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규홍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정신과 상담을 꾸준하게 받으며 약도 먹고 있는데요… 의사 선생님에 대해 개인적인 관심이 생기는 것 같아 고민입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정신과 의사와 환자 사이에 유대 관계가 생기는 것에 대한 전문용어도 있더라고요. 단순히 제 마음을 잘 알아주는 사람이 생겨서 정서적으로 의지를 하게 된 건지, 아니면 이성에 대한 감정인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감정에 대해 선생님에게 상담을 하는 것이 맞을까요? 아니면 동성 선생님이 계신 병원으로 바꾸는 게 좋을까요? 여기 계신 선생님들은 답을 아실 것 같아 글 올립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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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올려주신 고민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현재 정신과 상담을 해 주시는 선생님께 개인적인 관심이 생기면서 이것이 이성에 대한 감정인지, 아니면 의사와 환자 사이에 생기는 유대감이나 의존적인 감정 등인지 헷갈리시는 것 같습니다.

정신과 상담이나 심리치료 장면에서는 흔히 환자 혹은 내담자와 치료자 간에 라포(rapport)가 형성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상담자와 내담자가 상호 신뢰와 정서적 친화를 이루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으로, 상담이나 정신과적 치료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현재 상담해 주시는 선생님에 대해 우호적인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라포가 잘 형성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는 치료의 효과적인 측면에서도 좋은 신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담자에게 있어서 상담자가 믿을 만한 대상이며, 상담 장면이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 내담자는 솔직한 자기 노출과 감정 표현이 가능해집니다. 이러한 상담 관계 속에서 상담자가 내담자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공감해 주고, 반영해 줌으로써 내담자는 상담자로부터 존중받고 수용받으며 또한 지지받는 건강한 관계를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듯 신뢰할 만하고 따뜻한 상호작용 경험이 내담자의 내면에 따뜻하고 치료적인 기제로서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또한 이러한 상담 과정을 통해 상담자는 내담자가 자신의 문제를 명료화하도록 촉진하며 돕게 됩니다.

 

그런데 라포가 형성되면서 때로 내담자의 감정 반응으로 상담자에게 전이 반응이 나타나는데, 전이(transference)란, 내담자가 과거에, 특히 어린 시절 자신에게 중요했던 인물(흔히 부모나 가족 혹은 연인 등이며 그 밖에 개인에 따라 누구든)에 대한 감정을 상담자에게 투사(projection)하는 것을 일컫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내담자는 이러한 자신의 감정 반응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편입니다. 이처럼 내담자는 과거 자신에게 중요했던 인물, 주로 부모와의 관계에서 경험했던 감정을 상담자에게 투사해 현재까지도 심리적 어려움의 원인이 되는 갈등을 정서적으로 재현하거나 재경험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러한 전이 현상이 발견되었을 때 상담자는 내담자와 함께 이를 심도 있게 다루고 분석하여 내담자의 무의식에 존재하는 갈등의 원인을 탐색하고 해소함으로써 이를 상담과 치료에 있어서 키포인트로 삼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지금 사연자님께서 의사 분에 대해 느끼시는 감정에 대해 상담 시 솔직하게 이야기해 보고 이를 상담 주제로 다루어 본다면, 사연자님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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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정신과적 치료나 상담 또한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만남이기 때문에 상담자나 환자 간에 이성적 감정이나 절대로 생기지 않는다고 단정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상담자와 내담자 둘 중 한 명이라도 치료적 관계 이상의 분명한 이성적 감정이 생기거나 감정이 더욱 발전할 여지가 확인된다면, 이는 더 이상 치료적 관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상담 관계는 다른 모든 일상에서의 관계와 같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상담자와 내담자 간의 라포와 관계 형성, 전이 분석 등을 통해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나 감정은 역동성을 띠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 이러한 고민 외에 지금 진료를 받고 있는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특별히 불편감이나 불만족한 것이 아니라면, 섣불리 병원을 바꾸기보다 현재 고민되는 부분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이 주제에 대해 면밀히 다루어 보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그러면 사연자님께서 의사 선생님께 느끼시는 지금의 감정이 전자이든 후자이든지 간에 최소한 자신의 감정을 더 잘 이해하고 탐색해 보는 좋은 기회로 남으리라 생각됩니다. 

현재 사연자님께서 느끼시는 혼란스러운 감정이 잘 정리되고, 지금 받고 계신 상담도 꾸준히 받으셔서 한층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실 수 있기를 응원하겠습니다.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규홍 원장

 

이규홍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의과전문대학원 졸업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수료
METTAA CBT / Schema Therapy Exp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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