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성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이십대 대학생입니다. 저는 우울증 때문에 약 2년간 심리상담을 받았었고, 현재는 나름 일상을 잘 꾸려 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담사 선생님께도 차마 여쭤 보지 못한 게 있었습니다. 익명을 빌려 이 자리에 조심스럽게 털어놓아 보자면, 저는 실제로 벌어진 잔인한 사고나 범죄에 대해 찾아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런 비극과 그 피해자들을 대하는 태도도 일반적이지 못합니다. 보통 사람은 피해자들에게 안타까움과 동정심을 느끼고 잔혹한 텍스트, 이미지에는 눈을 돌리고 싶어 할 텐데 저는 정반대입니다. 슬픈 마음은 도통 들지 않고 대신 잔혹한 스토리에 재미를 느끼고 흥분돼요.

범죄자의 행위에 대리 만족을 느끼는 것을 넘어서서 가끔은 제 곁을 스쳐가는 무력한 존재(어린아이, 동물)에게 직접 폭력을 행사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그리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도덕적 비난과 법적 처벌이 없다면 호기심 해소를 위해 해봤을 것 같기도 합니다(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행동을 한 적은 없고, 앞으로도 절대 없을 겁니다).

피해자들이 엄연히 존재하는 일들인데, 그 고통을 순전히 재미, 흥밋거리로 소모하는 일에 죄책감을 느끼지 못해서 죄책감이 듭니다. 정말 제가 정상적인 인간이 맞는지 의문이 들기도 하고요.

제 이런 이상한 욕구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위에 고백한 것만 보자면 저는 이상한 사람이고 문제 있어 보이지만, 그건 제 극히 일부분일 뿐 대부분의 때에 저는 귀여운 동물을 보고 사랑스러움을 느끼고, 슬픈 영화를 보면 눈물을 흘리는 그런 평범한 사람이라서 더 모르겠습니다.

제 나름대로 생각해보자면, 폭력적인 무언가에 열광하는 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혹은 저의 열등감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고등학교 시절 종종 총을 들고 학교를 돌면서 사람들을 쏴 죽이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런 건 입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상상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저는 육체적으로 열등하다는 컴플렉스가 심한 편인데, 내가 누군가를 죽이면 내가 그 사람보다 우월한 거니까(정말로 그렇다는 게 아니라 제가 생각해 본 제 심리를 서술한 겁니다) 이입해서 대리 만족을 느끼며 컴플렉스를 해소하고 싶었을 수도 있을 것 같고요.

되짚어 보면 상당히 어렸을 때부터(초등학교 저학년) 잔인함에 끌렸었기도 하고요.제 이런 면에 대해 전문가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하고, 정신건강 증진을 위해 힘쓰시는 분들께 항상 고맙습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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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사연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폭력적인 콘텐츠(실제 사건, 영상 자극 등)에 대해 열광하고, 깊은 흥미를 보이는 스스로가 쉽게 납득이 안 되어 글을 남겨 주셨네요. 나름 원인을 추론해 보기도 하신 걸 보면 자신을 이해하려고 다각도로 많이 노력하신 듯합니다. 여기서는 좀 더 사연자님의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사연자님이 제시한 몇 가지 가설은 모두 가능성이 있습니다. 누구나 열등감을 적잖이 경험하는 때가 있는데요. 그럴 때 열등감을 ‘보상’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활용합니다. 사연자님 말씀대로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 자신이 ‘강하다’는 감각을 추구하기도 하고요. 힘의 우위를 점하는 일은 ‘쾌감’을 줄 수 있습니다. 자신이 전지전능하다는 체험은 유아기 때 모든 사람이 겪는 경험인데요. 사회화가 이루어지게 되면서 전능함을 포기해야 하는 현실을 맞닥뜨리며 좌절을 체험합니다. 좌절과 무기력감은 인간이 현실적인 자기상과 타인상을 갖추기 위해 어느 정도 겪어야 하는 감정입니다. 성장하는 데 필수적인 체험인 것이죠. 그렇지만 성장통은 힘든 경험이죠. 적절한 좌절을 넘어서는 고통은, 개인에게 흔적을 남깁니다.

고통을 일부러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살아가는 데는 우월한 힘의 감각, 내가 강하다는 확신의 느낌이 필요합니다. 현실 세계에서 성취 경험을 쌓아 가며 이러한 느낌을 축적하면 자신감이 됩니다. 그런데 실제로 성취할 기회를 얻지 못하면, 계속 실패가 반복되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많은 이들이 환상의 세계에서 이를 충족시키고자 합니다. 특히 게임 속에서는 현실과는 다른 자아로서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지요. 이외에도 영화나 소설, 실제 사건의 주인공에게 이입하며 대리만족하기도 합니다. 즉, 특정 대상을 파괴하며 힘을 확인하려는 열망은 어린 시절 전능했던 감각을 찾고 싶은 무의식적인 욕구에서 비롯될 수 있습니다. 

사연자님이 제시한 ‘열등감’ 가설 이외에 ‘스트레스 해소’도 이와 유사한 맥락입니다. 현실의 스트레스를 푸는 데 있어서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죠. 상상의 내용이 단지 잔혹하고 폭력적인 것인데요. 내용보다는 ‘상상을 발휘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 봅시다.

왜 인간은 상상을 할까요? 단순하게는 그것이 즐거움, 즉 쾌락을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현실을 잘 살기 위해서는 내적인 공상 세계를 잘 활용해야 합니다. 공상, 즉 Fantasy는 현실은 아니지만 우리의 욕망, 소망, 욕구를 충족할 모든 상상이 가능한 세계입니다. 아예 공상이 부재한다면 매우 메마르고 권태로운 삶이 될 테지만, 공상 세계는 어느정도 삶의 활력소가 되어 줍니다. 무엇이든 떠올릴 자유가 있고, 무엇이든 이루어지기에 ‘쾌락’을 제공하지요. 물론 ‘균형’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살아내는 현실에 발은 붙이면서 때로 가끔 공상하는 일은 건강한 모습입니다. 긴장을 풀 배출구가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일상 기능은 무너져 있는 채, 공상 세계에만 몰두되어 있으면 점차 손해가 커집니다. 

 

그래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판별하는 기준은 ‘일상생활’이 기준이 됩니다. 학교든 직장이든 사회적 역할을 충실히 하고, 의식주 기본 생활을 잘 영위하고 대인관계도 무난하면 폭력적인 공상은 괜찮습니다. 공상을 현실화할 가능성이 제로라면요. 즉, 자아의 힘이 튼튼하기에 지나친 공상에 빠져 있다가도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고, 충동을 관찰하고 절제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지만 일상생활이 건강하지 못한 상태라면 공상에 지나치게 의존할 가능성이 큽니다. 현실이 좌절스럽고 비참할수록 직면하는 고통보다는 달콤한 공상 세계로 회피하고 싶어 하지요. 그렇게 공상 세계에서만 살 때, 점차 인간관계, 사회생활도 고립되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고요. 그러한 상황에서 떠올리는 부정적인 상상, 폭력적이고 잔인한 공상들은 때로 현실보다 더욱 생생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게 됩니다. 만일 치료 장면에서 폭력적인 환상을 주제로 대화하게 된다면, 면밀히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것입니다.

사연자님은 다행히도 현실을 건강하게 잘 관리하면서 지내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을 비정상-정상으로 분류하는 것은 현재 별로 의미는 없습니다. 그저 사연자님은 여러 가지 다양한 생각과 감정, 욕구를 지닌 사람일 뿐입니다. 자신에게 불쑥 느껴지는 공격성에 대해서는 관련된 개념들을 공부하면서 호기심을 해소해 보시길 권합니다. 

 

예를 들면, 유명한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인간이 가지고 태어나는 본능적인 욕구를 ‘성 욕동(에로스)’과 ‘죽음 욕동(타나토스)’에서 나온다는 전제를 하고 있는데요, 이후 학자들에 의해 많이 비판받고 다양한 이론들이 나오긴 했습니다. 인간의 행동을 두 가지로만 분류할 수는 없기 때문이죠.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대목이 있는데, 사람에게는 타고난 공격성이 내재되어 있지만 이를 사회 규범화된 죄책감으로 억누르고 있다는 것이죠. 즉, 타고난 본능이 인류에게 없다면 매일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전쟁이 끊이지 않는 인류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냐는 입장입니다.

이 외에도 공격성과 관련되어서는 사디즘과 마조히즘의 개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용어가 매체에 많이 언급되어 친숙하실 텐데요. 사디즘은 능동적인 폭력, 마조히즘은 수동적인 폭력인데요, 인간을 향한 폭력으로써 쾌락을 경험한다는 개념입니다. 사연자님이 사디즘적인 성향이 있으신지, 인간으로서 타고난 파괴적 성향을 인지한 것인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출구인지, 전능감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인 것인지 가설은 참 다양하게 세울 수 있겠는데요, 정답은 물론 없습니다.

 

당장 답을 몰라도 괜찮습니다. 앞으로 사연자님에겐 필요한 것은 시간과 공부가 아닐까 합니다. 자신을 더 잘 알기 위해 쌓아야 하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합니다. 내면세계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공부도 필요합니다. 여러 학자의 이론과 입장, 다양한 저서들을 탐독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사연자님의 혼란을 정리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당산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성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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