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현의 <공황장애 알아보기> (15)

[정신의학신문 : 강남 푸른 정신과, 신재현 전문의] 

 

공황장애, 100% 나을 수는 없다고요?

“북극곰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면, 매 순간 저주스럽게 마음속에 떠오를 것이다.”
- 도스토옙스키, 1863년 에세이 중에서 -


공황장애는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할까? 매 순간 나를 덮치는 공포감을 어떤 방식으로 벗어나야 할까?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인가? 또 내가 기울여야 하는 노력은 무엇일까?

서운한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모든 병이 그렇지만, 특히 마음의 병에 있어서는 100% 회복을 보장하는 치료 방법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의 마음을 특정 방법을 통해 측정하고, 계량할 수는 없지 않은가? 거슬리는 물건을 치워버리듯, 우리 마음의 불편함을 없애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마음을 어떤 수단으로 통제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백곰 효과(White Bear Effect)’를 생각해보자. 사회심리학자인 웨그너(Daniel Merton Wegner)가 한 실험에서, 피실험자는 먼저 하얀 곰을 떠올리도록 하고, 이내 다시 그 곰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라는 지시를 받는다. 피실험자의 마음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하얀 곰이 머리 안에서 사라지기는커녕 더 활발하게, 더 격렬하게 돌아다닌다. 우리가 우리 마음을 통제하려는 노력은 그다지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공황장애에 동반되는 두려움, 끔찍한 공포감 등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해도 결코 우리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도 이러한 까닭이다. 마음의 문제들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따라서 공황장애를 한 가지 방법을 통해서만 완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이비 종교이거나 거짓말, 둘 중 하나일 테다. 
 

그렇지만 공황장애 치료에 있어 지침과 방향은 존재한다. 미국정신과협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APA)에서 주기적으로 발표하는 공황장애 치료 지침에 따르면, 공황장애를 치료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두 가지 방법은 인지행동치료(Cognitive Behavioral Therapy, CBT)와 약물치료다. 두 가지 모두 오랜 시간 동안 무수한 연구를 통해 그 근거를 획득한 치료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두 가지 치료 방법 또한 ‘완벽한 회복’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결국은 인지행동치료와 약물치료를 적절한 기간에 걸쳐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더불어 스트레스를 현명하게 관리하고, 자신의 삶에 공황장애를 잘 수용하고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더해져야 비로소 공황장애를 충분히 치료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충분한 치료가 100% 완치와 동의어는 아니다. 사실 공황장애는 우리 삶에서 파도처럼 출렁인다. 스트레스가 많을 때는 가슴이 조이고, 답답한 느낌이 자주 느껴지다가, 시간이 지나 한고비 넘기고 나면 증상이 약해진다. 조금 과장하면 예민하고 변덕이 심한 야생동물과 같다. 따라서 우리는 증상을 100% 나아지게 만들려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 아니라 공황장애가 삶의 여러 순간마다 균형을 잘 유지할 수 있도록 길들여야 한다. 

공황장애를 벗어나는 방식에 있어 정답은 없다. 공황장애 회복에는 어떤 목적지가 정해져 있지 않다. 다만 어떤 방향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일종의 방향성이 있을 뿐이다. 치료를 통해 얻어야 할 것은 바로 이런 노력의 방향성이 될 것이다.

 

사진_픽셀

 

공황장애의 대표적 치료,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  

‘치료’라는 단어를 접하면, 대부분 사람은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고 복용하는 치료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정신과 영역에서의 치료 또한 마찬가지다. 많은 이들이 정신과 치료는 약물로 증상을 완화하려는 시도일 것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공황장애를 치료하는 데 있어 약물치료는 많은 도움이 된다. 공황장애가 악화하고, 회복되는 과정에서 힘든 시기를 견디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라고 볼 수도 있다. 

다만 약물치료 자체가 공황장애에서 벗어나기 위한 알파와 오메가는 결코 아니다. 치료를 받는 사람이 가진 문제들이 다양하지만, 공황장애에서 오랫동안 약물치료를 하는 게 필수적이지는 않다. 또 ‘약물치료만을’ 받는다면 약을 중단한 후에 일어날 수 있는 재발을 걱정해야 할 수도 있다. 따라서 공황장애의 경우 약물치료와 더불어 비약물적 치료인 인지행동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재발을 낮출 수 있으며, 재발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더 길어질 수 있음을 여러 연구에서 밝혀냈다. 

 

약물치료는 어떤 효과가 있나? 

약물치료의 가장 큰 목적은, ‘현재의 불편함을 가라앉히는 것’이다. 초기의 적극적인 약물치료는 불안, 불면, 극심한 신체적 증상들을 조절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공황장애로 병원을 처음 찾을 때면, 대부분 심한 불안과 신체화 증상에 시달리고 있을 때다. 불면이나 우울감 등이 함께 동반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일상생활, 대인 관계, 직장 생활 모두에서 큰 지장을 받을 수도 있다. 따라서 치료 초반에는 적극적인 약물치료가 우선 고려된다. 불편함을 가라앉히면서 비약물적 치료를 하기 위해 마음의 여유를 되찾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몸과 마음의 고통이 극심한 상황에서는 생각과 행동을 조금씩 바꿔 나가거나 스트레스를 적절히 관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공황장애의 약물치료에서는 크게 두 가지 종류의 약을 사용한다.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재흡수 억제제(SNRI)와 같은 항우울제, 그리고 벤조디아제핀 류의 항불안제(신경안정제)가 그것이다. 그 외에 불면이 있다면 졸피뎀, 트리아졸람 등의 수면제를, 우울증이 동반된 경우 보조적으로 아빌리파이(성분명 아리피프라졸) 등을 함께 사용한다. 신체 증상과 긴장에 대해 베타 차단제인 인데놀(성분명 프로프라놀롤)을 조합하기도 한다. 약을 사용하는 빈도와 용량은 개인차가 워낙 크지만, 대개 초기에는 고용량, 다빈도로 약을 사용하다 점진적으로 줄여나가는 경과를 밟는다. 

약물치료의 비중은 치료 초기에는 90% 이상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비중은 점차 줄어들게 된다. 어느 정도 회복된 후에는 필요성이 10% 이하로 떨어진다. 몸과 마음이 이미 약에 의지하고 있는 상태더라도, 현재 약이 꼭 필요한 상황인지에 대해 충분한 관찰이 필요하다. 스스로 약의 필요성을 고민하며, 약을 처방하는 주치의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약물치료, 네 가지 오해와 진실 

세간에는 정신과 약물에 관한 ‘도시 괴담’이 너무나 많이 퍼져있다. 약의 부작용에 대한 과장이나, 약을 사용하는 기간, 약 사용 자체에 대한 오해들이다. 대표적인 오해와 진실 몇 가지를 살펴보자.

하나, 정신과 약을 먹기 시작하면, 영원히 먹어야 하나? 

가장 큰 오해다. 공황장애에서의 약물치료 원칙은 ‘충분한 기간, 적극적인 사용’이다. 충분한 기간이라는 말에 특정 기간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초기에는 약물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되 증상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준비가 되면 점차 중단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약을 어느 정도 사용하면 다소 신체적, 심리적 의존이 생길 수는 있다. 하지만 ‘의존’이라는 단어가 약에 중독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약을 사용하는 것에 몸과 마음이 익숙해진다는 의미에 가깝다. 약을 줄인 후에도 적절하게 증상에 대처할 수 있는 인지행동치료와 개인적 노력을 함께하는 것이 약 중단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된다. 마음의 준비가 돼 있고, 자신감을 갖췄다면, 약을 점점 줄이는 과정이 오히려 회복된 후의 자신을 기대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둘, 정신과 약을 오래 먹으면 몸에 문제가 생길 것이다?

약의 가짓수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오랜 시간 정신과 약물을 사용한다고 해서 신체에 큰 문제가 생긴다는 명확한 연구결과는 없다. 언론에서 종종 보도하는 문제는, 실은 여러 연구에서는 다소 상반된 결과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즉 정립된 이론이 아니라는 말이다. 지레 겁을 먹고 꼭 필요한 경우에도 약을 마다한다면, 증상의 들불이 갑자기 번지는 것을 막기가 쉽지 않다. 다만 약을 장기적으로 사용한다면, 자신의 건강에 대해 충분한 관심을 가지고 모니터링을 해나가야 한다. 

셋, 공황장애는 약으로만 치료하는 것이다?

공황장애는 약으로만 치료하는 병이 아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약물치료만이 정신과에서 공황장애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편견도 많다. 우리 의료 체계의 한계 탓에, 긴 시간이 필요한 상담을 하기 어려운 속사정도 있다. 그러나 세계 여러 나라에서 발표한 공황장애 치료 지침 모두에서 인지행동치료와 약물치료, 두 가지를 함께 사용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고 밝힌 바 있다(Ref 2. 각종 치료 지침 – CANMAT, APA 등). 약물치료는 큰 불길을 약하게 만들어주지만, 작아진 불씨를 더 안전하게 다스리는 데는 비약물적 치료와 개인적인 노력이 꼭 필요하다. 

넷, 약을 중단하면 증상이 갑자기 확 나빠지지는 않을까? 

약물치료를 시작하기 전부터 약을 중단한 이후의 상태를 걱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약을 끊고 나서 나타날지도 모를 금단증상과 재발 위험성에 대해 지레 겁을 먹는 것이다. 하지만 금단증상은 점진적인 감량을 통해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재발에 대한 염려 또한 이에 대처하는 태도와 방법을 치료과정에서 익혀 나갈 수 있다. 공황장애가 심한 상태에서는 재앙화(Catastrophizing) 사고의 오류를 겪는 경우가 많다. 재앙화란, 아무런 근거도 없이 모두 나쁜 방향으로만 일이 진행되리라고 침소봉대(針小棒大)해서 생각하는 사고 패턴이다. 즉 세상 모든 일이 다 위험하다고 염려하는 탓에, 시작하지도 않은 치료의 끝을 미리 걱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금단과 재발, 모두 치료과정에서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요소들이다.

 

*  *  *
 

정신의학신문 마인드허브에서 마음건강검사를 받아보세요.
(20만원 상당의 검사와 결과지 제공)
▶ 자세히보기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나를 살피는 기술>, <어른의 태도>
전문의 홈 가기
  • 애독자 응원 한 마디
  • "선생님을 만나고나서 분노를 좀더 잘 다루게 된 것 같아요"
    "신재현 선생님의 따뜻한 조언에 살아갈 용기를 얻었어요"
    "지방이라 멀어서 못 가지만 여건이 되면 찾아가고픈 제 마음속의 주치의입니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