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구로 연세 봄 정신과, 박종석 전문의] 

 

회피성 인격을 가진 사람은 주목받는 것을 싫어하는 기질적 특성이 있다. 기질을 분류하는 각각의 기준 중에 ‘새로움 추구(Novelty Seeking)’, ‘위험 회피(Harm Avoidance)’라는 항목이 있다. 

심리학적 의미에서 새로움 추구는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요”라고 답할 수 있는 기질이라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 항상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이나 새로운 방식을 찾고, 다른 선택을 시도하는 성향을 말한다. 예를 들면 항상 가던 음식점이 아니라 새로운 맛집을 찾으려 시도하고, 여행지에서도 유명 블로거가 추천한 코스가 아니라 자기만의 새로운 곳을 개척해서 여행하는 것을 즐기는 성향이다.

반대로 위험 회피는 항상 다수의 의견에 따르며 묻어가려는 기질이다. 새로운 것은 위험한 것이고, 익숙한 것이 안전한 것이라는 식의 사고를 말한다. 예를 들면 여행을 해도 호텔에 묵고, 다른 사람의 여행 코스를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안심이 되는 성향이다. 당연히 번지점프 같은 마음 졸이는 액티비티는 시도할 일이 없다. 

 

회피성 인격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위험 회피 기질이 지나치게 높고, 새로움 추구 기질이 매우 낮다. 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 핵심은 바로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들은 성공률이 확실한 일에만 도전하고 다른 모험을 하지 않는다. 대학에 갈 때도 100퍼센트 안전 지원을 하며, 직장에 이력서를 낼 때도 마찬가지이다. 경쟁과 실패를 극히 두려워하여 떨어질 것 같은 학교나 대기업은 웬만하면 지원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서류 심사를 통과하고도 2차 면접에 나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도망치는 게 떨어지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성향은 아동기나 학창 시절 초기에서부터 나타나는데, 친구를 사귈 때 가까운 한두 명하고만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인간관계에 대한 이들의 위기는 중학교 혹은 고등학교 진학 시점에 온다. 친한 친구와 떨어질 수 있는 위험이 생기기 때문이다. 최소한 그 친구와 같은 학교를 가야 안심이 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 엄청난 낯가림과 고충을 감수하고 새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 대학교에 입학할 때는 더욱 심하다. 자신과 친구가 완전히 다른 지역으로 떨어져 진학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친구와 생이별을 하는 것이다. 이렇듯 회피성 인격의 사회적 회피와 불안 증상은 대부분 어린 시절부터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회피성 인격장애의 특징

∙비난이나 거절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대인관계를 피한다. 
∙타인의 일에 간섭하길 꺼리며, 자신이 나서거나 주목받는 것을 싫어한다.
∙자존감이 낮아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여긴다.
∙낯가림이 심하고 수줍음이 많아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꺼린다.
∙새로운 활동이나 시도를 피한다.
 

사진_픽셀


회피성 인격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려면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할까?

가장 먼저 이들의 부끄러움이 자기 노출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들은 자신의 약한 부분을 드러내야 하는 상황을 매우 두려워한다. 수치심이란 자신의 내적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불충분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들은 자아 이상이 높아서 엄격한 기준을 자신에게 적용하고, 남이 아닌 스스로의 평가에 괴로워하는 유형이다. 자신을 약하고 못난 사람으로 인식하기에, 다른 사람과 언쟁하거나 토론하는 것을 꺼리고 피하는 것이다. 몸으로 부대끼는 일은 말할 것도 없다. 이들은 지하철에서 발을 밟히고 밀쳐지고, 줄을 섰는데 새치기를 당해도 화를 내지 못한다. 속으로만 꾹꾹 참고 짜증도 내지 못한다. 

회피형 인격을 가진 이들은 사회 공포증을 함께 가진 경우가 많다. 남들 앞에서 발표하거나 팀별 발표를 할 때 조장을 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어쩔 수 없이 무대 위에서 발표를 할 때는 본인의 역량의 반의 반도 보여주지 못하고 말을 더듬거나 얼굴이 빨개져서 내려오는 경우가 많다. 

 

사적인 대인 관계에서는 좀 편하게 느낄까? 그렇지 않다.

심지어 연인 관계에서도 불만이나 원하는 바를 당당히 전달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삭힌다. 회피성 성향이 심한 경우, 연인관계가 발전되어 상견례 같은 이벤트를 앞두고 극도의 불안과 공황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관계가 더 깊어질수록 내가 망쳐버리면 어떡하지? 실수하면 어쩌지? 하는 초조감이 심해져서 상견례를 계속 미루거나 당일에 숨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 

또한 남자의 경우 회피성 성향이 심한 경우엔 여자 친구와 헤어질 때 만나서 사실을 이해시키려는 노력 없이 전화를 끄고 잠수를 타기도 한다. 직접 대면해서 상대방으로부터의 부정적인 반응, 비난을 감수할 용기와 의지가 없는 것이다. 

 

물론 이들 역시, 자신의 이런 성향이 싫고 부끄럽다. 그 자책과 수치심이 이 성향을 더 공고히 만드는 악순환이 된다. 어떻게 하면 회피적인 태도를 바꿀 수 있을까? 
 

첫째, 감정 표현의 계획표를 만들어라.

동료나 상사에게 꼭 하고 싶은 말, 의견이 있다면 점진적으로 표현하자. 이때 회피성 사람들은 오늘은 상대방의 기분이 안 좋아 보여서, 바빠 보여서 등 갖은 핑계를 대면서 미루려고 한다. 그래선 안 된다. 감정이 내부로 곪아서 쌓이고 굳어지면 관성이 생긴다. 미루는 관성, 참는 관성이 모여 회피적인 태도를 만드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나의 불안의 역치를 낮추는 데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계가 필요한데, 하루에 아주 조금씩, 일정 부분만큼만 표현하는 것이 좋다. 억울하고 울컥하는 마음에 감정을 쏟아내 버리면 이성적인 전달이 어렵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오늘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의 딱 10분의 1만 한다는 마음가짐이 좋다. 

대화도 관계도 initiation(개시, 시작, 입문)이 가장 중요하다. 우선 시작해버리고 나면 불안감은 반 이하로 줄어든다. 

 

둘째, 미러링 화법을 사용하자.

회피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대화에 익숙지 못하고 관계 형성에 자신이 없다. 특히 언쟁이나 감정적인 토론에서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 때가 많다. 갈등이 고조되는 분위기나 경쟁적인 긴장감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상대방의 어조, 말투, 단어를 흉내 내는 미러 화법을 쓰면 초조감이 줄어들고 큰 어려움 없이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

간단한 예를 들면, 

부장 : 마케팅 전략 아이템이 너무 부실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 : 아이템이 좀 부실한 것 같습니다... 부장님 말씀대로 디벨롭이 필요합니다. 

방금 나의 대답에 콘텐츠는 하나도 없다. 그저 부장의 말을 되풀이한 것뿐이다. 하지만 세련된 대화를 구사하는 이들은 특별한 자기 의견이나 말을 섞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갈 줄 안다. 상대방의 말을 그대로 기억했다가 되돌려주는 것만으로도 공감받고 있다는 느낌을 타인에게 주기 때문이다.

미러 화법의 대표적인 인물은 유재석이다.(유재석도 데뷔 초기엔 무척 위축되고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었다) 그는 억세고 무서운 선배 개그맨, 방송인들 사이에서 억지스럽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감정이나 느낌을 아주 자연스럽게 딱 한마디만큼만 녹여내서 덧붙인다. 단순히 앵무새처럼 타인의 말을 반복하기만 하는 느낌도 없다. 매번 화내고 버럭 하는 박명수의 말에 감정적으로 위축될 만도 한데 아주 여유 있게 그 말을 되돌려줄 줄 아는 것이다.

 

셋째, 상대방에게 세련되게 돌려주기.

상대방의 말에 상처 받으면 우리는 자존감도 낮아지고 예민해진다. 또한 감정이 상한 만큼 조금 수동 공격적이 되는 성향이 있는데, 이럴 땐 내 생각과 다르게 말이 까칠하게 나오게 되는 것이다.

팀장이 내게 억울하게 화를 냈다고 가정하자. 내가 한 실수도 아닌데 자꾸 화풀이를 하고 소리를 지른다. 이럴 땐 우선 지금 이 순간을 대꾸하지 않고 넘기는 것이 첫 번째 포인트다. 듣고만 있기 억울하고, 반론을 펼치고 싶고, 당장 고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할 테지만 기다려야 한다. 팀장의 뇌는 감정적인 에너지로만 꽉 차 있어 어차피 이성적인 대화를 할 수가 없는 상태이다. 

"팀장님 지난주에 하신 말씀 너무 심하셨던 거 아세요? 저를 너무 무시하시는 거 같아요." 

이렇게 얘기하면 다음과 같은 감정적인 반응이 돌아온다,

"이 대리, 상사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어디 한번 해보자는 거야?" 

말의 내용에 대한 숙고 없이 감정만 오가다 싸움이 되는 것이다.
 

두 번째 포인트는 내가 지적해주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스스로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팀장님 지난주 하신 말씀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또는 “제가 팀장님께 제 의사를 정확히 전달하지 못해서 착오가 생긴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팀장은 ‘내가 지난주에 뭐라고 했지? 어떤 식으로 얘기했지?’ 하면서 자신을 돌아볼 것이다. 또한 지난주 팀장의 뇌는 분노와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득했지만, 이번 주에는 냉정하고 중립적인 부분이 작동한다. 즉 훨씬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자기 판단이 가능해진다. 양심과 미안함이 함께 적용된다면 사과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위 3가지를 통해서 대화와 대인관계에서 위축되지 않는 법을 연습해보자. 불편한 상황과 부담스러운 사람을 대할 때도 작아지거나 피하지 않고 버티어보자. 그 순간에 닥치는 무게, 도망가고 싶은 충동으로부터 내 마음을 달래는 연습을 매일 해본다면, 당신의 태도도 어느샌가 남을 바라보고, 피하지 않고 정면승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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