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중학생 2학년 남학생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여자 친구들이랑 노는 게 좋아서 여자 친구들이랑 놀고, 화장도 하며 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래전부터 여자 친구들이랑 놀았다는 이유로 남자친구들에게 왕따, 따돌림, 폭력 등을 당하고 있습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도 줄곧 말이죠. 

이제는 못 버티겠어서 이 글을 작성합니다. 저는 어른이 되면 성전환 수술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검색해서 찾아보니 성전환 수술을 하려면 정신과에서 성 정체성 장애 진단을 받아야 한다는 글들이 있어서 조심스럽게 글을 올려봅니다.

오래전부터 저는 여성스러운 행동 도 많이 하고, 여자 친구들이랑 화장하며 놀기 등 여성적인 행동을 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제가 여성인지, 남성인지 판단도 잘 안 됩니다. 그래서 남자로서의 삶을 포기했고, 여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저는 성 정체성 장애 진단서를 받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검색해 보니 사람들의 말로는 성 정체성 장애 진단서를 가지고 산부인과에 가면 상담 후 여성호르몬 치료가 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저는 안 되는 걸까요?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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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올려주신 고민 사연 잘 읽어 보았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여자 친구들이랑 노는 게 좋아서, 함께 자주 어울렸다는 이유로, 오랜 시간 동안 남자 친구들로부터 따돌림과 폭력 등을 당하고 있다고 담담히 고백하는 글에서 사연자님께서 그간 이처럼 힘든 상황을 얼마나 오랫동안 견디며 지내오셨을까 헤아려 보니 저에게도 그 아픔이 전해지는 듯합니다. 또 현재도 여전히 힘든 상황을 겪고 계시다고 하니 너무도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사연자님께서는 성 정체성에 관한 고민을 주된 상담 주제로 제시해 주셨는데요, 이 부분도 당연히 사연자님의 인생에서 진지하게 고민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되지만, 오랫동안 또래 집단으로부터 겪어 온 왕따와 폭력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연에서는 그간 사연자님께서 또래의 괴롭힘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나와 있지 않아 정확한 상담을 드리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만, 가장 가까이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이나 학교 선생님, 상담 교사 등 주변 어른 분들에게 반드시 도움을 요청하셔서 따돌림과 폭력에서 벗어나실 방법을 강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연자님께서 남들과 다른 성적 정체감이나 취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결코 괴롭힘의 원인이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점을 사연자님께서도 마음 깊이 받아들이고, 더 이상 폭력의 희생자로서의 삶을 살지 않을 것임을 스스로와 세상에 선언해 주셨으면 합니다. 또 행여나 그동안 학교 폭력의 피해자로서 당해 온 따돌림의 원인이나 화살을 자신에게로 향해 왔다면, 앞으로는 그러한 편견과 잘못된 행동을 일삼아 온 가해자들에게 그 책임이 지워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좀 더 용기를 내셔서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괴롭힘의 그늘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방법을 실행에 옮기셔야 합니다. 만약, 가까운 어른들에게 이미 도움을 요청했는데도 상황이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면, 다음의 여러 기관을 통해 전화 또는 인터넷 상담 등을 통해, 좀 더 강력하게는 공권력의 힘을 빌려서라도 반드시 폭력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 학교 폭력 전화 문자 상담 - 117 
- 청소년 사이버상담 - 1388 
- 학교 폭력, 인터넷 상담 등 1588-9128

오랫동안 또래 집단으로부터 따돌림이나 폭력을 당하게 될 경우, 우리 마음에는 깊은 소외감과 상처가 남기 쉽습니다. 더구나 사연자님의 경우, 현재도 괴롭힘이 진행 중이라고 하니 더욱 우려가 깊습니다. 또래 친구들과 친밀하고 신뢰로우며 수용적인 관계를 경험하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폭력에 노출되거나 괴롭힘을 받을 경우, 피해자의 정신과 마음은 타인을 신뢰하거나 세상이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기 어렵게 됩니다. 

사연자님 역시 세상은 안전하지 않고, 사람들은 신뢰하기 어렵다는 불신감과 불안감이 내면 깊게 뿌리내리지 않았을지 염려됩니다. 폭력과 따돌림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는 것은 물론, 세상과 사람에 대한 인식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그렇게 될 때 세상과 사람들은 온통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또 이러한 인식으로 말미암아 인생을 살아가면서 세상에 대한 안정감을 갖거나 타인과 신뢰로운 관계를 맺는 데 있어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도 높아지기도 하고요. 때문에 오랫동안 지속되어 괴롭힘에 대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것이 지금 사연자님께 무엇보다 중요하고 우선시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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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먼저, 사연자님께서 고민하시는 성 정체감 혼란과 성 전환에 관한 간략한 정보를 드리자면, 현재 DSM-5에서는 ‘성 정체감 장애’라는 용어는 낙인 효과 때문에 사용하지 않고, ‘성별 불쾌감(gender dysphoria)’이라는 용어를 사용 중에 있으며, 이에 대한 내용은 ‘해부학적 성에 대해 지속적인 부적합과 불편을 느끼고, 반대의 성이 되기를 갈망하는 것이 적어도 2년 이상 지속되는 것’으로 정의되고 있습니다. 또 본인의 해부학적 성 역할을 거부하는 특성이 어린 시절부터 인지되고, 성전환의 경우 신중하게 시행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만약 성별 불쾌감이 소아기에 나타날 경우, 사춘기 무렵 증상이 사라지는 경우도 상당수 존재하기 때문에, 아직 청소년기에 해당하는 사연자님께서도 지금 성 정체감 때문에 마음이 많이 혼란스럽더라도, 당장 자신의 성 정체성을 규정하기보다 시간을 가지고 다방면에서 그리고 다양한 관점에서 좀 더 숙고해 보시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이와 관련해 다방면에서 검토한다는 것은, 예를 들면 사연자님께서 어린 시절부터 여자 아이들과 함께 어울렸다는 이유로 동성 친구들로부터 오랫동안 괴롭힘에 시달려 왔던 것이, 동성에 대한 혐오감을 부추겨 사연자님의 성 정체성에 관한 혼란을 더 가중시켰을 가능성 등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검토해 보는 것입니다.  

사연자님께서는 현재 스스로가 여성인지 남성인지 판단도 거의 되지 않을 만큼 스스로의 성 정체성에 대해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남자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셨다고요. 이 말의 행간을 잘 들여다보면, ‘너무도 간절히 여성이 되고 싶다.’라기보다 남성으로서의 성적 정체감을 확고히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 ‘남자로서 사는 삶’을 자포자기하고 싶은 심정도 엿보이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도 듭니다. 

사연자님께서 정말로 다른 성(性)으로 살기를 바라는지, 혹은 그동안의 인생 경험에서 남성성에 대한 깊은 마음의 상처를 받은 일이 성 정체성 혼란에 크게 작용한 것은 아닌지, 그 밖에 성장 과정에서 특별히 성 정체감의 혼란을 가져올 만한 또 다른 계기나 경험이 있었는지, 언제부터 이런 혼란감이 생겨나게 된 것인지, 부모님이나 형제 등 가족들과의 관계는 그간 어떻게 맺어 왔으며, 사연자님께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면밀히 검토하고 분석해 보는 것이 사연자님의 성 정체감 혼란에 대해 좀 더 정확히 이해하고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노력에도 계속해서 스스로의 성 정체감과 관련해 많이 혼란스럽거나 생각을 정리하기가 힘드시다면, 부모님이나 관련 전문가 혹은 상담가 선생님들께 고민을 털어놓고 진지하게 대화해 보실 것을 권유 드립니다. 혹은 성과 관련해 전문적으로 상담해 주는 다음의 사이트(시립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 https://ahacenter.kr)에 접속하시어 채팅 상담이나 게시판 상담을 통해 고민을 상담받아 보실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앞서 말씀 드렸다시피, 다양한 도움의 채널을 통해 현재 겪고 계시는 따돌림과 폭력의 늪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시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그리고 학교 상담교사나 지역센터 전문가, 정신건강의학과 등 전문가의 도움하에 그간 괴롭힘으로 인해 많이 지쳐 있을 사연자님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데 초점을 맞추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먼저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며 회복하는 시간을 가지시면서 앞으로 현재 고민하고 있는 성 정체성 문제에 관해서도 진지하게 숙고하고 마음을 정리해 보신다면 좋겠습니다. 

사연자님의 성 정체성이 그 무엇이든지 간에 사연자님은 ‘소중한 존재이며,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분’이라는 것을 항상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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