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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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렷한 동기가 없이 불특정인에게 폭력이 행해지는 점을 특성으로 하는 이른바 ‘묻지 마 범죄’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수차례의 사건에 대해 정신질환과의 연관성이 언급되는 과정에서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더 심해지고 치료가 필요한 분들에게 적절한 개입이 이뤄지기 어려워질 수도 있는 상황인데요, 오늘은 범죄와 정신질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볼까 합니다. 

‘묻지 마 범죄’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누구든지 범죄 피해의 예외가 될 수는 없다는 두려움이 높아지고 있는데요, ‘묻지 마’라는 범죄가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경쟁을 촉발하는 사회와 극에 달한 물신주의, 갈 곳을 잃은 불만 등 구조적 요인이 있을 것입니다. 

묻지 마 범죄’는 정신질환과의 연관성도 간과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묻지 마 범죄 가해자의 정신질환 진단 및 치료 경험을 조사했을 때, 정신질환 진단을 받은 경험이 있는 가해자는 58.3%로 그렇지 않은 가해자 비중(33.3%)을 크게 웃돌았습니다.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 가해자는 54.2%로 치료 경험이 없는 가해자 비중(37.5%)보다 높았습니다. 

 

하지만, 정신질환을 ‘묻지 마 범죄’와 연관 짓는 것은 차별을 금지하고 인권을 보호해야 할 사회의 책무를 감안할 때 신중해야 할 일입니다. 다만 조현병 등 정신장애가 있거나 환각물질 흡입으로 인해 범행을 저지르기에 이르는 비중이 상당하다는 점에서 조기 치료가 적절히 이뤄지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정신질환을 경험하는 분들에게 지속적인 치료를 베푸는 일은 공공의 안녕을 위해 대단히 중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묻지 마 범죄’ 가해자들을 대면한 경험이 많은 김한중 경찰관은 강동욱 동국대 법학과 교수와 함께 2019년 <정신질환자에 의한‘묻지 마 범죄’의 실태와 대책 방안> 논문을 참고해 보면, 진주에서 발생한 뚜렷한 동기 없는 방화 살인 사건 이후 발표된 이 논문은 정신건강복지법 중 입원제도를 중심으로 제시된 개선방안 가운데는 자의 입원의 경우, 정신건강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퇴원 여부를 결정하게끔 하는 방안이 담겼습니다. 

최근 ‘묻지 마 범죄’에 대한 범정부 대책들도 무서운 범죄 피해 속에서 법무부와 경찰청은 법관의 결정으로 중증 정신질환자를 입원하게 하는 ‘사법입원제’ 도입 여부를 검토한다고 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정신건강 정책 전반에 대한 혁신 및 인프라 확대를 통해 전 국민의 마음건강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정부는 2025년부터 정신건강검진 주기를 단축하고, 조현병 등도 검진 질환군에 포함하여 위험군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묻지 마 범죄’의 가해자 가운데는 취업, 학력, 가정상황, 친구관계 등에서 혜택을 받아 온 이들의 비중이 크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 있는 자가 많고, 다양한 범죄 위험과 정신 건강에 대한 취약성을 가지고 있어 관리와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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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와 투자, 교육 등 전 영역에서 이미 격차가 커져 버린 사회, 모두가 정신건강의 저하를 호소하는 사회에서 불특정 다수를 향한 갈 곳 잃은 분노의 표출이 많아진 상황에서 누군가를 탓하고 비난하며 상처를 준다고 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폭력과 범죄 사건이 발생했을 때, 특정 집단 전체를 피해자 또는 가해자로 일반화하는 것은 더 큰 상처를 낳을 수 있습니다. 서로에 대한 공격보다는 서로를 보듬는 마음으로 모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찾고 실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묻지 마 범죄’는 역설적으로 우리의 시대가 안고 있는 사회적 병리와 사회복지 정책의 사각지대를 보여줍니다. 정신질환자들의 발견과 이송, 재활, 거주 등의 폭넓은 인프라에 대한 세밀한 준비와 구체적인 논의도 필요할 것입니다.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두려움을 떠나 이 사회의 단면을 정면으로 직시하고, 정신질환자의 치료와 보호에 힘을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장승용 원장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인하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인하대병원 인턴 및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한국정신분석학회 정신분석적 정신치료 Master class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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