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픽사베이

 

• 아이는 아이의 인생을 산다.

 

“자식 마음대로 안 돼.”

 

많은 부모들이 하는 소리다. 애초부터 부모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아이도 있고, 따르되 부모 뜻만큼 되지 못하는 아이도 있다. 어느 쪽이든 속상하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당신이 진정 이 문제 때문에 고민을 하고 속상해한다면 부모로서의 자질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다.

 

아이의 진로에 관한 한 방목이 원칙이다. 테니스 선수로 기르고 싶은 것까지는 좋다. 아이를 테니스 코트에 데려가고 테니스에 초청하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부모들이 하는 걸 지켜보게 하면서 그의 반응을 살펴보되, 그 이상은 안 된다. 테니스가 좋다면, 그리고 재능이 있다면 고기가 물을 만난 듯 뛰어들 것이다.

 

아이는 나름의 인생관이 있다. 아버지 세대와는 가치관도 다르다. 행복의 의미도 다르고 성공적인 인생의 뜻도 전혀 다르다. 아버지와는 개성도 다르다. 희망사항도 다르다. 같을 수도 있지만 같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부모의 책임이다. 아니 이건 모든 인간이 지녀야 할 기본적 덕목이다. 상대의 인생관, 가치관을 존중한다는 건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기본적인 자세다.

 

불행히 이게 잘 안 되는 게 아버지 입장이다. 자기와 다르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아이의 인생관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해서 마찰이 일어난다. 그리곤 한다는 소리가 ‘자식 마음대로 안 된다.’는 탄식이다.

 

아버지의 뜻이 어디에 있든 아이는 아이의 인생을 살 것이다. 그게 자신 있게 사는 길이다. 개성이 강한 아이다. 마음대로 안 된다고 부모는 한탄하겠지만 아이 입장에선 축복 받을 일이다. 강하고 자신 있는 아이로 잘 키웠다는 증거다. 아버지의 뜻에 반해 나름의 길을 걸었다는 건 분명한 개성이 살아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탄식할 것 없다. 자식 잘 키웠다고 긍지를 가질 일이다.

 

사진 픽사베이

 

야단이 습관인 부모

 

거의 습관적으로 야단치는 부모가 있다. 아이들 걸음걸이 하나에도 이래라 저래라 한마디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다. 내 충고는, 한마디 하고 싶을 때라도 참으라는 것이다. 열까지 참고 기다려 봐라. 조용히 하란다고 조용해질 아이가 아니다. 아이들은 생리적으로 조용해질 수가 없다.

 

아이들을 키운다는 건 마치 서커스 구경하는 거나 같다. 지켜보기에도 아슬아슬하고 조마조마하다. 이제라도 곧 실수를 저지를 것 같다. 다음 순간 문제라도 일으킬 것 같다. 실수도 물론 한다. 하지만 한 걸음 뒤로 물러서 조용히 지켜볼 수 있어야 한다. 큰 실수를 하지 않나, 큰 문제를 일으키지나 않나 멀리서 그러나 가깝게 지켜봐야 한다. 때론 공중서커스의 위험한 곡예도 펼칠 것이다. 그러 땐 밑에서 여물게 펴들고 지켜봐야 한다.

 

실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런 작은 실수를 통해 아이들은 배우고 성장한다. 좌절도 하고 마음의 상처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값진 교훈이다.

 

아이들의 행동이 크게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 한 그냥 둬야 한다. 아이들에겐 그런 잠시의 일탈을 통해 스릴을 느끼고, 그게 곧 꽉 짜인 스케줄에서 탈피,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 아이들은 항상 규제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게 때로는 반항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멀쩡한 옷을 찢어 입고 다니는 녀석도 있다. 바짓가랑이도 한 쪽만 잘라 입고 다닌다. 머리는 또 그게 뭔가. 여자 아이가 오빠 잠바를 걸치고 나가고. 좋게 보면 자유분방이고 나쁘게 보면 저러다 날라리나 되는 게 아닌지 불안하다.

 

이럴 때 부모가 조심할 게 있다. 참아야 한다는 거다. 한마디 하고 싶어도 참아야 한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싫어도 참아야 할 일이 있다. 비록 내 마음에 들진 않아도 참고 넘겨야 할 일이 있다. 이걸 잘 판단해야 한다.

 

참고 기다려라.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그만둘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게 참교육이다. 아이들은 문제투성이다. 아니 문제가 있는 게 정상이다. 이해 못할 구석도 많다. 해서 청소년을 ‘정상적인 정신분열증(조현병)’ 이라고 부르는 학자도 있다. 작고 큰 문제점을 안고 있는 그 자체가 곧 청소년이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그 많은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해낼 수 있는 자정능력을 갖추고 있다.

 

아이들의 이 정화능력을 믿어야 한다. 경험이 없는 아이들이라 문제를 푸는 게 쉽진 않을 것이다. 피하기만 하는 아이도 있고 우격다짐으로 풀려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실수도 있고 때론 당황, 불안에 휩싸일 때도 있다. 어른의 슬기와 경험이 필요할 때도 있다. 단 도움을 주는 데는 인색해야 한다. 좀 시원찮아도 참고 기다려 주는 게 먼 훗날을 위해 현명하다는 사실을 한 번 더 강조해둔다.

 

사진 픽사베이

 

실수가 아이들의 본질이다.

 

설치는 아이에게 지나친 간섭이나 꾸중을 하면 아이들은 행여 실수라도 하면 어쩌랴 싶어 겁을 집어먹는다. 행동이 위축되고 무슨 일에든 과감성이 결여된다. 어른 눈치 보느라 주저하기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아이들은 원래 실수뭉치요, 사고덩이다. 그것이 아이들의 본질이요, 본성이다. 신중한 아이도 예외는 아니다.

 

하긴 어른이라고 실수를 안 하나? 따지고 보면 그것이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른다. 자란다는 건 그 실수를 최소한으로 줄여가는 과정이다. 그것은 많은 경험과 실수에서 얻는 교훈으로 가능해진다.

 

아이들의 실수할 권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너무 실수 없이 키우려고 하지 마라. 내가 참으로 불행히 생각하는 것은 도시일수록, 잘 사는 집일수록 아이들에겐 ‘안 돼!’가 많다는 점이다. 고급 가구 근처에 가도 안 돼! 오디오를 만져도 안 돼! TV도 안 돼! 떠들면 안 돼! 모든 게 ‘안 돼!’ 뿐이다. 아이들은 그저 조심, 긴장 일색이다.

 

시골에서 마음껏 뒹굴며 거리낌 없이 뛰노는 아이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거기엔 '안 돼'가 없다. 모든 게 자유롭다. 거침없다. 안방이고 앞뜰이고 산과 들이 모두가 아이들 차지요, 아이들 세상이다.

 

큰 인물이 되려면 어릴 적 시골에서 자라야 한다는 뜻도 여기 있다. 도시 아이들은 방학 때만이라도 시골에 보내야 한다. 시골 아이들은 도시로 보내고. 요즈음은 그런 교환 프로그램도 많다. 한 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아빠 그렇게 키워선 안 됩니다’ 중에서

 

 

이시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고문
경북대학교 의학 학사
예일대학교 대학원 신경정신과학 박사
세로토닌 문화 원장, 힐리언스 선마을 촌장, 한국자연의학종합연구원 원장
정신의학신문 고문
전체기사 보기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