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최강록 원장]

 

사연)

저는 20대 초중반입니다. 비정규직이고 현재 비정규직 아르바이트 같은 것으로 근근히 벌어먹고 살고 있습니다. 저희 집은 별로 사정이 좋은 편이 아닙니다. 어머니와 저는 생활패턴이 잘 맞지 않아서 예전부터 갈등이 있었는데, 몇 년 동안 가장 심각한 갈등은 저의 충동구매와 저장강박증 문제입니다.

언제부터였을까요. 사재기를 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핸드크림, 바디워시, 싸구려 화장품 등 그렇게 값나가진 않아도 생활에서 자주 쓰게 되는 그런 물건들입니다. 반면 저희 어머니는 아끼는 경향이 강하십니다. 돈을 특히 아끼십니다. 저보다 더 가난하게 살아보신 분이기도 했고 실질적인 가장이니 돈이 아까운건 이해합니다. 돈만 보이면 일단 저축부터 하라고 하고 제 월급의 9할 이상도 어머니께 드리고 있습니다.

저는 자주 쓰는 물건들이 언제나 집안에 일정량 있어야 정신적으로 안정이 되는 편입니다. 월급의 1할이 여윳돈으로 생기자 다시 물건들을 구매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물건들이 쌓였습니다. 예전보다 적은 양이었지만 어머니가 보시면 노발대발하시기 때문에 또 숨기고, 그러다 어머니에게 들키고, 화내고, 싸우고, 서로 폭발하고, 늘 어머니 원하는대로 물건을 버리든 남에게 갖다주든 하는 식으로 처리하는 그런 일상의 반복이었습니다.

출처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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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마트에서 또 바디워시랑 치약을 할인세일로 싼 값에 팔길래 바디워시 두 개, 치약 하나 사서 몇천원 정도 들었습니다. 언젠가 또 쓸 생각에 저는 그걸 집안 어딘가에 숨겨뒀는데 하루만에 어머니에게 들키고 또 대판 싸웠습니다.

제 돈으로 사는거고, 제가 벌어서 사고, 제가 쓰는거고, 어머니도 생활패턴상 제가 그걸 머잖아 다 쓸거라는걸 빤히 아는데도 싫답니다. 가계사정이 지금 힘들어 미치겠고 너나 나나 돈 못 버는거 뻔히 알고 직장도 간당간당한 와중인데 인생 재미없게 너까지 왜이렇게 발목만 잡냐고 화를 내십니다. 나가는게 해결책이지만 집에 돈이 없어 독립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금조차 없고 추가조달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강박증은 차라리 모르는게 고치기 더 쉽다 했던가요. 저장강박에 충동구매 중독이라는걸 아는 상태에서도 '내 돈인데 자꾸 왜 그렇게 남이 간섭하는걸 들어야하냐' 하는 욱하는 마음이 더 커서 고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꾸 어머니가 제 생활패턴에 간섭하려 들고 가장 중요한 축이자 일생의 얼마 없는 낙을 건드리기 때문에 더 짜증나는 것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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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도 온라인도 친구가 별로 없고 인간관계 교류도 계속 상처입는게 잦고 단발성인게 너무 잦아서 포기한 저에겐 자주 쓰는 물건들을 쟁여놓는게 불안감을 해소할 얼마 안 되는 방법이긴 합니다. 그러나 집안사정도 가족도 그걸 안 되게 막습니다. 모두 절 이상하게 봅니다. 왜 그걸 그렇게 고치질 못하냐, 너도 지금 그러면 안 되는 상황인걸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있지 않냐 하고요. 독립해도 이대로 쓰는버릇 하다간 분명 제대로 저축 안 될게 뻔하긴 하죠.

남들에게 제가 이해받을 수 없는 상태고 자기합리화밖에 안 되는 상태이기에 더욱 제 자신이 부끄럽고 한심하게 느껴지면서도 이런 나라도 온전히 인정받고 계속 이대로 살고 싶다고 자기합리화가 튀어나오는걸 억누르기 힘들어 고민이 많습니다.

 

답변)

안녕하세요,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최강록입니다. 적어주신 고민글 잘 읽어보았습니다. 그동안 소비습관으로 인해 어머니와 겪었던 갈등과 고민이 커져 스트레스가 많으셨을 듯합니다. 충동구매와 저장강박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셨는데요, 사연자님의 상황에 대해 정리하고, 습관을 개선하려면 어떤 행동이 효과적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저장강박증(compulsive hoarding syndrome)이 사연자님에게 해당되는지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족이 이상하게 바라보고 문제라고 비난하더라도, 실제 치료가 필요한 수준의 정신질환이라고 판단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현재 사연자님은 직장도 다니고 있고, 집이 물건으로 뒤덮여 생활이 곤란하거나 위생상 문제가 생기진 않았습니다. 저장강박증은 물건을 실제 사용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아예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일단 저장해 두는 강박장애의 일환입니다. 물건이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거의 정체감의 일부로 자리잡기 때문에 물건을 버리는 행위는 굉장한 불안을 유발합니다. 한편 사연자님은 어머님이 강하게 말하시면 마지못해 물건을 버릴 수는 있습니다. 끊임없이 저장해야만 하는 강박 증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건에 대한 집착이 심하여 일상을 붕괴하는 수준의 심각성은 없습니다.

출처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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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여러 가지 증상명과 정신질환을 참고할 수는 있겠지만, 결론을 내리진 않아야 합니다. 실제 전문가와 충분한 면담을 거쳐야 합니다. 증상에 자신을 끼워 맞추다 보면 오히려 객관적인 상황 판단을 어렵게 만들고 지나치게 부정적인 자아상을 갖게 될 수 있습니다. 사연자님도 이미 스스로를 한심하고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이 강한 상태인데요. 자신을 대하는 적대적인 태도는 상황 해결에 전혀 도움되지 않다는 점을 기억하세요.

사연자님은 조만간 쓸 물건을 미리 사는 심리를 나름대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자주 받게 되어,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를 다루는 방식 중에 하나로 충동구매를 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그러한 이유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소비 행동은 생각보다 굉장히 무의식적인 과정입니다. 애초에 살 계획이나 의지가 없어도 상품을 보고 갑자기 욕망이 생기고 충동적으로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감을 자극하는 마케팅이 무의식 속에 자리잡혀서 일단 물건을 사기 위해 ‘이 물건이 필요하다’는 합리화를 하게 됩니다. 사실 소비행동은 수많은 마케팅에 노출된 뇌가 내리는 무의식적인 결정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개인 의지로 쇼핑 습관을 완전히 통제하기란 쉽지 않지요.

현재 충동구매를 하는 행동이 정말 문제가 되는 수준인지는 ‘과소비 지수’를 생각해야 합니다. 어머니는 지나치게 근검절약이 몸에 밴 분이고, 가장이다보니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대한 불안이 매우 강하신 분입니다. 최근에는 직장 내 지위도 비정규직으로 변동되어 스트레스가 많이 심하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겪는 부정적인 감정을 조절하기 위한 전략으로서 사연자님의 소비 습관을 통제하는 패턴이 더욱 강하게 생긴 것입니다.

사연자님을 독립된 성인으로 보기보단 끊임없이 관여하고, 감정적으로 비난하는 모습은 어머니가 사연자님과 지나치게 밀착된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융합’된 가족관계는 여러 가지 역기능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자녀가 독립적인 모습, 통제되지 않는 모습을 드러낼 때 더 큰 제재를 가합니다. 사실 사연자님이 중간중간 느꼈던 분노와 짜증은 충분히 느낄만한 타당한 감정입니다. 왜냐하면 사연자님의 사적인 경계가 침해되었기 때문입니다. 월급의 90%를 어머님께 드리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요. 그나마 사연자님이 10%의 여웃돈으로 쇼핑하는 것은 충동적으로 무엇을 사든 존중해야 하는 사연자님 영역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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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쓸데없는 과소비라고 비난하시지만, 정말 가계에 부담되는 과소비는 아닙니다. 금융감독원에서 발표한 ‘과소비 지수 계산 방법’이 있습니다. 월 평균 수입에서 저축 금액을 빼십시오. 그 남은 금액을 월평균 수입으로 나누세요. 예를 들어 100만원이 수입이면, 90%인 80만원을 저축하고 남은 금액은 20만원입니다. 20만원으로 월평균 수입 100만원을 나누면 과소비지수가 0.2가 나옵니다. 지수가 0.5이하면 근검 절약형, 0.6이면 적정 소비 상태, 0.7이면 과소비 상태, 1이면 재정적 파탄상태라고 합니다.

사연자님은 과소비 지수가 매우 낮지요. 10%의 여윳돈을 가지고 아무거나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소비하면서 즐거움을 느끼거나 불안을 해소하는 행동은 ‘정해놓은 예산 내’에서 이루어질 때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다만 사연자님의 소비성향을 좀 더 제대로 파악할 필요는 있습니다. 미국정신의학회에서 발표한 쇼핑중독 체크리스트 250문항중 10문항을 가져왔는데요. 자신의 소비성향 체크해 볼 수 있습니다.

 

1. 쇼핑 습관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한다.
2. 쇼핑할 때 죄책감이 든다.
3. 쇼핑할 때 드는 돈과 시간이 점점 늘어나지만 별다른 느낌이 없다.
4. 가족이 보지 못하도록 쇼핑한 물건들을 숨기곤 한다.
5. 쇼핑은 긴장이나 불안을 풀어주는 취미생활이다.
6. 물건이 필요해서라기보다는 사는 행위 자체를 더 즐긴다.
7. 쇼핑한 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 집안에 가득하다.
8. 주위에 돈 문제를 일으킬 정도로 쇼핑을 많이 한다.
9. 얼마나 쇼핑을 많이 하는지 알면 다른 사람이 기절할 정도다.
10. 물건을 사면 기분이 좋아진다.

 

5,6,10은 기분파, 2,3,4,7,9,는 과다 쇼핑, 1,8은 쇼핑 중독이라고 합니다. 사연자님은 기분을 조절해주는 기능 때문에 소비하는 성향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소비 습관을 조금 더 긍정적으로 개선하려면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를 만들면 됩니다. 사연자님이 자신만의 기분 전환 리스트를 만들기를 추천합니다. 즉, 쇼핑이 주는 심리적인 보상이 있기 때문에 행동이 반복되고 습관이 된 것입니다. 쇼핑 이외에도 다른 활동으로 심리적인 보상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공허함, 불안, 우울, 외로움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다룰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이 있습니다. 마음챙김 명상, 운동, 산책, 요리, 그림 그리기, 목욕 등 아주 많습니다. 자기만의 기분 전환 리스트를 10가지 이상 적어서 보이는 곳에 붙여두세요. 이러한 활동의 목적은 부정적인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기분을 환기하면 거리를 두고 관찰할 수 있는 심리적 여유가 생깁니다.

그리고 아직 당장 사지 않아도 되는 물건을 사는 행동은 두 가지 새로운 습관으로 대체하는 연습이 필요한데요. 첫 번째는 허전한 마음에 구경하고 지출하게 되는 소비 연결고리를 제거해야 합니다. 신용카드를 가져가지 않고 상점에 가서 구경만 하고 지출로 이어지지 않는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사고 싶은 충동이 올라오지만 지출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고, 당장의 보상은 지연되겠지요. 집에 돌아와서 기분전환 리스트에 적힌 활동으로 다른 보상을 주시면 됩니다. 두 번째는 계획적인 소비 경험의 반복입니다. 핸드크림을 당장 사고 싶었지만 카드가 없어서 잘 참고 넘겼다고 합시다. 핸드크림이 떨어질 시기를 추정합니다. 10월 1일이면 다 쓸 것 같으면 그날을 핸드크림 사는 날로 지정하세요. 어머니께도 필요한 소비 계획임을 알리고 미리 날짜를 통보하세요. 그 날짜에 산 물건에 대해 절대 평가하거나 간섭하지 않도록 요구하세요. 브랜드도 검색하고 금액대도 정해서 매일 행복하게 카운트합니다. 그날만큼은 당당하고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날인 겁니다. 이러한 계획적 소비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어머니도 사연자님에 대해 갖는 고정관념에 변화가 차츰 생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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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어머니와의 관계를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경제적 독립과 심리적 독립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끊임없이 간섭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어머니와의 갈등이 너무 스트레스가 되면 겉으로는 어머니가 원하는 대로 맞추고 사는 선택을 해야겠지요. 어머니께 맞춰드리고 사연자님만의 작은 금고를 구해 그곳에 물품을 보관해서라도 가족이 침범할 수 없는 공간을 만드세요. 만일 갈등을 감수하더라도 사연자님의 소비패턴을 존중받고 싶으면 계속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불안이 높고 자녀와 경계가 없는 가족과는 소통이 참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연자님이 건강한 성인으로 독립하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갈등입니다. 물건 안 사는 습관보다도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잘 다루는 습관부터 구축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입니다. 때가 되면 어머니의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건강한 경계를 세울 수 있을 겁니다. 사연자님의 독립을 열렬히 응원하겠습니다.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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