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렌즈 (2)

[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최근 온라인을 보면, ‘남자와 여자가 이렇게 적이 되었던 적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특정 성에 대한 언급조차도 조심스러워지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과거에는 정치와 종교가 건드리면 불이 붙는 성역 같은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성별 문제가 그러한 느낌을 주고 있음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는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공존해야 함을. 그렇다면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런 젠더 갈등의 원인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를.

 

최근 대한민국에서 젠더 갈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젠더 갈등이 비단 오늘날의 대한민국에만 있는 일은 아니다. 여성 혐오를 뜻하는 misozyny라는 단어는 1620년대에 처음 등장하였고, 1974년부터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1890년대에 미국과 영국 신문에서는 신여성을 남성 혐오자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본다면 젠더 갈등은 예전부터, 그리고 외국에서도 있었던 현상이다. 그렇다면 젠더 갈등의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근본적인 원인은 남녀가 다르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어떻게 다른가? 여자는 임신을 하고, 남자는 임신을 하지 않는다. 임신 유무는 남녀에게 어떠한 차이를 낳을까? 임신을 하게 되면 성관계 횟수와 자손 생산과의 상관관계가 많이 떨어지게 된다. 따라서 낳을 수 있는 자손의 수에 한계가 있게 된다. 또한 임신을 하게 되면 내 자식이 혹시나 내 자식이 아닐 수도 있다는 불확실성이 제거된다. 임신을 하지 않는 남자의 경우는 정반대일 테다. 이러한 factor들은 남녀의 심리에 엄청난 차이를 낳을 수밖에 없다.

(지면 상 자세한 이야기는 ⌜연애의 과학 - 수컷과 암컷 사이⌟라는 제 칼럼을 참고하시길 바란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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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현재 남성과 여성들이 이러한 factor들을 생각하면서 행동한다는 것은 아니다. 상기 factor들로 인한 심리 차이는 진화 역사를 거쳐 X 염색체와 Y 염색체에 새겨져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무의식 속에서 늘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러한 부분을 의식화해서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성이라는 이유로, 젠더 갈등이라는 이유로 수면 아래에서 수면 바깥으로 쉽게 올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려면 수면 아래에 있는 것들이 바깥으로 나오게 하는 작업들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신의학에서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는 과정을 ‘무의식의 의식화’라고 한다. 이것은 개개인에게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적용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 진화심리학이라는 학문에 호불호가 많이 갈리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진화는 호불호라는 가치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 자연의 일부로서 ‘그냥 그렇게 되어 왔을(自然)’ 뿐이다. 여기에 대한 이해 없이는 젠더 갈등의 뿌리를 보지 못한 채 가지만 보는 겪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유전이라는 강력한 힘을 배제한 채 인간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부모를 배제하고 나라는 존재를 논의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테니까 말이다. 이 유전은 당연히 진화 역사를 거쳐 왔다. 부모 위에 부모가, 또 그 위에 부모가 존재했을 테니까 말이다. 개개인의 뿌리가 부모이듯이, 인간의 뿌리는 진화 역사일 수밖에 없다. 진화심리학에서 보는 남녀 심리 차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영상을 참조해주시기 바란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드실 수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젠더 갈등의 근본 원인을 남녀 심리 기제 차이에 있다고 주장을 했는데, 그렇다면 최근에 그것이 두드러진 이유는 무엇 일지에 대한 의문이 드시리라 생각한다. 근본 원인이 남녀 심리 기제의 차이에 있다고 한다면 최근에서야 갈등이 두드러지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당연히 최근의 환경 변화에 기인할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환경 변화의 큰 요인은 ①여성의 활발한 사회진출과 ②SNS의 발달, 이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지면 상 후자는 다음 연재에서 상세히 기술하기로 하고, 이번 연재에서는 전자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우리 윗세대까지만 하더라도 남녀 역할의 구분은 비교적 명확했다. ‘바깥양반, 안사람’이라는 용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남자는 밖에서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여자는 집안 살림을 한다는 역할 구분이 있었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역할 구분은 아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회생활은 남성 위주로 돌아갔었다. 많은 나라에서 남성 위주의 사회로 문화가 수렴되게 된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이유에 대해서는 유전자와 문화의 공진화로 설명을 하여야 한다. 이 이해의 밑바탕에도 진화심리학에 대한 이해가 기초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수백만 년 전 수컷과 암컷의 심리는 어땠을까?

먼 과거 우리 조상의 키와 덩치의 차이는 지금의 남녀 차이보다 더 컸었다. 이를 성적 이형성이라고 하는데, 성적 이형성이 클수록 한쪽 성에서 경쟁이 치열했음을 의미한다. 즉, 수컷 사이에서 경쟁이 심했고, 경쟁의 승자를 암컷이 선호했기 때문에 수컷의 덩치가 암컷에 비해 커진 것이다. 일부다처제의 경우 이러한 경향을 보인다. 인간의 사회는 일부다처제에서 일부일처제로 변화해왔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이다.

많은 포유류들이 일부다처제의 사회를 보이고 있는데, 인간의 사회는 왜 이렇게 변화해왔을까? 그것은 다른 동물들은 태어나자마자 걷고 먹고 하는데 문제가 별로 없지만, 인간의 아이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태어난다는 데에 있다. 다른 동물들은 암컷이 아이를 혼자 돌보는 데에 큰 문제가 없지만, 인간의 아이는 아버지의 투자 없이는 생존이 힘들다는 의미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상 암컷들은 수컷의 부양 투자 능력을 중요시하게 생각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조상 수컷들은 부양 투자 능력을 과시할 수 있는 위치로 올라가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했다. 이러한 심리는 현대의 남성과 여성의 심리와 문화에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현대 남성들은 이성을 볼 때 외모를 1순위로 보지만, 현대 여성들은 이성의 사회적 지위와 능력을 1순위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모습들도 진화의 잔재로 볼 수 있다.

인간의 진화 역사가 이러한 과정을 거치다 보니, 자연스레 남성이 사회에서 자원을 획득해 집안을 support 하는 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문화는 아주 오랜 기간, 많은 문화권에서 이루어져 온 일이다. 하지만 최근에 이러한 문화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과거보다 자원을 획득하는 데에 육체적 힘이 필요한 일들이 줄어들다 보니, 여성의 사회진출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남녀 역할 구분이 사라지는 과도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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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시점에서 현대 여성이 느껴지는 감정이 무엇일까를 한 번 생각해보자. 필자는 남자이지만, 그럼에도 분노가 일어날 거 같다. 모든 세팅이 남성 위주로 짜여 있고, 같은 능력이더라도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으니까 말이다. 분노는 규칙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된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자, 기존 남성 위주의 규칙들에 균열이 생기고, 변화의 힘이 생겼다. 1890년대에 미국과 영국 신문에서 신여성을 남성 혐오자라고 지칭한 것도 이러한 배경이 깔려 있을 것이다.우리는 이러한 변화의 과정 중에 있는 것이다. 변화의 과정 중에는 필연적으로 갈등이라는 것이 따라올 수밖에 없을 테다. 그것이 현시점일 테고.

 

그렇다면 갈등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남녀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이해 이리라 생각한다. 남녀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만 진정한 평등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분명한 차이’나 ‘단순히 같다’라는 가정으로는 진정한 평등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정신과 의사로서 심리적 갈등에 있는 내담자에게 자주 드리는 말씀이 있다. ‘A를 선택하든, B를 선택하든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 기저에 있는 심리적 갈등을 내가 잘 이해하고 A를 선택하느냐, B를 선택하느냐가 중요하다.’라는 말이다.

현재 남녀평등이라는 가치 추구도 비슷한 지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규칙으로 합의를 보느냐 이전에, 남녀의 심리적 갈등 이면에 있는 모습을 우리가 완전히 이해를 하느냐에 대한 초점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 이해의 밑바탕에는 진화심리학이 자리 잡아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우리 개개인의 성격과 심리가 부모님을 닮았듯이, 인간이라는 존재는 유전이라는 힘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유전은 진화 압력을 거쳐서 살아남은 것이고, 이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이 진화심리학이라는 학문이다. 진화심리학이 보는 남녀의 심리 차이에 대한 이야기는 위에 공유한 영상이나 ‘암컷과 수컷 사이’라는 칼럼을 참조해주시고, 지면 관계 상 이어지는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하겠다.

 

본 글은 쿠키건강TV  마인드온 - 정신과 의사 이일준의 심리학 렌즈 32회 ‘남혐, 여혐의 심리’ 방송분의 일부입니다.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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