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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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잼 시기’라는 말을 들어 보신 적 있나요? 요즘 SNS를 비롯한 온라인상에서 자주 사용되는 표현으로, 무엇을 해도 재미나 만족이 없고 인생이 재미없다고 느껴지는 시기를 일컫는 말입니다. ‘노잼 시기’라는 단어로 검색해 보면 다양한 이유로 인생의 재미를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사연, 그리고 이런 노잼 시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에 관한 글들이 넘쳐납니다. 

이렇게 ‘노잼 시기’라는 말이 생겨나고 유행처럼 쓰이는 이면에는 인생의 즐거움이나 목적,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전보다 훨씬 풍요롭고, 디지털 기기와 기술의 발전으로 무엇이든 빠르게 처리할 수 있으며, 즐길 거리도 많아진 이 시대에 우리는 왜 ‘노잼 시기’를 경험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이 노잼 시기를 어떻게 해서든 빨리 벗어나려고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노잼을 정신의학적으로 풀어 보면 ‘지루함(boredom)’이라는 말로 쓸 수 있습니다. 지루함은 현재 하는 일이나 처해 있는 상황에서 충분한 관여(engagement)나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다른 자극이나 상황을 찾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지루함을 느낄 때 우리 뇌에서는 휴식 모드인 내재 상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에 해당하는 영역들이 활성화됩니다. 이때 뇌는 자전적 기억, 미래에 대한 전망, 마음 이론, 도덕적 결정과 관련된 생각들을 처리합니다. 예를 들면, 오늘 먹은 점심 메뉴라든지 내일 무엇을 할지, 내가 지금 하는 일에 대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와 같이 외부 상황에 관한 것이 아닌 내재적인 상태에 대한 정보를 다루는 것입니다. 이 영역의 활성화를 통해 우리는 자신에 대해 돌아보고 상대방의 마음에 공감하고 도덕적인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외부에서 중요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인지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전방 뇌섬엽(anterior insular cortex)은 비활성화되면서 내부 자극에 더 집중하도록 합니다. 

 

내재 상태 네트워크 영역의 활성화는 지루함을 느낄 때 더욱 비도덕적 방식으로 행동하게 된다는 결과를 보여준 미국 플로리다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에린 웨스트게이트(Erin Westgate)와 동료들의 연구 결과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이 실험에서 지루한 영상을 본 참가자들은 그렇지 않은 참가자들에 비해 더 가학적이거나 상대방에게 해가 되는 선택을 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와 유사하게 선행연구들은 지루함이 따돌림이나 폭력과 같은 부정적인 행동의 원인이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지루함으로부터 오는 부정적 감정을 가학적 행동을 통해 해소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지루함을 부정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많습니다. 지루함은 불편한 것이며, 최대한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심할 때는 지루함을 잊기 위해 자해나 약물 사용 같은 극단적인 행동들을 할 수도 있기에 최대한 지루함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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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루함이 반드시 부정적인가에 대해서는 반론이 존재합니다. 지루함으로 인해 새로운 자극을 찾고 호기심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행연구에서는 지루한 상태에서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훨씬 더 창의적인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또, 지루한 상태에서 활성화되는 뇌의 내재 상태 네트워크는 과거, 현재, 미래의 기억을 통합하면서 뇌의 파수꾼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계도 너무 오랫동안 쉬지 않고 사용하면 과열되듯이 우리의 몸과 마음, 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적절한 휴식 없이 계속 달리기만 하면 언젠가는 과부하가 걸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적절한 지루함은 새로이 나아갈 동력을 주는 쉼과 충전, 창의력을 위한 토양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루함이 만성적으로 이어져 무기력이나 아무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상태로 이어진다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루함을 보다 생산적인 방향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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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책이나 명상하기

지루하다고 느껴질 때 산책이나 명상을 통해 현재 상황에 충분히 몰입하고 내면을 깊이 탐색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시기를 권합니다. 이런 활동을 통해 생각이 확장되고 자유롭고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하며 상자 안에 갇혀 있던 사고가 창의적으로 발현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때 지루함을 해소하기 위해 단순히 스마트폰을 보거나 휘발성이 강한 자극들로 대체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2.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기

만성적인 지루함은 삶의 의미를 희석시키며, 어떤 것도 즐거움이나 의미를 줄 수 없다고 느껴지게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일들을 시작하기가 망설여질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막상 시도해 보면 예상하지 못했던 기쁨이나 행복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스포츠나 공연 관람같이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3. 좋은 사람들과 관계 맺기 

인생에서 느끼는 행복과 의미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올 때가 많습니다. 마음을 나누고 의지할 수 있는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다시금 삶의 의미와 소소한 기쁨들을 찾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풍성한 관계에서 오는 만족감을 통해 공허한 일상이 채워지고 다시 빛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루함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독이 될 수도, 득이 될 수도 있는 양날의 검과 같습니다. 지루함이 바쁜 일상에서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나무 그늘이 될지, 혹은 여름날 모든 것을 쓸어 버리는 태풍 같은 재앙이 될지는 우리의 생각과 태도, 대처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혹시 지금 인생의 노잼 시기를 겪고 있으시다면, 이 시간이 영원하리라 좌절하기보다는 내면을 깊이 탐색하고 충분한 쉼을 통해 창의성으로 나아가는 원동력 삼으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원장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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