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네 개의 계절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매혹적인지 나는 애써 외면해 왔다. 나는 어쩐지 네 개의 모든 계절과 그다지 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태어난 이래 수족냉증이 나를 괴롭혔다. 손끝, 발끝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상황은 차차 익숙해져서 참을 만했다. 

예외로 힘든 때는 사진을 찍을 때였다. 해가 부족한 겨울에 안 그래도 오래 셔터를 누르고 있어야만 했는데, 불안증이 더해지면서 찬 손이 떨리기까지 했다. 언젠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사진을 찍는데 초겨울쯤 이었을까, 손이 세차게 떨려서 인물을 담을 수 없어서 당장에 나 스스로가 너무 당황했다. 그 와중에 옆에 있는 사람이 ‘왜 그리 긴장했냐’며 놀리기 시작해서 나는 억지로 “헤헤헤헤…” 하고 웃었는데, 얼른 다른 사람에게 카메라를 넘기고, 근래 찍기만 하고 현상하지 않은 쌓인 필름들을 얼른 현상 맡겼다. 

결과는 처참했다. 70%가 빛이 부족한 겨울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모두와 모든 것이 흔들린 채. 그땐 ‘수전증이 왜 생겼지?’ 하고 말았다. 추워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내가 얼마나 고단하고 속상한 마음으로 겨울을 보냈을지 대강 짐작하리라 생각한다.

 

봄이라고 좋았나 하면, 모르겠다. 모두가 피어나고 모든 사람이 분홍 꽃잎이 날리는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웃음이 가득한 세상에서,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시인이셨던 선생님을 그리워하며 나는 짧고 긴 여러 개의 까맣고 회색의 시를 써 내렸다. 동시(童詩)도 종종 썼다. 어른을 위한 동시였다. 가끔은 잔혹했고, 가끔은 끝도 없이 슬픈 것도 있었다.

내가 봄을 넘기는 방법은 흙을 만지는 것이었다. 마음이 회색 큰 덩어리로 웅크리고 있는데, 나는 살아남아야 했으니까, 나는 까만 흙을 만져 댔다. 흙이 쓸려 내려간 화분을 채우고, 갈아 주고, 둘러봤다. 그렇게 식물들을 엎어내고 알맞은 흙을 다시 주는 행위를 반복하며 내가 그들에게 큰 기여를 하는 마냥 작은 만족감들을 쌓아 가며 그렇게 봄이 지났다. 허리가 지끈거리며 여러 개의 허리 근육이 끊어질 것 같을 때쯤 그만두고 침대에 눕는 것이 풋한 봄의 공기를 즐길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이었다.

 

더워지면 내 더위에 약한 나의 컨디션은 영 꽝이 되어 버리지만, 바깥으로 나가면 옅은 연두색에서 짙은 녹음이 사방에 덧칠해지기까지 식물들은 끊임없이 태양을 바라보고, 최선을 다한다. 뭐 한다고 집에 콕 박혀 일이 주 나오지 않았다가 병원이라도 갈라 손치고 집을 나서면 짙은 나무가 좌르르 정렬되어 있는 길거리가 낯설어 더위도 잊고 한참을 보다가 주르르 땀이 흐르는 것을 닦으며 어디로든 피신했다.

땀이 나는 것은 어느 때든 정말 싫어하는 감각이었다. 나는 불안증이 돋아도 땀이 엄청나게 났고, 공황발작을 일으켜도 식은땀이 엄청나게 흘렀다. 가장 더운 시간대에는 되도록 움직이지 않았고, 약속도 되도록 피했다. 병원 예약도 이 시간대는 피했다. 늘 더위를 피할 수만은 없는 법, 어떤 때는 땀을 흘려 가며 열심히 사진을 찍어 두면 언제라도 여름의 사진을 보며 짙은 녹음을 그리워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녹음에서 더위를 뺀 그 풍경을 그리워한 것이다.

여름이 지독히 길다는 사실 또한 나에겐 고문과도 같았다. 물론 식물들에게는 살맛나는 세상일 것이다. 보통 내가 키우는 식물의 원래 집은 덥고 습하고 해가 쨍한 곳들이 많으니, 한국의 여름은 이와 비슷해서 신나 있는 것이 내 눈에 보일 정도다. 새싹이 났는데, 또 새로운 싹을 준비하는 모습이라니… 정말 신났다.

 

 

나는 가을 비슷한 게 느껴지면 바로 걷는 일에 집중한다. 언제나 걷는 길의 화두는 ‘사람’인 듯하다. 사람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풀어 갈 수 있었던 대다수의 방법은 자연을, 식물들을 생각하면서였다. 식물을 생각하며, 자연을 생각하면서 나는 아주 큰 그림에서의 현실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아주 작은 다툼과 오해일지라도, 자연을 그리는 마음으로 그 사람을 다루면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소중히 대할 수 있었다. 대부분 익숙함으로 잊어 가는 상대에 대한 소중함을, 그러니까 그 사람은 사람 자체로 하나의 우주이며, 큰 세상임을 잊고 나는 너무 쉽게 나와 엇갈리는 의견을 가진 수만 명의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축소하여 여긴 것이다. 그렇게 대하기 너무 쉬운 습관을 갖고 사는 것만 같아 부끄럽다.

오늘 저녁, 사람들이 모두 집을 향해 바쁘게 발길을 옮기고, 그림자들이 남은 도심에서 약간의 불들이 자신의 일을 마치지 못한 채 가엽게 끙끙대고 있으며, 나는 그들의 불빛을 등불 삼아 집을 찾아 걸어간다. 겨울은 여전히 너무 춥고, 연말은 못해 놓은 것들이 몰아쳐 오는 고개 숙이게 되는 회한의 시기다.

그리운 것들은 여전히 큰 그림자가 되어 내 뒤를 쫓고, 얼어 죽은 식물이 가지를 사르르 흘러내려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계절. 어디에 집중해도 아쉽고 그립고 반성하게 되는 겨울. 가로수 나무들은 잎들을 모두 쳐낸 채, 빈 가지에 봄의 싹을 살짝 숨겨 두고 눈도 바람도 이겨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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