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한명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이런 곳에 글을 쓰는게 처음이라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제 가장 오래된 기억은 9살때 엄마한테 싸대기를 올려맞고 발에 밟히며 잘못했다고 살려달라고 우는 기억입니다. 제가 다니는 학원이 너무 많아서 학교 친구들이랑 놀 시간이 없다보니 왕따였어요. 그러다 다가와준 친구 하나가 있어서 컴퓨터 학원을 빼먹고 같은 아파트 다른 동인 그 친구 집에서 놀기로 했는데 가기 전에 휴대폰으로 엄마한테 이렇게 문자했거든요.. 엄마 저 오늘 사실 컴퓨터 학원 안가고 00이 집에서 놀어요 너무 죄송하고 사랑해요♡ 딱 이렇게 보냈어요. 그 애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엄마가 전화가 오더라구요. 지금 당장 집으로 와. 너무 무서워서 집으로 바로 튀어갔고 현관문을 열자마자 미친듯이 맞았죠.. 제가 연민을 얻고자 쓰는 글은 아니구요 그냥 저는 이정도로 세세하게 모든 기억이 다 나서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너무 힘들어요.

 

그 이후에는 아빠는 집을 나가버리고 엄마 혼자 저랑 동생을 키우며 고생 많이 하셨어요. 혼자 식당일을 하면서 키우셨으니까요.. 저보고 하라 그러면 솔직히 못할것 같습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받은 스트레스랑 울분을 모두 저한테 푸셨어요. 욕 안먹고 얻어맞지 않은 날이 없어요. 왜 맞았는지 기억은 안나는데 매일 두들겨 맞은 다음에 엄마가 맨소래담을 발라주면 바보같이 헤실댔던 기억만 나요. 사춘기고 뭐고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친구는 항상 없었고 지금에야 정상적인 사람 흉내 내면서 사회생활 잘하지만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은 투명인간 그 자체였어요. 매일 때리고 소리지르는게 다인 집이라 친구를 어떻게 사귈지 몰랐어요.

출처_pixabay
출처_pixabay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가족증명서를 뗄 일이 있어 알았는데 엄마가 전남편 사이에 아들 둘이 있더라구요. 전남편이 엄마를 너무 때려서 도망쳐 나왔대요. 그런데 지금 남편도 도망가 버리고 딸 둘 혼자 키우는게 얼마나 기구한 인생인가요? 상식적으로는 엄마가 안쓰럽고 고마워야 할텐데 자기 머리에 맞은 흉터를 보여주며 울먹이는 엄마가 솔직히 너무 웃겼어요.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20년을 엄마한테 맞고 살았는데.. 발로 배를 차고 의자를 들어올려 내려치고 담임 선생님이 보호소를 알아봐 주신다고 신고하라고 할 정도로요. 그래서..자기가 맞은건 저렇게 한이 되는 사람이 나를 그렇게 팰수가 있었나 싶어 정말 아무말도 안했던 기억이 나요

 

엄마랑 떨어져 사는게 최선이라는 생각은 드는데.. 혼자 늙어버린 엄마가 자살해 버릴까봐 걱정은 되고, 그렇다고 같이 있을때는 죽여버리고 싶어요. 제 동생은 엄마한테 좀 덜 맞으면서 커서 엄마한테 소위 말해 쪼는게 적어요. 엄마가 얼마전 동생 행동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플라스틱 판자로 내려치려고 하니까 엄마 머리를 퍽 때려서 피가 나게 만들던데, 엄마가 아이고 미안할거 없다 이러더라구요. 순간 그걸 보고..아 저 X친X은 대가리가 터져봐야 정신을 차리는 X이구나 저러니 남편이 개패듯 팬거지 좋은말로 해선 안돼 저런 XXX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런 생각이 들다가 또 정상적일 때는 너무 미안해지고 돈 많이 벌어 효도하고 싶고 그러다가도 엄마가 내 방을 다 엎어놓으면서 화풀이 하면 진짜 칼로 수백번은 더 찔러 죽이고 싶어요. 미치겠어요 엄마를 죽이고 저도 자살하고 싶어요.

.. 이런 증상은 정신과에 어떻게 말해야 하나요? 엄마랑 연을 끊어도 저희 엄마가 혼자 잘 살수 있을까요? 동생은 이런 죄책감조차 가질 생각이 없다고 애초에 독립하고 연을 끊은 상태에요. 제가 무슨 알량한 책임감과 죄책감으로 엄마랑 인연을 유지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저 좀 도와주세요 정신과에 어떤 식으로 상담을 요청해야 할까요?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의학신문, 광화문 숲 정신건강의학과 한명훈입니다. 라마님의 글을 읽고 얼마나 힘든 시간들을 견디면서 살아오셨을지, 그리고 지금도 괴로운 심정이 전해져 마음이 무거워 집니다.

어린시절의 경험과 현재 어머니와의 관계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할지 혼란스럽고 고민이 많이 되시는 것 같습니다. 짧은 글만으로는 라마님의 삶의 이야기와 마음들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사람은 타고나는 기질이 있지만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성장하게 됩니다. 그렇게 쌓인 기억과 경험들은 내 마음의 구성을 이루고 현재 내가 생각하게되는 마음과 감정들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특히 어린시절의 양육 가운데 보살핌을 받고 수용된다는 경험들이 이후 세상을 살아갈 때 안정적인 마음을 유지하는데 필요합니다.

출처_pixabay
출처_pixabay

 

안타깝게도 라마님의 경우 이해받고 보듬받는 경험보다는 학대라고 할 수 있는 경험이 있으셨던 것 같네요. 어린 아이의 경우 학대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성인처럼 이를 회피하거나 방어할 수 있는 힘이 부족합니다. 아무리 언어적, 정서적, 신체적 학대를 당하더라도 아이들은 견뎌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세상을 살아갈 때 학대자이더라도 보호자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안전하기 때문이랍니다.

 

따라서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런 학대를 그나마 덜 괴롭게 받아들이기 위한 해석을 하는데요. 괴로운 경험 안에서 어머니를 미워하고 분노만 한다면 너무 괴롭고 힘들기 때문에, 그래도 어머니가 내게 맨소래담을 발라주고 돌봐주었던 기억을 붙잡고 안심하려 마음을 달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성인이 된 지금도 라마님의 마음 안에는 어머니에 대한 분노와 애정(측은지심으로 표현되는)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두가지 감정 모두 강하게 느껴지는데요. 상반된 양가감정이 너무 강하게 존재하여 혼란스러움과 죄책감에 괴로움도 느끼실 수 밖에 없겠네요.


내가 느끼는 분노의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이것이 너무 괴롭게 느껴지고 홀로 온전히 감당하기 버거울 때 마음은 지쳐갑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을 다루기 위해 마음의 에너지를 쏟아내서 일이나 다른 관계에서는 여유가 부족해 어려워 지는 경우도 종종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선뜻 어떤 결정을 내리기도 힘들어지기 마련이죠.

 

현실적인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거나 삶을 사는 것에는 정답은 없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원망으로 라마님도 동생처럼 어머니를 떠나고 독립을 하고 싶으면서도, 책임감과 죄책감으로 어머니 곁에 있는 것도 어느것도 옳지 않거나 옳은 선택은 아니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반복되는 분노와 죄책감의 감정에 매몰되고 휩싸이면서 흔들리는 것이 괴롭고 힘든 시간들일 것이라 짐작합니다.

출처_pixabay
출처_pixabay

 

이런 라마님의 마음과 감정을 함께 나누면서 소화시키는 과정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나 심리상담센터에 문의를 하시어 이에 관련하여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을 다루어가는 시간을 갖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겠습니다. 상담과 치료를 시작하기까지가 가장 고민이 되고 머뭇거려지는 순간입니다. 힘든 경험들이 있는 경우 좌절감에 매몰되어 치료에도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게 되기도 하는데요. 라마님은 나아지고자하는 동기와 마음이 있어 이는 라마님이 가진 강점으로 보입니다.



상담은 좋은 치료자를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규칙적으로 갈 수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가급적 본인이 방문하시기 수월한 직장이나 거주지 근처나 내원하시기 수월한 동선가운데서 선택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방문을 하신다면 추후 어떤 치료나 상담 방향이 있을 지에 대해 함께 논의를 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병원의 경우 병원마다 상담을 길게 혹은 짧게 하는 경우도 있어 이에 대한 사전 문의를 해보시는 것이 도움이 되며, 가까운 곳에 상담을 길게하는 병원이 없다면 병원과 상담센터를 병행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명훈 정신과 전문의

한명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건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공주국립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한별,혜강병원 진료원장
서울병무청 정신건강의학과 제 1 병역판정전담의사
  • 애독자 응원 한 마디
  • "이해받은 것 같아요. 매번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동안 고민하던 문제가 풀린 것 같아요. 제가 뭘 잘못했는지도 돌아보게 됐습니다."
한명훈 전문의의 대표칼럼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