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현의 <공황장애 알아보기> (12)

[정신의학신문 : 강남 푸른 정신과, 신재현 전문의] 

 

공황장애 극복은 꽤 길고도 힘든 여정일 수 있다.

자신의 주변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며, 필요한 시간 동안 충분한 용량의 약물치료를 하고, 공황의 본질에 대해 ‘올바로’ 익히면서 이를 실제 생활에 적용해 일상에서의 노출을 조금씩 경험해 나가는 것.

치료에서 제시하는 과정 자체는 간단해 보이지만, 단계마다 노력과 수고가 많이 필요하며,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데에도 험난한 장애물들이 도사리고 있다. 두려움의 껍질을 깨뜨리고 밖으로 한 걸음 내딛는 데는 적지 않은 에너지가 드는 법이니까. 

 

공황장애 극복에 도움이 되는 지침은 너무나 많다. 잠깐의 구글링을 통해서도 수백 가지의 가르침을 얻을 수 있을 정도다. 이미 앞선 칼럼에서 반복적으로 언급한 바도 있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숙지도 매우 중요하다. 가져야 할 태도와 버려야 할 태도. 두 가지는 당연히 상충하며, 때로는 잘 이어가던 회복의 과정이 ‘단 하나’의 습관 때문에 무너지기도 한다. 치료의 여정이란 결국, 해야 할 것과 하지 않아야 할 것을 구분하고, 그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감을 유지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공황장애는 갑작스러운 공포감을 경험하는 질환이다. 느닷없이 찾아온 공포는 삶을 혼란하게 하며, 자신이 그간 지켜온 삶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건강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던 사람도, 갑자기 찾아온 낯선 감각으로 그간 유지해온 일상의 흔들림을 경험한다. 많은 이들은 불안과 공포로 인해 꾸준히 하던 운동도 포기하게 된다. 불안과 공포와 불면을 술에 의지해 견뎌내려 하며, 타인과의 접촉 또한 불편해서든 아니면 나가는 것 자체가 두려워서든 피하게 된다. 불편한 마음의 일시적 해소를 위해 담배나 자극적인 음식 등을 탐닉하는 사례도 흔하다. 

인간은 공포를 경험하면 뒤로 물러서 회피하고픈 본능이 있기에, ‘무엇’에든 의지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 ‘무엇’에 해당하는 것들은 대개 일시적이고, 짧은 위안만 제공할 뿐이다. 그리고 결국, 공포와 근시안적인 회피가 반복되며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또 공황을 처음 마주할 때 깊은 좌절과 절망을 맛본 후, 일상에 대한 의지가 꺾여버리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회복을 방해하는 생각과 태도들이 나타난다. 

공황장애, 과연 우리가 당장 버려야 할 생각들은 무엇일까? 
 

사진_픽셀


1. “다 포기해버리고 싶어요.” 

공황을 경험한 초기, 매 순간이 불안하고, 이전에는 겪은 적 없는 극심한 두근거림과 답답함이 전신에서 느껴진다. 버스, 지하철, 사람들이 다니는 길거리 등 모든 장소가 두려움의 대상이 되면서 삶 자체가 좁아지는 경험을 한다. 일상이 송두리째 바뀌는 좌절의 경험이다. 

그렇더라도 공황장애는 치료할 수 있는 질환임을 기억하자. 적극적 약물치료는 흐트러진 생활 리듬과 신체 증상들을 호전시키도록 돕는다. 신체 증상이 경감되는 것만으로도 공포는 꽤 큰 폭으로 줄어든다.

공황 자체의 본질을 익히며, 증상에 대해 일부 왜곡된 생각을 좀 더 건강한 시각으로 대체하는 한편 이전의 삶으로 자신을 조금씩 직면시키는 인지행동치료 또한 공황장애를 극복하는 데 있어 입증된 치료 방법이다. 좀 더 적극적으로 치료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상태를 모니터링할 때, 공황은 ‘공포스러운 괴물의 그림자’가 아닌 ‘해볼 만한 상대’로 바뀌게 된다. 그러니 공황장애로 모든 것을 포기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2. “아무 데도 가기 싫고, 아무도 만나기 싫어요.”

공황으로 인한 공포와 두려움은 특정 장소나 상황을 회피하게 만든다. 특히 사람이 붐비는 지하철이나 버스, 대형 마트 등이 불편한 장소로 변한다. 아무 생각 없이 다니던 장소도, 몇 번을 고민해야 겨우 갈 수 있는 생활은 끔찍할 수밖에. 

불편함을 피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이 본능이다. 공황을 겪은 후, 사소한 불편함을 느끼는 장소도 모두 피하고 싶다. 

그렇지만 불편함은 일반화(generalization)하는 속성이 있어서 한 가지를 피하기 시작하면, 점차 다른 비슷한 속성을 가진 것들도 불편해지게 된다. 처음에는 비좁고 답답한 곳에 대한 불편감이, 대중교통 혹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에도 공포를 느끼게 만들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직면의 과정이 필요하다. 과도한 회피로 인해 삶이 좁아짐을 느낀다면, 조금씩 그 불편함을 감내하고 직면해 나가야 한다. 낮은 단계부터 서서히 불편함을 감내하는 연습을 통해 불편함에 좀 더 익숙해지며, 나중에는 뇌에서 그 장소를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곳’에서 ‘불편하지만 참을 만한 곳’으로, 다른 해석을 내리게 될 것이다. 물론 이 과정은 체계적인 치료의 과정 중에 조심스럽게 시도해야 할 것이다. 

 

3. “이것만 있으면 혹은 이것만 하면 편안해져요.”

가장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술이다. 국내의 한 연구에서 공황장애와 함께 나타나는 알코올 의존의 비중은 대략 24% 정도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불안, 불면, 두려움 등을 잊고자 술을 마치 약처럼 사용하는 사례도 흔하다.

하지만 음주는 잠시의 편안함을 느끼게 할지는 모르나 장기적 보상은 되지 못한다. 음주 후에는 수면의 질이 극히 떨어지며, 수면은 흩어진 파편처럼 취약해진다. 이로 인한 피로감은 오히려 신체 증상들을 더욱 예민하게 느끼게 만들어 불편감 또한 심해질 뿐이다. 또 잦은 음주는 생활의 리듬 자체를 망가뜨려 전반적인 기분 상태를 악화시키기도 한다. 당연히 공황장애는 더욱 늪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러므로 공황장애와 음주는 상극(相剋)이다. 

답답한 마음에 흡연량이 증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공황으로 인한 교감신경의 활성화는 얕고 빠른 호흡을 유발하므로, 흡연은 답답함을 더욱 가중시킬 뿐이다. 아울러 니코틴으로 인한 각성 효과는 가슴의 두근거림과 같은 신체적 과잉 활성을 유발한다. 답답해서 피우는 담배가, 오히려 자신을 더 답답하게 만드는 셈이다. 

술, 담배뿐만 아니라 일상의 많은 것들이 회피의 대상이 된다. 부적, 성경 등을 지녀야만 밖으로 외출할 수 있다는 이도 있다. 필요할 때만 사용하는 신경안정제에 의존하기도 한다. 외출 중 자신이 약을 챙겨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그 두려움에 공황을 겪는 이들도 적지 않다.

특정 대상에 의지하여 불편함을 피하려는 행동을 안전 추구 행동(safety-seeking behavior)이라 하는데, 이러한 의존은 여러 상황의 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공황은 특정 물건을 지닌다고 해서 빨리 지나가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아무것에 의지하지 않아도’ 지나가는 자연스러운 생리적 반응에 가깝다는 사실을 치료를 통해 경험하고 익혀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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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나를 살피는 기술>, <어른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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