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광화문 숲 정신과, 정정엽 전문의]

 

 

 

코로나19의 ‘거리두기’로 인해 모두가 일상에 불편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어린 자녀를 둔 부모의 고생이 크다. 놀이공원, 박물관, 외국 등 아이들에게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 것들이 산더미인데, 코로나19가 감염될까 쉽사리 도전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타인과의 접촉 없이 가족끼리만 여행할 수 있는 캠핑장이 인기다. 아이가 있는 가정은 주말마다 캠핑장을 예약하느라 전쟁이다.

캠핑은 코로나19 때문이 아니더라도,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는 장점 덕에 인기가 많았다. 캠핑 마니아 A는 꽃과 나무 틈에서 모닥불을 바라보는 일만큼 좋은 것도 없다고 말했다. 부모님은 여기저기 쑤시는 몸을 움직이기 위해 집 가까이 있는 산으로 향했다.

 

생각해보면 서울 숲 등, 대도시에는 녹지 공간인 공원이 꼭 존재한다. 그 어떤 동네라도 산보를 할 수 있는 작은 산과 등산로가 있다. 사람들은 각자 여러 이유를 들겠지만, 본능적으로 자연의 이로움을 알고 있는 듯하다. 나이를 먹고 등산을 시작한 중년층이 많은 것이나, 삼림욕(森林浴)을 하러 가는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

산이나 숲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산을 싫어한다는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보면 땀을 내며 산에 오르는 것이나, 산에 사는 벌레를 싫어하는 것이지 산과 숲, 즉 자연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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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인간에게 어떤 점에서 이로운 것일까? 우리는 본능적으로 산, 녹지 공원 등 자연을 향한다. 이와 반대로, 자연과 녹지 공간이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는다면 부정적인 작용이 일어나지 않을까? 그에 관련한 연구를 살펴보자.

 

Thygesen M의 연구에 따르면 녹지 공간이 부족한 지역에 사는 어린이는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ADHD) 발병 위험’이 증가하는 것으로 보였다.

1992년에서 2007년 사이에 덴마크에서 태어난 약 800,000명의 사람을 대상으로 ADHD 진단과 거주 지역을 비교했다. 그리고 출생부터 5세까지 녹지 공간에 대한 노출을 계산했다. 그 결과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나 도시 생활 등의 요소에 영향을 받지 않게 조정한 후에도, 녹지가 가장 적은 지역(예: 나무, 공원, 마당)에 사는 아이들이 ADHD 진단을 받을 위험이 높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반대로 녹지 공간이 많이 노출될수록 ADHD 비율이 가장 낮았다.

 

팬데믹으로 우리는 정신질환의 위험성에 노출되고 있다.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말할 것도 없다. ‘EAGG(European ADHD Guidelines Group)’에서는 2020년 4월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ADHD)와 같은 신경 발달 장애가 있는 사람은 팬데믹에 더 취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물리적 거리두기 조치로 더욱 고통 받을 수 있으며, 행동 문제가 증가할 수 있다고도 했다.

거리두기 조치로 외출 행동에 제한을 받는 시대다. 하지만 집 앞에 있는 공원일지라도 자연에 대한 접근은, 특히 5세 이전 어린이의 ADHD 발병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단순히 녹지 주변에 있는 것만으로도 뇌 건강에 도움이 된다. 지나치게 자극적일 수 있는 회색지대에서 벗어나 나무와 풀, 꽃과 함께하는 환경은 우리에게 안도감을 주기 때문이다.

 

언젠가 고시원에서 살아본 적 있는 친구에게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친구가 지냈던 고시원 방에는 한 권의 책 크기 만 한 창문이 있었다. 방음이 잘 안 되는 탓에 유령처럼 숨죽이고 살았던 그 기간 동안, 친구는 창문을 열어두었다. 그 작은 창문 너머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은행나무가 있었다. 평범한 가로수일 뿐이지만, 잿빛 도시와 여기저기서 흘러드는 담배 연기 사이로 은행나무 한 그루는 그 당시 친구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친구의 경험은 그저 개인적인 감상에 그치지 않는다. 도쿄 대학 Masashi Soga의 연구에 따르면 실제로 집에서 창을 통해 녹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우울과 불안이 낮아지는 등 정신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WHO는 팬데믹 이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정신 건강 문제(특히 우울증)의 유병률이 놀라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정신 건강 문제는 코로나19 전염병으로 인해 악화될 수 있으며, 막대한 정서적 비용과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예상된다. 수많은 사람과 함께 수다를 떨며 불안을 떨치기도 어려운 시대다.

 

'녹색갈증(Biophilia)'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 있는가? 녹색갈증은 인간이 자연을 그리워하고, 자연 속에서 살아가고 싶은 감정을 본질적으로 지니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미국의 생물학 박사 Edward Wilson은 인간에게는 자연으로의 회귀 본능이 내재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녹색갈증(Biophilia)은 '바이오(bio; 생명)'와 '필리아(philia; 사랑)'가 조합된 용어로, 직역하면 '생명애(生命愛)'라는 의미를 지닌다. 우리가 자연을 사랑하고, 녹색을 향하는 것은 어쩌면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에 가까울지 모른다. 이처럼, 인간은 자연과 다른 생명체에게 이끌리는 본능이 내재되어 있다. 외부활동은 물론, 타인과의 만남을 줄여야 하는 팬데믹 시대에 자연을 느끼는 건 꼭 필요하지 않을까?

특히 도시에는 가로수, 녹지 공원 등 자연이 필요하다. 정신 건강에 대한 위험 요소를 예방하거나 개선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자연을 가까이에 두고 접하는 일은 의료 정책에 잠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마음을 더 건강하게 만들고 싶다면 등산을 해보자. 산으로 가는 게 벅차게 느껴진다면, 집 근처 커다란 나무를 떠올리고 운동화를 신어보자.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석사, 서울고등검찰청 정신건강 자문위원
보건복지부 생명존중정책 민관협의회 위원
한국산림치유포럼 이사, 숲 치유 프로그램 연구위원
저서 <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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