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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과 범죄
임진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9.12.30 05:35

[정신의학신문 : 임진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요즘 뉴스를 보면 정신질환에 따른 범죄를 자주 접합니다. 정신적인 문제로 인해 불안정한 상태에서의 범죄 이야기를 듣습니다. 때론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묻지마 범죄, 잔인한 범죄수법 등에 대한 보도는 많은 사람에게 공포심을 일으킵니다.

한편 정신질환, 음주문제 등으로 양형을 받았다는 말을 접하기도 합니다. 심하게는, 일부 범죄자가 정신질환을 가장하여 양형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기도 합니다.

정신질환과 범죄 그리고 이에 따른 처벌에 대하여 많은 말이 오갑니다. 법적인 분야에 대해 법조인처럼 조예가 깊은 것은 아니지만,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입장에서 정신질환과 범죄 그리고 그에 따른 처벌에 대하여 다루어 보겠습니다.

 

1) 정신질환에 따른 가상의 범죄사례 

(1) 30세 활달한 성격의 가정주부 A는 문제없이 생활했었다. 하지만 출산 후 우울감을 느꼈고 태어난 아이가 전혀 예쁘지 않고 밤새도록 우는 것이 자신을 괴롭히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에게 이러한 마음을 이야기했지만 괜한 소리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증상은 점차 심해졌고 A는 아이에게 마치 마귀가 들어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아이를 학대했다.

(2) 교장으로 정년퇴직한 67세 B는 최근 치매를 진단받았다. 평소 점잖은 편이었지만 최근에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작은 문제로도 사람들 앞에서 큰소리로 욕을 하기도 하고 지나가는 젊은 여성을 희롱하고 갑자기 많은 양의 음식을 먹기도 했다. 특히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의심을 하고 이 문제로 다투던 중에 충동적으로 아내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3) 50세 C는 평소 과량의 음주를 한다. 평소에는 소심한 편이지만 술을 마시면 성격이 달라진다. 술을 마시면 쉽게 욱하고 주변과 다툼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최근에는 운영하던 가게를 폐업하고 난 후에는 음주 횟수가 늘어나 거의 매일 술을 마시고 문제를 일으킨다. 결국에는 술에 만취된 상태에서 옆집 사람을 폭행하고 달아나려고 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일으켰다.   

(4) 30 초반 남성 D는 과거 몇 차례의 범죄를 저질렀었다. 학창 시절부터 다툼이 잦고 한번 화가 나면 조절이 되지 않았다. 작은 문제가 큰 다툼으로 이어져서 합의를 하거나 폭행 전과가 남기기도 했다. 최근에도 사소한 시비가 큰 싸움으로 번졌고 상대방이 크게 다치는 일이 있었다. D는 한번 화가 나면 스스로 조절이 되지 않고 폭력적인 행동을 한 상황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는 들어볼 법한 사례를 가상으로 구성해 보았습니다.

A와 B의 사례는 기분증상(우울증) 또는 치매(인지장애)에 따라 나타난 그릇된 믿음(망상)으로 인하여 범죄를 저지른 경우입니다. C와 D의 경우는 술에 만취한 상태 또는 충동조절이 어려운 흥분상태 등으로 인하여 제대로 사리분별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경우입니다.

 

사진_픽사베이

 

2) 어떻게 법의 잣대를 대어야 할까요?

위의 사례들처럼 정신질환이 있는 또는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범죄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요? 질환이 없는 사람들과 동일하게 엄격한 법의 심판을 받게 하는 것이 마냥 옳은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질환이 의심된다고 약한 처벌을 하면 오히려 맹점을 악용하여 정신질환자인 척 위장을 하거나 심한 질환이 아닌 경우에도 편법으로 양형을 받을까 우려가 되기도 합니다.

 

범죄행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자신 스스로 자발적인 행동'과 '남에게 해를 끼치고자 하는 의도'가 필요하다 합니다. 정신질환에 따른 증상이 매우 극심하여 이에 반응하여 범법 행동을 했다면 이것을 ‘자신 스스로 자발적인 행동’이라고 보거나 ‘남에게 해를 끼치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고 보기에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이에 과거 판례에서는 정신질환(조증, 조울증, 우울증, 망상장애 등) 또는 인지적인 결함(자폐, 정신지체, 치매 등)으로 인하여 범죄성을 이해하거나 법의 요구에 맞게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던 경우에는 면책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일부 양형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한 판단과 판결은 당연히 전적으로 법원의 판사가 합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판사가 필요하다고 요청한다면 범죄를 저질렀을 당시의 환자의 정신 상태를 유추하여 참고자료를 제출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 중요하게 보는 점은 정신질환의 유무, 정신질환이 있다면 심각도, 현실검증력(Reality testing)의 손상정도 등입니다. 현실검증력(relity testing)이라는 단어는 익숙하지 않은 단어인데, 이는 현실과 현실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서 환청을 호소하는 환자가 이것이 실제로 들리는 소리라고 100% 확신하고 있다면 현실검증력이 명백히 손상된 상태입니다. 하지만 나를 부르는 듯한 소리를 듣지만 이것이 실제의 소리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현실 검증력이 완전히 손상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현실검증력이 손상되었다면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어려운 혼란스러운 상태라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학적인 판단을 포함한 환자의 상태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역할은 당연히 판사가 합니다. 판사는 범죄성립 여부, 질환의 범죄행위에 대한 기여도 등을 고려해 판결을 내립니다.

 

위의 사항과 달리 예외로 두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반사회적인 성격에서 나타나는 반복적인 범죄행위나 충동조절의 문제입니다. 대개는 조절력의 상실에 대하여 호소하는데 폭력적인 행동 등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흔합니다. 이에 대하여는 여러 고려사항이 있으나 충동조절의 문제가 반복된다면 처벌을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또한 음주상태에서의 범죄의 경우는 자신이 음주함으로써 범죄를 저지를 수 있음을 충분히 인지하였다면 처벌을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예컨대 스스로 술을 과량 마시고 블랙아웃이 됐습니다. 그렇다면 스스로가 심신미약 상태로 유도를 한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후에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는 처벌을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 환자들의 범죄는 큰 사회문제가 됩니다. 범죄수법이 좋지 못하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죠. 이런 ‘묻지마 범죄’는 많은 사람의 두려움, 공포를 자극하고 비난의 대상이 됩니다. 환자를 대하는 저 역시도 간혹 증상이 심한 환자를 보는 일이 두려울 때도 있습니다. 간혹 조절이 되지 않는 환자를 진료하거나 이상한 사람이 집 근처를 서성이고 있을 때면 혹여나 내 가족에게 나쁜 일을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아마 환자를 접하지 않는 많은 분들은 이러한 감정을 저보다 많이 느낄 것으로 생각합니다. 

범죄에 대하여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처럼 강력한 판단과 처벌이 분명히 필요합니다. 하지만 일벌백계는 사후의 대책입니다. 다른 시각 역시도 분명 필요합니다. 문제를 예방하는 과정도 있어야 합니다. 초기부터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할 수 있고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중한 증상으로 진행을 막을 수 있습니다. 또한 증상이 심한 환자의 경우에는 꼭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인, 제도적, 법리적인 장치 역시 반드시 마련되었으면 합니다. 이를 통하여 조절되지 않는 증상으로 인한 범죄를 줄일 수 있습니다.

 

임진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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