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도시’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당신은 어떤 것들이 떠오르는가? 꽉 막힌 도로, 무표정한 얼굴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발 디딜 틈 없는 지하철, 밤새 꺼지지 않는 네온사인, 희뿌연 하늘, 밤낮으로 쿵쾅대는 층간 소음… 같은 것들이 연상되지 않는가? 모두들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일까? 빌딩 숲 사이를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휩쓸리듯 걷다 보면 문득, 이곳이 어디인지,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멍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는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켠 다음 다시 초점 없는 눈으로 앞서 걷는 사람의 뒤통수를 좇으며 터덜터덜 걷곤 한다.

사람들, 건물들, 교통수단은 물론이고 산업 분야까지 도시에는 모든 것이 과밀되어 있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배움을 위해, 일자리를 찾아서, 꿈을 좇아서 자꾸만 도시로 밀려들었다. 그렇게 몰려든 사람들 덕에 도시는 더욱 거대해졌지만, 뜨겁게 달궈진 압력솥처럼 항시 과열되어 버렸다.

과열된 도시의 시간은 쉼 없이 빠르게 흘러간다. 도시의 공간에서는 나와 타자 사이의 거리에도 여유가 없다. 늘 부딪치지 않게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버스는 급하게 떠나 버린다. 결코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식당에 가도, 쇼핑몰에 가도 북적이는 사람들에 둘러싸이고, 은행 업무를 보거나 한 끼 식사라도 해결하려면 번호표를 뽑고 기다려야 한다. 도시는 항상 분주하고 수선스럽다. 그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나의 신경은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처럼 늘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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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이유는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불안과 관련된 정신장애는 시골에 비해 도시에서 더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불안장애, 임상 우울증, 조현병의 진단율도 도시가 시골보다 더 높게 나타난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하이델베르크대학교의 안드레아스 메이어린드버그Andreas Meyer-Lindenberg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도시화가 뇌 활동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를 통해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¹ 뇌 영상 실험에서 참가자들에게 뇌 활동을 시각적으로 보여 주면서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게 하고, 참가자의 수학 과제 수행이 기대에 못 미친다고 말해서 스트레스를 유발했다. 땀샘 활동을 측정한 결과, 참가자들에게는 높은 스트레스 각성 상태가 나타났다. 

그런데 흥미로운 결과는, 실험 과정에서 뇌 활동 양상이 참가자들의 주거 환경과 거주 환경에 따라 달랐다는 점이다.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소규모 지역에 사는 사람들보다 편도체 활성화 수준이 높았다. 또 대도시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현재의 주거지와 상관없이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보다 대상피질에 더 강하게 반응했다. 편도체와 대상피질은 모두 우리가 정서 사건, 그중 위협적인 사건에 반응하는 신경회로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이 연구 결과는 대도시에서 성장하거나 거주하는 사람들이 시골에서 사는 사람들에 비해 불안을 촉발하는 스트레스 요인에 뇌가 더 강하게 반응함을 시사한다.  

도시에서 정신장애의 발병률이 더 높은 이유로 사회경제적 지위, 독성이나 병원균에 노출될 가능성, 도시 고유의 환경적 위협 및 오염 등도 제기되고 있다. 일부 연구에서는 도시의 지역사회 응집력의 결핍과 같은 사회적 요인이 도시의 정신장애 발병률을 높이는 원인으로 꼽기도 하는데, 응집력이 높은 지역일수록 불안과 우울증의 증가율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²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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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자연 공간 접근 가능성이 도시에서의 정신장애 발병률을 낮출 수 있다는 흥미로운 결과도 있다. 환경심리학자인 로저 울리히Roger Ulrich는 담낭 수술을 받은 환자들이 병상에서 창문으로 자연 풍경을 볼 수 있을 때 콘크리트 벽만 볼 수 있는 환자들에 비해 더 빨리 회복된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해 냈다.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환자의 각성 수준이 낮아지고, 심장 활동이 더 건강해지며, 뇌 활동이 더 평온해짐으로써 회복 속도를 촉진한다는 것이다. 

도시에서 노출되는 각종 요인, 환경적 요인이나 오염 혹은 위협 요인, 사회적 혹은 화학적 요인 외에도 우리를 자극하는 많은 감각적 요인들도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중 건축 환경에도 불안을 야기하는 요소가 있을 수 있는데, 이런 건축 요소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뇌가 변형되어 스트레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연구들에서 인간은 보편적으로 둥근 윤곽선을 선호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토론토대학교 신경과학자인 오신 바타니언Oshin Vartanian의 연구에서는 곡선의 윤곽선에 노출되느냐, 삐쭉한 윤곽선에 노출되느냐에 따라 뇌 활동 양상이 달라질 수 있음을 증명했다.³ 곡선을 보면 안와전두피질과 대상피질 같은 보상이나 쾌락을 관장하는 뇌 영역이 크게 활성화된 반면, 삐죽한 모서리를 보면 공포를 지각하고 반응하는 기제의 중요 영역인 편도체 활동이 증가한 것이다.  

도시의 과도한 소음 역시 인지 수행과 정서 상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처럼 감각이 과도하게 자극받고, 위협이나 범죄에 항시 노출된 도시 환경에서 어쩌면 우리의 뇌와 신경과 마음이 편안하게 이완되고 쉴 수 없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빠르게 흘러가는 도시의 시간 속에서, 한 방향을 향해 마치 경주를 하듯 걸어가는 군중 속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도시인들은 오늘도 긴장의 고삐를 늦출 수가 없다. 성냥갑 아파트에 갇혀 버린 도시인들의 고립된 공간과 시간 역시 공동체와의 연결을 단절시켜 외로움을 가중시킨다.

도시 설계자인 찰스 몽고메리Oshin Vartanian는 자신의 저서 『행복한 도시』에서 이러한 도시인들의 사회적 고립을 줄이고, 친화적 행동을 이끌어 내기 위한 방향으로 도시를 계획하고 설계하자고 주장한다. 당장 도시의 과밀화와 열악한 환경을 모두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함께 모여 즐길 수 있는 공공장소, 접근성이 좋은 녹색 공원, 저층 위주의 열린 주거지 설계, 곡선 형태의 건축물처럼 만성피로와 신경증에 시달리는 도시인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다각도의 접근과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우경수 원장

 

참고문헌

  1. Florian Lederbogen & Andreas Meyer-Lindenberg(2011). City living and urban upbringing affect neural social stree processing in humans, Nature.
  2. Judith Allardyce & Jane Boydell(2006). The Wider Social Environment and Schizophrenia. Schizophrenia Bulletin, 32.
  3. Oshin Vartanian(2011). Impact of Contour on Aesthetic Judgments and Approach-Avoidance Decisions in Architecture,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10.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대구가톨릭대병원 의과대학 학사 , 석사
대구가톨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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