구의 위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어디든 내 몸 누일 곳에 가 소리를 내든 말든 그저 울고만 싶어진다. 

아직 저녁 6시를 조금 벗어난 시간, 7시도 9시도 12시도 도달하려면 약속한 기다림이 필요하다. 어쩌면 오늘 같은 날은, 시간이 내 편이어서, 잠시 멍-하게 기다리면, 조금 일찍 늦은 밤에 다다르기를 괜시리 투정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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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게, 오늘도 가득 채운 당신을 위하여 얼굴도 모르는 이가 드리는 위로가 얼마나 힘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누구의 위로라도 필요할 때가 있곤 했다. 어떤 날들은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의 위로가 더 필요할 때도 있다는 것을, 삶이 퍽퍽하다는 것을 배움과 동시에 함께 알아차렸다. 홀로 울어도 주저앉아 빨리 오늘을 어떤 식으로든 마감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이 마음 그대로를 알아주는 이가 아주 멀리 있지는 않다고 생각해 주시길. 

하루를 성실히 채운다는 것이 그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무엇을 잔뜩 했던 안 했던, 하루를 채운 ‘나’는 존중받아 마땅하다. 되도록 주무시는 그곳만은 안전하고 완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길, 마음 깊게 소망해 본다. 까무라치도록 잠들어 그다음 날이 되면 개운하게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꿈도 없는 밤을 누리시길. 오늘의 고됨이 그렇게 털어지는지는 감히 짐작할 수 없지만, 응원합니다. 평온하세요. 

심경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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