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한명훈 광화문 숲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20대 남성입니다.

제 행동의 동기가 자연스러운 감정의 발로인지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모습의 나'여야 한다는 일종의 무의식적인 강박인지 구분이 잘 가지가 않습니다.

슬퍼서 울고 있을 때도 진심으로 내가 슬픈 것인지 아니면 이 상황에서는 마땅히 슬픔을 느껴야 할 것이다라는 관념 때문인지 의문이 든 적도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도 정말 감정의 혼란을 느껴서인지 아니면 그렇게 연기하게끔 되어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쓸데없는 생각인 걸까요?

 

답변)

안녕하세요. 광화문 숲 정신과 한명훈입니다.

현재 내 감정과 행동의 동기에 대해 부자연스러움과 이질감을 겪고 계시는군요.

감정과 행동이라는 것은 내 안에서 나오는 것일 텐데 이것이 어색하게 느껴진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경우 다양한 심리적 설명과 요인이 있을 수 있으며 단편적인 내용만으로는 작성자님의 상황과 마음을 명확히 알 수는 없으나, 짧게나마 도움이 되실까 싶어 몇 가지 가능성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무의식과 의식으로 형성되어있다고 합니다.

무의식의 깊은 층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지만 많은 영향을 주고 있으며 우리는 의식 내에서 인지되는 일부분만을 느낄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느끼는 것에 대한 원인과 이유를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무의식 깊은 곳에서는 참 자기(true self)라는 나의 자연스러운 근원적 요소가 있습니다.

이것이 원활하게 발현된다면 내가 느끼고 행동하는 것이 편안하고 자연스러울 수 있습니다.

 

다만 참 자기가 자연스럽게 발현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양육 과정이나 여러 환경적 요인으로 인하여 자연스러운 참 자기의 발현이 어려운 경우가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아이의 원하는 바 보다는 양육자의 요구에 따라 맞춰야 하거나, 환경적 요인이 여의치 않은 경우 말이지요.

예를 들어 아이가 짜증과 화를 내는 경우에 수용되고 받아들여지는 환경이었다면 참자기가 온전하겠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되려 혼이 나거나 자신을 숨기고 맞추어야만 했다면 어려워지는 부분이 생기겠지요.

 

이럴 때 환경에 맞추어 거짓 자기(false self)가 마치 참 자기를 둘러싸는 껍질처럼 형성되게 됩니다.

거짓 자기는 수용적이지 못한 환경으로부터 참자기의 손상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적 반응이기도 합니다. 참자기의 자연스러운 발현과 창조성을 가로막고 환경에 맞추어 반응하는 거짓 자기가 두텁게 형성되는 경우에 자연스러움보다는 상황에 맞추어 행동하거나 감정을 가장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사진_freepik
사진_freepik

 

거짓 자기는 자신의 내면을 숨기고 사회적 자아를 가장하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과도 비슷합니다.

하지만 사회적 자아는 때론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지만 적응적이며 대개는 의식적인 부분이 많습니다.

거짓 자기의 경우 무의식적인 요소이며 우리가 손쓸 방법 없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사람은 참 자기를 늘 100% 발현하면서 살아가기는 어렵습니다. 참 자기와 거짓 자기는 이분법적이지 않고 스펙트럼적이기 때문입니다.

(예시, 거짓 자기 20% + 참 자기 80%, 거짓 자기 60% + 참 자기 40% ....)

 

두번째 가능한 원인으로는 가혹한 초자아가 있는 경우일 수 있습니다.

마음의 구조로는 이드, 자아, 초자아가 있다고 합니다.

이드는 원초적인 마음의 부분, 자아는 조율자, 초자아는 마음속 규칙입니다.

초자아는 해야 하는 것(자아 이상)과 하면 안 되는 것(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이드가 자아의 조율 하에 자연스럽게 그리고 적응적으로 발현되면 좋겠으나, 초자아는 이를 감독하고 하지 못하게 막습니다. 초자아가 너무 가혹하고 엄격한 경우에 이드가 많이 억압당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반응하고 느끼기보다는 마치 가장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초자아 또한 환경 가운데서 형성되는 부분입니다.

*초자아의 검열로부터 조금이나마 자연스러워지고 거짓 자기보다는 참자 기를 발현하기 위해서는

 

내 마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혼자서는 의식 아래의 무의식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전문 상담가와의 진솔한 나눔의 시간이 도움이 됩니다. 또한 신체의 감각에 집중하는 명상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마음은 무엇보다 신체적인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수십 년간 쌓여온 마음의 습관 또는 모습이기에 빠른 시간 안에 나아지기를 기대하기보다는 천천히 시간을 갖고 적절한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내 마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경험이 차츰 쌓여간다면 어느덧 좀 더 편안하게 나를 경험하고 살아가는 날이 오리라 기대합니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한명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건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공주국립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한별,혜강병원 진료원장
서울병무청 정신건강의학과 제 1 병역판정전담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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