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도시 조경이 우리 마음에 미치는 영향

어릴 적 아버지 사업이 실패했다. 

애초에 사업가 소질도 없으신 분이었고, IMF의 촘촘한 빗살 같은 전쟁에 이겨낼 재간이 있는 사람은 적었다. 지금이야 소상공인 대책도 있고, 운영 노하우도 나라에서 알려주고 하지만, 그 당시엔 그렇게 해줄 나라가 파산해서 아무런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정말 모두가 망했다. 

당시 어머니는 아버지를 탓하기 보다 자신의 팔자를 탓하셨다. 어디에도 화풀이할 대상이 없으니 그쪽으로 뻗으신 모양이다. 아버지에게 단 하나의 불만을 말씀하셨는데, 바로 “고개를 푸욱 숙이고 다니는 게 보기 싫다.”였다. 사람이 등허리를 펴고 당당하게 걸어 다녀야지, 그렇게 다 망한 사람처럼 고개를 숙인 게 싫다고 하셨다. 어린 나는 이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지금껏 기억할 만큼.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내가 우울증에 시달릴 때였다. 친한 언니가 밥을 사주겠다고 만남을 가졌는데, 헤어져 나갈 때쯤 멋지게 계산한 언니가 내 등을 만졌다. 헛, 하고 놀라는 사이 언니는 “등 펴고! 기운 내.”라고 했다. 나는 아무런 고민 상담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리고 며칠 후 길을 걷는데, 갑자기 기시감이 들며 ‘등 펴고!’가 떠오르고 내 자세를 인지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등허리도 곱은 사람처럼 바닥만 보고 걸었다. 그 순간 바로 옆 도로와 나 사이, 벚꽃 잎이 떨어져 있는 게 보였고, 고개를 들자 조팝나무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조팝나무

 

순간 눈물이 떨어졌다. 어머니가 그렇게도 싫어하셨던 ‘인생이 다 망한 것처럼 고개 숙인’ 사람이 이제 내가 된 것이다. 그때 아버지에게는 순간을 위로해줄 조팝나무가 있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그리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거칠고 험난한 일인지, 미약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사는 서울시에서는 도시 조경에 힘을 다한다. 그래서 내가 직접 사지 않아도 길거리에서 튤립이나 측백나무, 철쭉, 각종 비비추 등 수많은 종류의 식물을 만날 수 있다. 나는 이것이 현대의 우리가 누리는 가장 합리적인 복지라고 생각한다. 고개를 떨구고 걷는 이는 물론이고, 제 몸집만 한 측백나무를 손가락질하는 아이들에게 미감(美感)을 새겨준다. 여기서 미감이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감각’ 정도로 정의하겠다. 

 

광화문 D-TOWER 조경

 

나는 빌딩의 모양이나 색부터, 맨홀에 새겨진 모양까지 모두 사람의 미감과 그 수준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 사느냐’는 ‘어떤 디자인과 색채감을 상상해낼 수 있느냐’로 발전한다고 믿는다. 그것은 분명히 문화의 일부이고, 문화적 자산이다. 이 가운데 도시 조경이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공평히 볼 수 있고, 살아 숨 쉬는 개체이다. 게다가 색감도 다양하고, 모양도 다 다르니 미감에 영향을 주기엔 충분해 보인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면서 상대방을 바이러스로 의심하는 습관이 생겼을런지 모르겠다. 씁쓸한 현실이다. 지역마다, 도시마다 색색의 꽃과 나무가 기지개를 켜는 계절이다. 비록 마스크 너머 향을 맡아야 할지도 모르지만, 이 삭막한 시기에 존재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혹시 이 순간, 고개를 떨구고 굽어진 등허리를 인식하지도 못한 채 걷는 이가 있다면, 나에게 왔던 조팝나무처럼,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라도 위로가 되어주면 좋겠다. 

 

* 매주 2회 수, 금요일 글이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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