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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항, 이유 있는 항변

 

어제까지만 해도 착하고 고분고분하던 아이의 태도가 갑자기 반항적으로 변했다. 물어도 시큰둥한 표정만 짓고 제 방으로 들어간다. 조금만 수틀리면 문을 쾅 닫는 통에 온 식구들 가슴이 철렁한다. 뭐 때문에 화가 났는지 영문을 알 수 없다. 말씨도 불손하고 때론 말대꾸도 서슴지 않는다. 귀가 시간도 늦어진다. 왜냐고 물어도 시원한 대답이 없다. 처음 당하는 부모로선 참으로 당황스럽다.

 

다시 불러 따져 볼까? 야단을 칠까? 때려줄까? 저걸 그냥 둬야 하나? 도대체 저 애가 왜 갑자기 변했을까? 이젠 말대꾸까지, 의문과 걱정이 꼬리를 문다.

 

그리 걱정할 것 없다. 아니 오히려 기뻐해야 할 일이다. 녀석은 이제 부모 품을 떠나 자기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큰 모험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 아이가 지금까지 큰 문제가 없었다면, 그리고 그 아이가 지금 마의 중2 고비를 넘고 있다면 크게 걱정할 것 없다. 그만큼 자랐다는 뜻이다.

 

이젠 내 할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간섭하지 말라는 뜻이다. 따져 묻지도 말고 이래라 저래라 시키지도 말라는 뜻이다. 시키는대로 무조건 따라 하는 어린애가 아니다. 이젠 내가 생각해서 할 일이면 하고 안 할 일이면 안 하겠다는 뜻이다. 그만큼 선택의 능력도 생겼다는 뜻이다. 내겐 비판할 능력도 생겼으니 할 말은 하겠다는 뜻이다.

 

말대꾸라니? 천만에다. 제 의견을 말한 것뿐이다. 그렇다 문제는 여기 있다. 아이들 입장에서 그건 반항이 아니다. 그냥 느낀 대로 자기 생각을 말했을 뿐이다. 하지만 당하는 부모 입장은 그게 아니다. 어른 말에 대꾸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순간적으로 화가 치민다. 아이들 말대꾸만큼 부모를 성나게 하는 것도 없으리라. 이건 아주 조건반사처럼 즉각적인 반응이다. 권위에 대한 도전이요, 반항이다. '어디 감히?' 이건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여기서 부모와 자식 사이에 현격한 의식의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요즈음 아이들은 그렇게 교육을 받았다. 자기 의견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훈련을 일찍부터 받았다. 그럴 수 있어야 똑똑한 아이라고 부모도 그렇게 가르쳤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를 반항이요, 도전이라니? 어른 앞에서 '말대꾸'는 절대로 해선 안 되는 금기로 잠재의식 깊숙이 박힌 부모 세대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아량이 필요하다. 성장을 위한 고통으로 이해할 수도 있어야 한다.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그대로 두어선 안 되겠다는 판단이 서면 나름대로의 현명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이의 개성, 당시의 상황, 부모의 평소 교육방법 등 다각적인 검토를 종합해 찾아야 한다.

 

물론 죄질이 나쁜 반항도 있다. 이건 엄히 다스려야 한다. 부모 힘이 부족하면 전문가, 경찰, 학교의 입체적인 대책 강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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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벌, 제대로 잘해야 한다

 

체벌에는 조건이 있다.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아버지가 회사 일이 잘 안될 때, 어머니가 남편에 불만이 있을 때 죄 없는 아이들을 들볶는다. 하찮은 걸 갖고 야단을 치거나 매질을 한다. 그리고 한참 있노라면 영 기분이 찜찜하다. 후회가 되고 아이 보기 미안하다. 아이가 야단을 맞아야 할 일인지, 아니면 문제가 있는 것인지를 잘 감별해야 한다.

 

부모에게도 인간적인 고민이 있고 짜증날 일도 많다. 하지만 억울하게 당해야 하는 아이들 입장에선 그런 부모의 심경을 헤아릴 여유가 없다. 또 그런 나이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꾸중의 효과는커녕 반감만 생긴다.

 

아이들은 영리해서 제가 한 짓이 과연 이 정도의 야단을 맞아야 할 일인가를 나름 평가할 줄 안다. 당장에는 안 되지만 제 방에 돌아가 앉아 있노라면 억울한 기분은 차츰 가시고 자기 잘못을 뉘우치게 된다. 하지만 불행히 억울한 기분이 영 가시지 않고 이게 모두 부모 자신의 문제 탓이라면 아이의 반감만 키워 놓는 셈이다. 아이들이 부모의 인간적 고충을 이해하게 되는 건 먼 훗날 어느 연령이 되어서야 가능한 일이다.

 

교육적으로 체벌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서는 경우에도 흥분이 지나쳐 제 감정을 자제 못하는 지경으로 되어선 안 된다. 아이를 꾸짖는데, 더구나 매질을 하는 경우라면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잔뜩 화가 난다. 하지만 폭발해선 안 된다.

 

체벌 절대 불가론을 펴는 사람들은 바로 이 점을 염려해서다. 그리고 그건 대단히 설득력 있는 지적이다. 매질을 하는 순간 공격중추가 자극되어 점점 화가 증폭되기 때문에 끝내 자제력을 잃어버린다. 이쯤 되면 못할 말이 없다. 아이들 마음에 상처를 남길 말도 서슴지 않는다.

 

옛날 서당에서 훈장이 매질을 할 적엔 반드시 의관을 바로 갖춘 후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두고 했었다. 성난 것을 가라앉히고 권위와 위엄을 갖추기 위함이다. 매질 속에는 추호의 감정 개입이 되어선 안 된다. 권위가 없는 매질은 폭행이요, 그렇다고 권위만의 매질로써는 아이에게 반성을 촉구할 수 없다. 위엄 속에도 따뜻한 애정이 전달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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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한 아빠가 좋다

 

어른이 되면 자기는 마치 어린 나이에 이미 성인군자나 되었던 것처럼 어린 시절을 이야기한다. 선생님도 부모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야 권위가 서고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고 교육적일 것으로 생각한다. 과장도 거짓말도 섞어 가면서.

 

이건 교만이요, 위선이지 교육은 아니다. 거짓말로 교육이 되진 않는다. 요즈음 아이들이 얼마나 약은데 뻔히 들여다보이는 소리로 설교를 해봤자 설득력이 없다. 진실하고 솔직한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그게 아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어느 아이도 아버지가 신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아빠도 어릴 적엔 실수를 하고 사고도 저질렀다. 누가 안 그랬겠어. 나쁜 짓도 했다. 이걸 인정해야 한다. 그런 흔들리는 시기를 거쳐 후회도 하고 반성도 하면서 오늘 여기까지 온 것이다. 이것이 대개의 아버지의 모습이다.

 

부모의 과잉 반응이 아이의 일과성 잘못을 아주 고질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 술, 담배. 안하면 좋겠지만 한다고 과잉 반응은 금물이다. 부모 둘이 앉아 심각한 얼굴로 불량, 비행 딱지를 붙이면 아이는 진짜로 그렇게 된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켜보자.

 

요즈음에는 부모와 자식 관계가 너무 밀착돼 있다. 건강한 아이에게 이건 구속이다. 아이에겐 자유로이 달아날 구석이 있어야 한다. 사소한 일에까지 간섭을 하게 되면 아이에게 자꾸 나쁜 아이라는 이미지만 심어 준다. 자신들의 어릴 적 생각을 해보라. 지금 당신이 핏대를 올려 잔소리하는 만큼 완벽했던가를.

 

솔직해야 한다. 자신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솔직할 수 있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엔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열매는 크다.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긴밀하개 맺어 주기 때문이다.

 

 

‘아빠 그렇게 키워선 안 됩니다’ 중에서

 

 

이시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고문
경북대학교 의학 학사
예일대학교 대학원 신경정신과학 박사
세로토닌 문화 원장, 힐리언스 선마을 촌장, 한국자연의학종합연구원 원장
정신의학신문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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