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구로 연세 봄 정신과, 박종석 전문의] 

 

최근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대한 관심이 무척 늘었고, 정신과에 대한 편견이나 문턱도 많이 낮아졌습니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듯 최근 3년간 서울과 수도권에 새로 생긴 정신과의 수는 100개를 훨씬 넘는다고 합니다. 

정신과는 타과와 달리 좋은 의사의 기준이 조금 모호합니다. 성형수술이나 외과처럼 술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객관적인 수치나 완치율이 숫자로 나오는 것도 아니니까요. 다른 과처럼 ‘나 어느 병원 갔다 왔는데 정말 좋더라’ 하고 입소문을 듣거나, 블로그 리뷰, 후기를 찾기도 어렵습니다. 환자들은 보통 집이나 직장 근처의 개인 의원을 가장 먼저 찾게 되는데 이 첫 만남이 정신과 전체에 대한 인상을 좌우하게 됩니다. 두려움과 걱정, 기대와 때로는 실망을 하기도 합니다.

 

처음 정신과에 오면 간단한 설문지 몇 가지를 하게 됩니다. 우울증과 불안의 정도를 체크하는 BDI, STAI 같은 자기보고식 설문지인데, 이것은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판단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를 제공해줍니다. 정신과 의사는 처음 보는 환자를 20~30분 정도의 짧은 면담을 통해 진단해야 합니다. 피검사나 X-ray, 청진기의 도움도 받지 않고 말이지요. 

사실 한 사람의 인생을 마주하는데 어떻게 30분도 안 되는 시간 내에 진단을 하고, 답을 내릴 수 있겠습니까, 아마 하루 종일 듣는다 해도 모자랄 겁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환자가 원하는 질문의 답과 적절한 위로를 해주고 치료를 위한 조언을 하는 것은 사실 무척 어렵고 숙련된 경험이 필요한 일입니다. 
 

사진_픽셀


정신과 의사가 된 지 14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환자를 보는 것이 때로는 두렵습니다. 어떤 분들은 여러 병원을 돌아다녔는데 그중엔 무척 상처 받은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의사가 너무 차갑고 냉정하게 말해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고요.

어쩌면 저도 그런 실수를 했을지 모릅니다. 환자가 많고 시간에 쫓겨서, 몸이 너무 아파서 등의 핑계로 말이지요. 어떤 환자에게는 평소의 반도 친절하지 못했을 겁니다. 무척 부끄러운 일이지요. 최근에 정신과 경력이 3~40년이 넘으신 멘토 몇 분을 찾아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환자분 모두에게 진심을 다해 상담할 수 있을까요?" 


1. 경청해라, 치료의 모든 답은 환자의 말속에 있다.
2. 모니터가 아니라 환자의 눈을 봐라.
3. 판단하지 마라. 항상 환자가 옳다.
4. 약에 대한 부작용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설명해 드려라.
5. 환자가 안심할 때까지 몇 번이고 설명해 드려라. 

 

진단도 중요하고 약물 처방도 중요합니다. 때로는 환자가 가진 잘못된 선입관을 고치기도 해야겠지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 듣는 것’입니다. ‘어디에도 내 얘기를 속 시원히 할 곳이 없어서’ 정신과에 오는 것이니까요.

처음 정신과에 온 환자는 너무나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혹시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심각한 건 아닐까. 안 그래도 사는 게 힘든데, 더 힘든 선입관을 마주해야 하는 건 아닐까. 

따라서 의사는 말하기에 앞서 우선 들어야 합니다. 그동안 환자가 마주했을 엄격하고 차가운 시선, 냉정한 비판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경청해야 합니다. 환자의 말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슬픔과 불안을 온전히 느끼고 공감해야 합니다.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을까.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했을까. 

이 순간 이들에게 필요한 건 의학지식이나 정보가 아닙니다. 그들을 안심시킬 따뜻한 눈길과 위로의 한마디일 겁니다. 

처음 정신과 의사가 된 날을 기억합니다. 제가 우울증에 걸렸을 때, 어떤 의사를 만나고 싶었는지 그들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조금 더 겸손하기를. 체력과 인내심을 기를 수 있기를. 

누군가의 인생에 아주 작은 힘이라도 줄 수 있기를. 부족한 저도 언젠가는 좋은 의사가 될 수 있을 거란 믿음과 바람으로 이 말을 되새겨 봅니다.

‘환자가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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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연세봄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신촌세브란스병원 전공의
전) 서울대병원 본원 임상강사, 삼성전자 부속의원 정신과 전문의
현) 신촌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외래교수, 연세대 의과대학 정신과학교실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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