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쇼핑은 현대인들에게 하나의 취미생활이 된 지 오래입니다. 그만큼 기업들은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죠. 쇼핑 자체는 인간의 아주 오래된 활동이지만, 쾌락을 위한 쇼핑, 즉 필요한 것을 구매하는 소비의 개념이 아닌 쾌락과 욕구 충족을 위한 쇼핑 활동은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거대 부를 축적한 세력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대두되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시장과 기업들은 소비자의 욕망에 주목하고, 그 욕망을 채울 수 있는 반짝이는 물건들을 내놓기 위한 치열한 경쟁에 돌입합니다. 그런데 기업들은 판매할 물건에만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사람들이 쇼핑하는 공간에도 주목하면서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고 쇼핑을 촉진하기 위한 전략들을 펼쳐 나갑니다.

대다수의 쇼핑몰들은 기본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건물의 양 끝에는 주요 매장들을 늘어놓고, 그 사이에 소규모 매장들을 배치하는 것입니다. 푸드 코트에는 쇼핑객들이 잠시 요기를 하거나 쉬어 갈 수 있는 음식 코너 또는 카페를 마련해 둡니다. 물론, 이 푸드 코트 공간은 쇼핑객들이 오랜 시간 머무를 만큼 안락하게 설계되어 있지 않습니다. 간편하게 식사를 마치고 다시 쇼핑에 시간을 할애하도록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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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의 쇼핑몰은 규모도 그리 크지 않고, 쇼핑객들의 편의를 위해 구조가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건축된 쇼핑몰들은 이전에 비해 규모가 더욱 거대해졌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 한참 걸릴 만큼 구조가 복잡해졌습니다. 쇼핑몰의 규모와 구조 등 설계가 이렇듯 변화한 것은 비단 우연일까요? 

쇼핑 설계자들은 쇼핑객들을 쇼핑몰에 좀 더 오랫동안 머물도록 설계해 달라는 건축주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고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많은 쇼핑객들이 쇼핑에 나서기 전에 미리 필요한 물품의 품목을 어느 정도 머릿속에 떠올려 봅니다. 그런데 막상 쇼핑몰 입구에 들어서면 구매 계획에 없던 물건들을 충동적으로 구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충동구매에 관한 연구에서 사람들은 긍정적인 정서를 느낄 때, 충동적으로 물건을 구매할 가능성이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냉난방 시설이 완비되어 있고,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까지 가능한 쇼핑몰은 시즌이나 달마다 기획된 테마에 맞추어 옷을 갈아입습니다. 기분을 고양시키는 음악 사운드가 사방에 울려 퍼지고, 피로를 녹일 듯한 아로마 향기가 진동합니다. 쇼핑은 물론이고 다양한 먹거리와 즐길 거리들이 넘쳐 나도록 공간을 조성하고, 그곳에서 소비자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하도록 하는 전략인 셈입니다.

이렇듯 쇼핑몰은 소비자들이 쇼핑몰에 오래도록 머물면서 긍정적인 정서를 느낄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합니다. 이처럼 거대 복합 쇼핑몰의 출현은 쇼핑몰이 단순히 물건을 사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복합문화 공간의 탄생임을 실감하게 합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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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와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실험 과제에서 피험자에게 작지만 즉각적인 보상과 나중에 제공되는 보상 중 선택할 기회를 줬을 때, 충동성과 관련된 병리가 있는 피험자는 즉각적인 보상을 선택하는 성향이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이들의 뇌에서는 중독 행동과 연관된 영역으로 알려진 편도체와 복측선조체, 안와전두피질이 활성화되었는데요, 많은 쇼핑객들이 쇼핑몰에 머무는 동안 이처럼 중독에 관여하는 뇌 구조의 연결망에서 의사 결정을 주관하게 된다는 점이 정말 놀랍습니다. 쇼핑몰에 숨겨진 다양한 전략과 조작된 환경들은 소비자의 신경망을 자극해 충동구매를 할 가능성을 부채질하는 것이지요.

최근 빠르게 성장하는 스마트폰에 내장된 위치 기반 기술은 쇼핑객의 움직임을 추적해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과 기호를 더 과학적으로 분석하면서 소비자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습니다. 애플사는 아이폰 이용자가 매장에 들어설 때 방문 정보와 구매 이력의 상관관계를 파악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소비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러한 정보들을 기업들에 넘겨주는 셈입니다. 

 

어쩌면 대형 쇼핑몰은 인간이 잠시 이성의 끈을 헐겁게 한 사이, 욕망을 좇아 충동적으로 이끌려 간 어른들의 놀이터가 되어 버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이성의 끈을 느슨하게 푸는 사이, 기업들은 과학적 데이터와 기술적 발전에 힘입어 언제든지 우리의 욕망의 틈을 비집고 들어올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기업들이 소비자의 욕망을 하나둘 채워 주는 동안 또 다른 욕망이 슬며시 고개를 들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새 가벼워진 지갑과 불어난 카드 명세서가 우리를 기다릴 테지요.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우경수 원장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대구가톨릭대병원 의과대학 학사 , 석사
대구가톨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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